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 tvN

 
지난한 출산, 육아의 리얼리티로 은근히 입소문을 타던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지난 24일 종영했다. 완모 수유의 완벽한 전업맘 은정(박하선)과 엉망진창 B급 육아 워킹맘 현진(엄지원)을 대비시키며, 자애와 헌신의 아이콘인 모성이 실은, 얼마나 사회의 이기적인 의도로 주조된 것인지를 나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엄마든 저런 엄마든, 모두 결혼이라는 정상 가족의 틀에 있던 산모들과 달리, '비혼모'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달고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이루다(최리)는 단연, 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가 좋은 엄마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모유 수유, 산모의 전통적 산후 관리 거부로 전형적 모성관에 당차게 도전하는 인상을 강하게 던졌기 때문이다. 게다 최근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이 굉장한 이슈 몰이를 하면서 여성들이 가부장과 이성애 중심주의의 결혼관에 더 이상 포섭되지 않겠다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발신하던 차이지 않은가.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하듯 드라마 속 이루다의 존재는, '결혼 제도만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독점해도 되는 것이냐'는 담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 보였다. 해서 드라마가 그의 도전을 용기 있게 구성해 한 여성이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않고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은, 변화된 시대관을 반영하고 이를 제시해야 하는 미디어 드라마의 책무로 기대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애초 싱글맘 선택을 좌절시킬 작정이었던 것인가?

루다의 싱글맘 도전이 애초 미심쩍기는 했다. 왜 싱글맘이 되려는지 그의 히스토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며 등장한 아버지의 존재는 그가 왜 정상 가족을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하려 했는지 설명하려는 듯했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엄마를 지속적으로 학대하자, 엄마는 지독히 아팠고 불행했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슬픈 가족사를 안고 있는 루다에게 결혼은 곧 엄마가 되면 불행하게 된다는 무의식적 암시였다고 드라마는 설명하며, "아프게만 하는데 버릴 수 없"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루다를 고백시킨다. 이로써 드라마는 원가족의 치유받지 못한 깊은 상처가 가족을 거부했던 이유의 전부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비혼모의 어떤 선택이 단지 개인적 심리적 장애에 기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해시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루다의 불행한 가족사는 지극히 루다에게만 일어나는 개인사일까? 그래서 그의 심리적 문제만 교정된다면, 그의 결혼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결혼은 결코 독자적 두 남녀의 개인적 결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 결혼제도로 이익을 보는 공고한 가부장의 위력은 여전히 기세등등하지 않은가.
 
루다의 엄마처럼 학대당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경우도 과거사도 아니며,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2018년 11월 정춘숙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전체 살인사건 가운데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경우는 18%나 됐다. 5건 중 1건이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어떤 여성에게 결혼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고, 그 어떤 여성이 내가 아닌 것은 우연인 것이다.

이렇듯 아내 학대는 단지 루다 개인의 가족 잔혹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지만, 드라마는 개인적 문제로 치환해 해결하려 든다. 마치 나쁜 남편(아빠)의 대척점에, 루다의 애인이자 요미 아빠인 우석(무진성) 같은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좋은 아빠(남편)로 대체시키면, 싱글맘으로 살겠다는 '루다들'의 타당한 선택이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되고, 마침내 이렇게 교정될 수 있다고 타이르듯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듯 장밋빛일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비혼부는 결코 우석이 아니다. 대다수 '우석들'은 비혼모의 임신에 공여하고도 아이와 여성을 버리는 것으로 그 책임에서 자발적으로 놓여난다. 드라마가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 의대생인 우석이 기나긴 고달픈 수련의 생활을 겪으면서도 첫 마음을 늘 소환해 좋은 남편과 아빠로서 변함없이 조력할까?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 tvN

 
또한 한 여성이 싱글맘이 되려는 이유가 가부장 아버지를 배반하려는 이유이면 이로써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일찍 엄마를 여의고 폭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루다는 어떻게 성장해 25살이라는 나이에 유망한 온라인 쇼핑몰 대표가 되었을까. 루다가 25살의 유능한 CEO라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매진했는지를 증명한다. 운이 상당히 따라주었겠지만, 자립과 성공이라는 남다른 야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을 야망 있는 주체로 부각시키고 그 한 축에 루다를 세운 건 적절했다. 루다의 경우처럼 드물지만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꿈을 이뤄가는 젊은 여성은 이미 적지 않게 존재한다. 가시적 성과(재정적인 성취)를 이루어낼 수는 없어도, 각자 자신의 길을 오롯이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실재한다. 이들이 이런 삶을 선택한 이유에 가부장과 이성애 중심 가족주의 해체라는 거룩한 명분이 균질하게 상정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남성 중심 사회가 정상이라 간주한 삶의 형태를 유지시키는 데 자신의 귀한 삶을 더 이상 제물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이 실재하고 이를 반영한다면, 드라마가 비혼모로 살겠다는 루다들의 선택을 짐짓 모른 체하고, 결혼으로 방황의 종지부를 찍는다는 식의 시대착오적 결말로 성급히 내달을 이유가 있었을까? 결혼은 하지 않지만 서로를 지지하는 파트너로 살아가도, 혹은 독자적으로 각자 길을 가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에 공조하는 관계로 상생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결혼한 여자만이 엄마 자격이 있다?
 
루다가 결혼이라는 뻔한 결론에 이른 데엔 불온한 기운이 있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이 따가운 시선으로 루다를 쫓게 함으로써 루다를 괴롭힌 셈이다. 이는 루다가 직면한 사회의 분위기를 대신한 것이고, 어찌 보면 비혼모를 가장 혐오하는 집단이 역설적이게도, 정상 가족 속의 여성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다.

비혼부에게는 관대하면서 오직 비혼모에게만 쏟아지는 비난, '아이를 불행하게 할 거면 왜 낳았냐'는 유구한 저주의 화살이, 실은 당찬 루다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내비친다. 루다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수호자인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에게 비혼모라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고, 곧 이것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 있었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드라마는 육아로 맺어진 낯선 여성들끼리의 연대라는 고리를 제공하는 듯했지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었다. 결혼이라는 정상 가족 속에 편입된 엄마만이 연대의 대상이라는 혐오와 배제를 배태한 암울한 전제 말이다.

루다가 최종적으로 결혼하기로 작정하며 안도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결정에 조리원 산모들이 보이는 '정신 차렸군. 그래야지'라며 환대하는 장면은, 애초 드라마가 루다의 싱글맘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증명하려던 속내였음을 누설하고 말았다. 이로써 가족 구성권에 도전장을 던진 비혼모의 선택은 무참히 뭉개어졌다.
 
루다가 우석에게 보이는 사랑도 찜찜하다. 의대생 우석은 예기치 않은 아이의 임박한 출생에 해외 의료봉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의 경력과 소신에 중요한 일이겠지만, 고독한 산모와 아이의 처지를 숙고했다면, 쉽게 떠날 수 없는 발걸음이어야 했다. 오히려 루다가 우석을 적극적으로 떠나보냄으로써 쿨한 여성상을 세운 듯했지만, 일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내세워 남자의 앞길을 막지 않겠다는 전통적 희생의 여성(아내) 상을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드라마가 애초 던진 화두처럼, 루다가 우석을 떠나보낸 것이 두려움이나 희생이 아니라 쿨함이라면, 비혼모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릴 무엇이 아니라, 가족 구성권으로 당당히 주장하고 감당할 소신이라면, 루다의 최종적 선택을 결혼으로 끌고 가는 결말은 기만적이다. 가공된 행복한 결말로 시청자의 불안을 잠식시키는 것만이 드라마의 본령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루다가 비혼모 삶을 선택했더라도, 그로서 완벽할 수도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완전할 수도, 완전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부모라는 역할을 완전무결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된 이데올로기를 깨부순다면, 부모의 상 또한 다양하게 펼쳐지고 존중될 것이지만, 사회는 오로지 정신적 육체적 재정적으로 건전하고, 아이의 어떤 행동에도 성숙히 대처하는 완벽한 부모여야만 자격이 있다고 재우쳐왔다.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 tvN

 
부모는 사회에 제대로 된 일꾼을 제공하는 '책임'을 다하도록 강요받았고, 어느새 신자유주의와 결탁해 이익 집단화된 정상 가족은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돼'라는 암시를 서로에게 발신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사회적 권력을 정상 가족이 행사하자, 한 부모 가족 특히 싱글맘 가족은 결핍되고 교정되어야 할 무엇으로 여겨졌고, 사회라는 피라미드의 최하층으로 밀려나 있다. 정상 가족이 쥔 헤게모니가 느슨히 해체됐다면, 서로에게 우선이 되는 관계로서의 가족은 지금처럼 차별과 배제의 지형에 위태롭게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방황과 실패와 좌절을 담보한 한 부모의 가족사가 될 루다의 선택 또한 마땅히 존중 받고 지지받았을 것이다.
 
엄마 홀로 아이를 키운다고 그 자체로 결핍은 아니다. 엄마만이 아이를 이끄는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역시 엄마의 삶을 견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보살피는 모습을 보이려는 듯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비혼모 동백은 결국 어찌 되었는가. 백마 탄 왕자의 구원과 조력으로 결혼 제도에 편입되고, 마침내 사랑받는 아내가 되어 완벽한 엄마 노릇을 제대로 수행하게 되었다며 뒤통수를 치지 않았던가.

사회가 어떻게 조력해 비혼모와 아이의 삶을 평등하게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를 결국, 남자 개인의 조력으로 실현시킨다고 믿게 함으로써, 사회는 무기력을 고백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비혼모를 결혼시켜야만 비로소 안도하는 사회의 조급증은 이번에도 루다를 결혼시킴으로써 부모 됨은 결국, 정상가족만이 해낸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기어코 던지고 말았다. 비혼모는 불행하고 결혼만이 구원이라는 삿된 계보를 동백에게서 루다로 잇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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