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트리니티픽쳐스

 
평소 반공사상이 남달랐던 대권(정우). 그는 이러한 성향 덕분에 집권세력의 눈에 띄어 해외에서 귀국한 야당 총재 이의식(오달수)의 도청 임무를 맡게 된다. 대권이 지휘하는 도청 팀은 자택에 격리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 이 총재의 이웃 주택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 양 위장한 채 머물며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들은 첨단 도청 장비를 이용하여 이 총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하나 수집하고 기록해나가는 일을 도맡는다.

영화 <이웃사촌>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쿠데타로 들어선 권력이 그 정점에서 맹위를 떨치던 1980년대. 어느 누구보다 애국정신(?)이 충만하던 한 가장이 이웃으로 위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야당 총재를 비밀리에 도청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트리니티픽쳐스

 
집권세력이 반대진영에 가하는 불법 탄압과 음모가 난무하는 극의 흐름 속에서도 곳곳에 배치된 풍자 및 웃음코드는 관객으로 하여금 유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영화가 갖춘 미덕 가운데 하나다.

서로 이웃하고 살아가는 까닭에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 잦았던 대권과 이 총재. 그럴 때마다 대권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양 흠칫해야 했다. 도청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당사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직접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웃사촌으로서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느냐'며 대권에게 넉살 좋게 접근해오던 이 총재.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싹튼다.

한편 어떻게든 이 총재의 대통령선거 출마만은 막아보겠노라는 집권세력의 초조함과 위기의식은 불법 정치 사찰과 모략이라는 무리수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짐작되는 김실장(김희원)의 은밀한 지시. 그에 따라 대권의 움직임 또한 점차 기민하면서도 대담해져 간다.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트리니티픽쳐스

 
대권이 평소 '빨갱이'라 호칭하며 극도로 혐오해오던 인물 이의식 총재. 하지만 도청은 물론, 근거리에서 직접 마주하며 경험하게 된 그의 인물 됨됨이는 평소 대권이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작금의 도청 임무에 뛰어들게 됐지만, 정작 그가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애국심이란 본디 개념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었다.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광기가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로 오직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된 집권세력, 그리고 형편상 그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대권. 그의 미묘한 심경 변화는 극을 과연 어떤 결말로 이끌 것인지.

엄혹했던 1980년대. 영화는 폭압으로 점철된 당시의 정치 상황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온갖 음모가 난무하고 불법사찰이 자행되는 등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던 당시 권력의 민낯이 스크린 위에 가감 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며 여전히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색깔론이 어떻게 권력 창출과 유지에 악용돼 왔는지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애국심이 유달리 강했던 백수 대권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 다름 아닌 '빨갱이'였다. 왼손으로 밥을 먹는 자신의 아들에게 "너, 좌파냐?"며 꾸짖을 만큼 대권은 내면이 지극히 편향돼 있는 인물이다. 가수 나미의 대표 히트곡 '빙글빙글'이 권력의 표적이 되고, 곧이어 희생양이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웃프기 짝이 없다.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트리니티픽쳐스

     
이 영화는 이환경 감독이 < 7번방의 선물 >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전작에 녹아들어 있던 따스함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 배우 정우와 오달수. 그들의 출연이 무엇보다 반갑다. 대권이 이끌던 도청 팀의 팀원으로 등장한 김병철과 조현철이 펼치는 깨알 연기는 관객의 웃음 대부분을 책임진다.
 
영화 <이웃사촌>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어록을 몸소 실천하며 군사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 결국 이 땅에 민주주의를 굳게 뿌리내린 고 김대중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198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세대에겐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그렇지 않은 세대에겐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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