영화 <그날이 온다> 포스터

영화 <그날이 온다> 포스터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할리우드 영화 <그날이 온다>는 민주주의 사회가 어디까지 전락할 수 있는지를 비꼰다. 미국 FBI가 무고한 흑인들에게 테러를 자행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운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았다.

주인공은 모세(마샨트 데이비스 분)다. 비폭력과 흑인해방을 기치로 내건 자칭 종교지도자로 이슬람과 인종해방운동 주요 지도자를 두루 신격화해 모신다.

그런 모세에게 FBI가 접근한다. 우연히 모세의 설교영상을 본 요원들이 그가 극단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탓이다. 하지만 막상 만난 모세는 정부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다.

모세의 현실은 불쌍할 지경이다. 동원 가능한 신도라곤 가족 포함 3명뿐이고 집과 겸한 예배당은 월세가 밀려 쫓겨나기 직전이다. 총기와 마약에 반대하고 장난감 석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는 사상은 우습기까지 하다.
 
 영화 <그날이 온다>의 한 장면.

영화 <그날이 온다>의 한 장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테러조작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다룬 이유

각본에도 참여한 크리스토퍼 모리스 감독은 영화를 우스꽝스런 블랙코미디로 끌고 간다.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우리 가까이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아이러니함이 그가 승부를 거는 지점이다.

영화가 준비한 결말은, 스포일러 문제로 차마 옮길 수 없지만, 놀랍도록 충격적이다.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다룰 거였다면 왜 장르를 코미디로 한 건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관객이 느끼는 감상은 황당함이다. "에이, 이런 일이 어딨어" "좀 심하네" "이게 말이 되나" 하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영화가 준비한 결정적 승부수다.

이야기는 실화다. 마케팅팀은 100여 개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한두 개 실제 이야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6년 '리버티시티 7인 사건'이다.
 
 <가디언>에 보도된 테러 조작 사건.

<가디언>에 보도된 테러 조작 사건. ⓒ 가디언

 
한국은 간첩조작, 미국은 테러조작

2007년 시카고 시어즈 타워를 폭파하려 했다는 혐의로 연방검찰이 7명의 흑인을 기소했다. 모두 마이애미 리버티시티 출신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다툼 끝에 2009년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판결을 전후해 FBI의 충격적 수사방식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슬람 공동체에 테러혐의를 씌우기 위해 FBI가 정보원으로 하여금 알카에다 조직원 행세를 하게 했고 상당한 돈을 지불했으며, 사실상 알카에다가 개입하지 않은 가짜 테러계획을 세워 타깃이 가담하도록 유혹했다는 등이다.

많은 정보원들이 미국 내 이슬람공동체를 실시간 감시하고, 이슬람 신자인 것처럼 섞여들어 급진적인 사상을 전하고 있다는 내용도 폭로됐다. 이에 대해 가디언의 폴 해리스 기자는 "쓸만한 용의자가 확인되면 FBI 요원들이 나서 무기와 목표물 공급을 도와 가짜 테러 음모를 꾸며대는 경우가 많다. 이후 극적인 체포가 이루어지고, 기자회견이 열리고, 긴 유죄 판결이 확정된다"(2011. 11월 보도)고 썼다.

위 보도에 따르면 FBI가 적절한 후보자를 골라 테러리스트처럼 접근해 유혹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100여개의 실화를 근거로 했다'는 <그날이 온다>의 주장이 허풍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그날이 온다>의 한 장면.

영화 <그날이 온다>의 한 장면.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처음엔 다큐멘터리나 진지한 드라마, 혹은 스릴러로 다루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용은 무거운데 영화는 지나치게 가벼워 잘 몰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목적이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넘어 몰랐던 사실을 일깨우고 충격을 던지기 위함이라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이미 공개돼 있었으나 들어본 적 없던 리버티시티 7인과 포트딕스 5인 사건을 찾아보게 됐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나는 미국이 대대적으로 치러온 '테러와의 전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좀 더 분명히 알게 됐다.

언제고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유우성씨 사건을 비롯해 40여 건의 간첩조작 사건이 확인된 한국의 현실이 영화에 비옥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니.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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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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