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살아보지 못한 엄마다. 10여 년 전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집을 떠나 단체생활을 한다는 데 거부감이 있었고 산후조리원 대신 산모 도우미를 택했었다. 집으로 오셔서 나와 아기를 돌봐주셨던 산모 도우미 이모님은 내겐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요즘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럼에도 엄마로 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이 입을 모아 '조리원이 진짜 천국'이었다고 말할 때마다 그 천국의 맛이 어떤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24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내게 그 어떤 드라마보다 몰입감을 선사했다. 출산과 육아를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그려낸 이 드라마는 엄마가 된 직후 나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고, '산후조리원' 생활에 대한 대리경험까지 선사했다. 특히, '모성신화'에 의해 움직이던 '이상한 세계'가 점차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천국'이 되어가는 모습은 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 속 산후조리원이 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 현진(엄지원)이 '이상한 곳'을 '천국'으로 느끼게 될 때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본다.
  
 '모성신화'가 지배하는 산후조리원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은 엄마들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 <산후조리원> 포스터

'모성신화'가 지배하는 산후조리원을 '천국'으로 바꾸어 놓은 엄마들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 <산후조리원> 포스터 ⓒ tvN

 
오직 '모성'이 지배하는 곳
 
드라마 2회. 산후조리원에 입소해 처음으로 수유실에 간 현진은 이름을 묻는 다른 산모들에게 "오현진이요", 이렇게 답한다. 그러자 일제히 어이없다는 듯한 냉소가 돌아오고 현진은 비로소 깨닫는다. 이곳에서 궁금해는 건 나의 이름이 아니라 아이의 이름이라는 것을. 그 후 현진은 줄곧 '딱풀이 엄마'로 불리며 모성이 모든 걸 지배하는 '이상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아이를 위해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느냐가 삶의 기준이 되는 곳. 산후조리원에선 '육아에 오랜기간 묶여 있거나 자연주의 출산을 하며 진통을 쌩으로 겪어내거나, 모유수유를 잘하는 것'(2회)이 추앙받는 일이 된다. 사랑맘(박하선)은 이 모든 것을 갖춘 엄마였고 산모들은 사랑맘과 친하게 지내며 닮기 위해 애쓴다. 모유 수유를 거부하거나, 엄마가 된 것이 힘들다고 말하거나, 아이보다 내 일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이런 세계에서 모유 수유도 잘못하고, 엄마가 된 것이 힘들기만 하고, 아이를 보는 것보다 일을 더 하고 싶은 현진은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만난다. "찬란했던 과거는 엄마가 된 여자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4회)는 현진의 내레이션처럼 모성신화라는 획일적 잣대는 현진의 과거마저 부정하게 만든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르는' 사회생활에서 성공을 거둔 여성일수록 엄마로 살면서 겪는 좌절감이 더 크다는 한 심리학 연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일에서 줄곧 성공을 거둬오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왔던 현진에게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육아의 세계는 엄청난 좌절로 다가왔을 것이다. 분명, 드라마 초반 조리원은 천국이 아니었다. 희생만을 강요하는 '모성신화'가 지배하는 감옥처럼 보였다. 
 
그 때 루다(최리)가 등장한다. 2회가 끝날 무렵 톡톡튀는 옷차림으로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루다는 아이에겐 모유가 좋다며 모유수유를 강권하는 조리원 원장(장혜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엄마한테는 뭐가 좋은 건데요?"
 
불행을 인정한 순간 행복해진다
 

루다의 등장은 '모성천국' 조리원에 파문을 일으킨다. 강요되는 모성에 숨막혀 하는 현진에게 루다는 "그러니까 안 맞는 속옷 입고 쩔쩔매지 말고 편하게 해요. 남들이 좋다는 거 하지 마시고"(3회)라며 자기 자신에 맞는 길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자식도 엄마 웃는 거 보는 거 제일 좋아해요. 나는 그렇던데"라며 엄마 자신의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루다의 말에 흔들리는 현진을 두고 모성신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엄마들은 루다와 한판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3회). 절대적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루다를 통해 모성이 지배하는 조리원의 규칙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모유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조리원 '괴물'의 존재가 밝혀진다(4회). 임신과 출산으로 살이 찌고 더 이상 신비롭지도 않게 된 여배우 효린(박시연).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변화와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준 그녀는 조리원 사람들 중 처음으로 진실을 드러낸다. '엄마가 된 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이다. 효린이 '괴물'로 묘사된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모성신화'에 반기를 드는 것이 무척이나 위험한 일임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괴물' 효린 덕에 엄마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불행을 인정한다. 현진은 "난 엄마가 되고 엉망진창이 됐어요"라고, 루다는 "실은 전 미혼모예요. 좀 멘붕일 때가 많아요"라고 털어놓는다. 쑥쑥이 엄마(임화영)는 "전 사실 애기가 많이 아파요. 다 제 잘못인 것 같아 너무 힘들어요"라며 고백한다. 마침내 '모성신화'속에 억눌렸던 진실을 드러낸 엄마들. "우리가 불행을 인정한 순간 우린 비로소 행복해졌다"(4회)는 현진의 내레이션처럼 4회 말미 이들이 모여 앉아 불행을 털어놓으며 짓는 함박웃음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느껴졌다.
 
이는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고 인정한 후에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심리상담의 원칙이 적용된 장면이었다. 사실 효린은 '괴물'이 아니라 엄마들의 내면의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괴물은 내면의 진실을 감추도록 요구하는 '모성신화'가 아니었을까.
  
 현진(엄지원)은 엄마로서도 잘해내고 싶지만, 자신의 일에서의 성공도 결코 포기싫은 좌충우돌 초보엄마다.

현진(엄지원)은 엄마로서도 잘해내고 싶지만, 자신의 일에서의 성공도 결코 포기싫은 좌충우돌 초보엄마다. ⓒ tvN

 
우리에게도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엄마들이 자신의 '불행'을 마주한 후, 이제 드라마는 모성에 갇힌 엄마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엄마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현진은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늘 서툴기만 한 직장맘의 모습을 대변했다. 남편의 성공이 조리원에 갇힌 자신과 대비되어 속이 쓰리고, 아이를 돌보는 문제와 관련해 친정엄마(손숙)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 등 직장맘들이 겪는 다양한 고민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

유명 골프선수를 남편으로 둔 사랑맘은 남편이 결혼 후 슬럼프를 겪자 마치 자신 탓인 것 같은 생각에 조심스럽게 살아오며 쌍둥이들의 '독박육아'에 지친 인물이다. 3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그녀가 갈 곳이 없어 벤치에 앉아 있다 쌍둥이들이 목소리를 듣고 도망치는 장면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을 무척 잘 보여줬다(4회).
 
그녀가 겉으로 보여주는 완벽하고 행복한 엄마의 모습은 이런 내면의 힘겨움을 감추고 싶은 보상행동이었을 것이다. '행복하다'고 연기하지 않으면 이 상황을 버티기 힘들었을테니 말이다. 사랑맘은 차츰 현진과 루다 등 솔직한 조리원 동기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며 자신의 힘겨움을 인정한다. 그리고 8회 마침내 "내일 시합있어서 푹자야 한다"는 남편에게 "나도 내일 세 아이를 돌봐야 한다"며 아기의 트림을 맡길 줄도 아는,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로 변화한다.
 
힘겨웠던 부모의 결혼생활을 보며 결혼을 거부했던 루다는 자신이 과거의 상처에 매여있었음을 깨닫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작가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출산 후 집에만 있게 된 까꿍이 엄마(김윤정), 세계적인 물리학자를 꿈꾸는 열무 엄마 (최자혜)까지, 산후조리원 퇴소 전날 현진 방에 둘러 앉아 '아기'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참 뭉클했다.

"엄마가 되기 전 우리에게도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8회)는 현진의 내레이션처럼 이제 이들은 모성신화에 기대어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각자의 다른 모습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연대하는 이들이 머무는 산후조리원의 모습은 정말 천국처럼 느껴졌다.
  
 드라마 마지막회. 모여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드라마 초반 '모성신화'를 좇던 엄마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나누며 다양한 모성을 서로 존중해준다.

드라마 마지막회. 모여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드라마 초반 '모성신화'를 좇던 엄마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나누며 다양한 모성을 서로 존중해준다. ⓒ tvN

 
"저는 사람마다 자기한테 잘 맞고 행복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6회 루다의 대사다. '이상한 세계'였던 산후조리원은 강요된 '모성신화'를 좇느라 숨겨왔던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고 표현하며,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들을 존중해주면서 진정한 '천국'으로 변모해갔다. 루다의 말처럼 행복을 찾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존중해줌으로써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은 천국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남성의 시선으로 규정된 세상의 기준이 아닌, 여성들 각자가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현실 속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비단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강요된 시선이 아닌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나아가 삶의 다양한 방식들이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우리도 드라마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처럼 치열한 일상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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