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보도 화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그들의 전가의 보도다

JTBC 보도 화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그들의 전가의 보도다 ⓒ JTBC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은 현재 여야의 핵심 쟁점이다. 비록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부각되고 있진 않지만,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 소위 때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고 여당이 단독 처리할 정도로 민감한 사항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개정안을 가리켜 대공수사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해 행위로 규정했으며, 하태경 위원은 이를 '문두환 정권의 친문 쿠데타'라며 정부가 대공수사권을 이관 받는 경찰을 과거 5공 치안본부 식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정원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대부분 합의했던 야당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만을 문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공수사야말로 국정원의 본질이요,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야당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엄연히 한반도는 휴전 중으로서 북한은 여전히 간첩을 남파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의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공수사에 특화 되어 있는 국정원의 기능을 경찰에다가 넘긴다? 당연히 거품을 물 수밖에. 
 
그러나 국정원의 대공수사와 관련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이 얼마나 남용되어 왔는지 지켜봐왔다. 국정원은 항상 보수정권의 히든카드였다. 국정원은 툭하면 간첩을 핑계로 무고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사찰했으며, 정권의 필요에 의해 간첩사건을 조작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자신들의 정보 독점 지위를 이용하여 거짓 증거와 자백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접근하기 힘든 정보기관의 특성상 국정원 주장의 신빙성을 밝히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따라서 여당의 이번 대공수사권 경찰로의 이관은 권력기관 개혁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만큼 국정원의 독점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며, 이후 정권이 국정원을 악용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세상은 정보화시대가 되어서 굳이 국정원이 아니라 경찰의 공개수사로도 간첩을 충분히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시 조명한 원정화 간첩사건 
 
 <그것이 알고 싶다> 원정화 편

<그것이 알고 싶다> 원정화 편 ⓒ SBS


비록 야당은 경찰이 국정원만큼 대공수사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경찰의 능력이 아니라 그 의도이다.
 
지난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마타하리'라고 불린 여인 - 원정화 간첩사건 미스터리>편은 경찰도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간첩사건을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2008년 8월, 우리 사회는 여간첩 원정화 체포로 떠들썩했다. 언론은 한국의 마타하리라며 원정화의 빼어난 외모를 부각시켜 대서특필했다. 기사에는 '미녀 간첩', '성로비', '미인계' 등 자극적인 꼬리표가 따라 붙었고, 언론을 이를 핑계로 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한 소식을 구석으로 밀어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지금까지도 그 진위에 대해 말이 많은 원정화 간첩설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대며, 이 모든 것이 조작임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7년 처벌을 받고 나온 원정화의 육성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에 따르면 원정화는 "당시 수갑을 차고 갑자기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데 너무 무서웠고 학력을 물어보는데 고등학교도 못 나왔다고 말할 수 없어 금성 정치대학에서 공부했다는 허위 진술을 했다"라며 '김현희처럼 될 수 있다'는 수사관들의 말에 혹해 간첩이라 거짓자백을 했다고 고백했다. 
 
 원정화 간첩 사건의 진실

원정화 간첩 사건의 진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외에도 그녀가 간첩이기에는 너무도 수상한 점들을 열거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그녀의 간첩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그녀의 간첩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그의 의붓아버지 역시 그녀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왜 원정화는 아직까지도 자진해서 간첩으로 살고 있는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렇게 간첩이 되어 종편에 상품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원정화 자신에게, 또한 그를 검거했던 경찰들에게도 유리함을 보여주었다.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간첩사건이 필요했던 정권과 간첩 사건 하나면 특진할 수 있었던 경찰, 그리고 비록 몇 년은 감옥에 가야 했지만 탈북자로서 삶이 어려웠던 원정화. 결국 이 세 주체의 필요에 의해 원정화 간첩 사건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두에게 행복하지 않았다. 한때 원정화를 사랑했던 육군 중위는 간첩의 공범이 되어 모든 걸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고, 수사과정에서 원정화가 절대 간첩이 아니라고 고백했던 수사관 한 명은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명을 달리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대공수사권을 행사하는가
 
 
 원정화 사건의 진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원정화 사건의 진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 한겨레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원정화 편을 통해 대공수사권이 얼마나 위험한 기능인지 알 수 있었다. 대공수사권은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누가 행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용하는가가 문제이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간첩을 검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나, 분단국가에서 간첩 검거는 권력기관에게 너무 달콤한 유혹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간첩만 잡으면 일 계급 특진 등의 혜택이 주어지며, 정권 차원으로서는 그 모든 뉴스를 덮을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공수사권이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되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경찰 역시 언제든지 그들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이용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견제해야 된다. 그것이 분단체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알고싶다 대공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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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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