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전지현과 나>포스터

영화 <내전지현과 나>포스터 ⓒ 호우주의보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1999년 혜성처럼 나타난 넥슨의 RPG 게임(Role -Playing Game) 일랜시아의 16년 차 유저가 만든 국내 최초 유저 다큐멘터리다. 소위 '망겜(망한 게임)'이라 불리며 2008년 마지막 업데이트를 끝으로 개발진과 운영진이 사실상 버린 게임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이 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쫓으며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더불어 2030세대 고민까지 해부한다. 
 
일랜시아는 가상 현실에서 낚시, 요리, 사냥, 미용 등을 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단순히 게임만 생각하지 않고 애정을 쏟아 진짜 세계를 구축했다. 때문에 일랜시아가 서비스를 그만둔다는 말은 그들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었고, 유저들은 게임을 지키기 위해 조금씩 돌파구를 만들어나갔다. 모두에게 잊힌 게임일지언정 계속해서 운영진에게 연락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은 넥슨 노조와 개발자를 만나며 급물살을 탄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 호우주의보

 
박윤진 감독은 일랜시아 유저를 찾아 왜 일랜시아를 하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다. 업데이트 없는 답답한 게임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이유를 쉽게 정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는 부모의 마음처럼,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래픽이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요즘 게임과 비교해 눈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게임 자유도가 높아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레벨 없는 게임이란 점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한 마디로 성실하고 꾸준히, 게임을 하면 하는 만큼 나오는 성취감이 크다고 분석한다.
 
레벨 없는 대신 유저가 원하는 능력을 키우면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신화나 다름없지만 일랜시아에서는 그것도 가능했다. 돈과 배경이 없어도 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일이 이제 현실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일랜시아는 노력과 성취감이 비례하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숨 쉬고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들이 횡행했다. 매크로(자동 사냥)와 해킹이 일상이 되어 갔다.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기 위한 루트를 만들어 공유하기 시작했고, 캐릭터를 키워주는 부주(게임 대리인)도 생겨나며 점차 변질되었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수록 유저들도 진화했다. 버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답답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게임의 서비스 종료를 두려워하면서도 업데이트되면 지금 자신이 찾아낸 방법을 적용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익숙함은 점차 집착으로 변해갔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곳' 일랜시아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스틸컷 ⓒ 호우주의보

 
일랜시아는 개발자조차 돈을 벌 목적으로 출시하지 않았기에 과도한 경쟁과 상업성이 짙은 현 게임 시장에서 잊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저들은 이 게임을 정말 사랑했다. 아직도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며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가상현실 속에서 친구와 연인을 사귀고, 인증샷도 찍고, 외모도 바꾼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유사했다. 싸우고 헤어지고 심지어 사기도 당한다. 누군가가 가상현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루저라고 손가락질할 때도 그들은 일랜시아에 접속해 울고 웃고 위로하며 관계를 쌓았다. 심지어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 진한 우정도 나누었다. 태풍이 불던 날, 도저히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친밀함을 보여준 정모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는 상징과도 같다.
 
누가 게임을 세상과 단절이라고 했던가. 알랜시아 유저들에게 게임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유희가 아니었다. 힘들 때 아무 조건 없이 품어주는 힐링 공간이었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도 돼고, 누구의 간섭도 없으며, 하고 싶은 만큼 놀았던 잉여로움도 용납되는 천국.
 
영화는 좋아하는 것이 존폐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로 박차고 나왔을 때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세상을 없애려는 기성세대를 향한 반기라고 봐도 좋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오래된 고전 게임 하나가 아니었다. 유행하는 복고도 향수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지만 어디서도 보상해 주지 않았던 열정이 담긴 보물창고였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일랜시아 왜 하세요?"란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 청년 세대의 가치관을 들여다본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일랜시아를 몰랐던 관객까지 팬으로 만드는 매력뿐만 아니라, 게임이 미치는 부정적인 견해도 180도 바꾸기 충분하다.

싸이월드가 폐쇄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보였던 보였던 복잡한 반응처럼 2030 세대에게 일랜시아는 인생, 그 자체다. 일랜시아의 아바타는 과거에 고여있지 않다. 다만 현재로 나아가기 위한 연습을 아직 못 끝냈을 뿐. 기성세대의 시각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는 이상한 세계지만 게임이 인생이 된 사람들은 그곳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영제가 'People in Elancia'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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