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가에서 스포츠 스타 출신들을 섭외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안정환, 현주엽, 서장훈, 박찬호, 허재 등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단골로 누비며 맹활약중이다. 아예 이들의 운동선수다운 캐릭터와 전문성을 전면에서 내세운 프로그램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남성에 비하여 여성 스포츠스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다 패널이나 게스트로 출연해도 방송에서 본인들의 개성과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티캐스트 E채널 예능 <노는 언니>는 시작부터 확실히 차별화되는 희소성을 가지고 있었다. 전원 여성멤버, 그것도 국가대표 스포츠 레전드 선수들로 구성된 예능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박세리나 남현희같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국민적 스타에서부터,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젊은 현역-은퇴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종목도, 세대도, 개성도 제각각인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노는 언니>에는 그 흔한 연예인 고정 출연자나 MC 한 명도 없다. 큰 언니 박세리가 비교적 방송경험이 풍부한 편이지만 딱히 진행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멤버들이라는 이유로 남자 출연자들을 섭외하여 억지로 러브라인을 연출하는 식의 진부한 구성도 없다. 단지 프로그램 제목 때문에 JTBC <아는 형님>을 흉내 낸 아류가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노는 언니>의 최대 강점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한 장면.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한 장면. ⓒ E채널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유일한 미션은 출연자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는 판을 깔아준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호캉스'나 '캠핑'을 즐기기도 하고, 어느날은 '성지술례'라는 컨셉으로 맛집 기행을 다니는가 하면, '화보촬영'에 도전하기도 한다. 심지어 명랑운동회를 통하여 남자 선수들과도 양보없는 성대결을 펼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시절 운동에만 열정을 받치느라 못해본 것이 많았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도전한다는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취지다. 도전할 수 있는 소재에 제약이 없고 멤버들의 성향도 적극적이다 보니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노는 언니>의 최대 강점이다.

전문적인 방송인 없이도 과연 프로그램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첫 회부터 기우임이 밝혀진다. 오히려 연예인이나 비운동인 출신의 멤버를 배제한 것이 더 '신의 한 수'로 느껴질 만큼 <노는 언니>들은 말 그대로 '알아서 참 잘 논다.'

오히려 프로그램 첫 에피소드때 굳이 멤버들끼리 이미 조금씩 친해지고 있던 분위기에서 연예인 게스트들을 섭외한 것이 기존 예능의 신변잡기와 말장난식 토크를 답습하는 모양새로 변질되며 프로그램의 흐름을 깼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다행히 제작진이 빠르게 피드백을 했는지, 이후로 <노는 언니>는 철저하게 방송 취지에 걸맞게 여성 운동선수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는 언니>라고 해서 무작정 노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 프로그램의 진짜 매력은 여성 운동 선수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주는 '공감대'에서 나온다. 고정 멤버만이 아니라 반고정이나 게스트들도 대부분 여성 운동 선수들이다 보니, 종목이 다르거나 초면인 멤버가 오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금세 분위기에 녹아들고 어우러질 수 있다. 이런 장점은 농구, 펜싱, 핸드볼,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출연했던 일일식당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운동 선수들간의 기본적인 특성을 서로 잘알고 있기에 방송을 의식한 뻔한 질문이나 무리수는 나오지 않는다. 방송인들 사이에서 흔하게 발생하기 쉬운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신경전보다는,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배려하는 모습들에 시청자들도 한결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일반인들은 잘 알기 어려운 여성 운동선수만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남모를 애환도 들을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열정을 바쳤던 그녀들이, 대부분 한두 가지 '직업병'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모습들은 팬들을 짠하게 만든다. 때로는 부상이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언론과 팬들의 가혹한 비난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담을 고백하기도 한다.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때 선수들끼리만 알 수 있는 은밀한 뒷이야기나 포복절도할 황당한 에피소드까지 이야기 보따리가 끊이지 않는다.

'노는 언니' 멤버들 진가, 미션수행에서 드러나

또한 <노는 언니> 멤버들의 진가는 제작진이 어떤 구체적인 미션을 부여했을때 더 잘 드러난다. '일일식당'이나 '운동회', 혹은 '먹방'이든 도전할 분야가 생기면 운동 선수 출신다운 승부욕이 발동하는지 전투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어떤 일이든 척척 알아서 잘하고, 굳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망가지는 모습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 스포츠 스타들만의 솔직-털털한 모습들은, 아무래도 '이미지 관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연예인 멤버들의 예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다.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강인해 보이던 국가대표 언니들도 결국 유니폼을 벗으면 평범한 우리네 언니, 동생들과 다를 게 없고, 어떤 면에서는 훨씬 순수하고 인간미가 넘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대표나 성적이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뒤늦게나마 일반인들과 같은 소박한 일상의 자유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보는 이들마저도 기분이 좋아진다.

초창기 멤버 구성의 조합도 성공적이었다. 저마다 개성이 워낙 강한 운동선수들이다보니 멤버들간의 성격이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자칫 프로그램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맏언니 박세리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동생들의 실수나 농담도 싫은 내색없이 항상 호탕하게 받아주고 귀찮은 일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중심을 잡아준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엉뚱한 행동조차 밉지 않고, 무덤덤해보이는 모습 속에 주변 사람을 챙기는 속정이 묻어나는 묵직한 '언니미'가 돋보인다.

한 때 '배구 여신'이었던 한유미는 정작 <노는 언니>에서는 걸크러시 같은 이미지와 달리, 각종 허당스러운 언행으로 프로그램의 예능 분량을 대부분 전담하는 '기린 언니'로 각성했다. 수영 선수 정유인은 막내급임에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팀의 '인싸'이자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담당한다. 정유인-곽민정의 동갑내기 케미, 박세리-한유미의 4차원 맏언니 라인 등 멤버간의 다양한 조합이 뿜어내는 케미도 또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

<노는 언니>의 인기는 방송 전후로 공개되는 유튜브 티캐스트 채널, 네이버TV,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기록한 높은 재생수에서도 드러난다. 16회 방송 이후 공개된 모든 영상 누적 재생수가 2000만뷰를 돌파할 만큼 온라인에서 2040세대를 중심으로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됐던 <노는 언니>는 이처럼 높은 인기에 힘입어 당분간 방송을 연장할 예정이다. 비슷비슷하게 트렌드만을 쫓는 방송이 넘쳐나는 시대에, 간단한 발상의 전환만으로 차별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 <노는 언니>의 성공 비결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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