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5일,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는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의 후보를 발표했다. 한국인들의 관심은 일제히 방탄소년단의 노미네이트 여부에 쏠렸다. 그리고 'Dynamite'가 베스트 팝 듀오/그릅 퍼포먼스 후보에 지명되면서, 한국 팬들은 오랜 기대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래미 후보가 발표된 이후, 예상하지 못 한 곳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알앤비 슈퍼스타 위켄드(The Weeknd)가 제네럴 필드(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레코드상)는 물론, 어떤 부분의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 한 것이다.
 
위켄드의 앨범 < After Hours >는 2020년을 대표하는 흥행작이다. 빌보드 200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Blinding Ligths'는 40주 이상 빌보드 핫 100 차트에 머무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올해의 거대한 성공에 힘입어, 위켄드는 2021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공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적이 이 앨범의 가치를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2020년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이 앨범을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 팝의 중심은 위켄드였다
 
 위켄드(The Weeknd)의 < After Hours >는 올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앨범이지만,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위켄드(The Weeknd)의 < After Hours >는 올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앨범이지만,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올해 대중음악의 중요한 키워드는 '과거를 복각하는 행위'였다. 춤을 잃어버린 시대였지만, 80년대 신스팝을 재해석한 신스웨이브 음악이 대중을 춤추게 만들었다. 그 중심에 두아 리파(Dua Lipa), 그리고 위켄드가 있었다. 위켄드는 공허감, 우울, 자기 혐오 등 내밀한 개인 서사를 착실하게 그리면서도, 이것을 기괴한 콘셉트, 안개가 가득 드리운 듯한 사운드스케이프와 조화시켰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받았던 만큼 그래미에 대한 음악팬들의 분노는 예견된 것이었다. 혹평을 받았던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 Changes >는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위켄드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레코딩 아카데미 회장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자격을 갖춘 모든 작품이 후보에 들어갈 수는 없다'며 성난 여론을 잠재우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위켄드를 후보에서 누락한 것은 그래미가 2020년의 대중음악계를 결산하고 대표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63회 그래미 어워드의 노미네이션을 살펴보면, 정치적 이슈를 다룬 몇 곡들이 후보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에 연대한 H.E.R의 'I Can't Breathe',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비욘세의 'Black Parade'가 대표적이다.

당초 그래미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프랭크 오션은 60여 년의 역사에서 흑인 본상 수상자가 얼마나 되느냐며 지적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2년 전 900명의 선거 인단을 추가했다. 이것은 실제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졌다. 이전보다 많은 유색 인종/ 여성 뮤지션들이 후보에 올랐고, 수상했기 때문이다. 조금 늦었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래미는 정작 올해 미국 대중음악의 가장 큰 현상을 외면하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결정에 격분한 위켄드는 자신의 SNS에 '그래미는 여전히 부패했다. 당신들은 나와 내 팬, 음악 산업의 투명성에 큰 빚을 졌다'는 글을 게시했다.

키드 쿠디와 케이티 페리를 비롯한 동료 뮤지션들도 그래미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거장 엘튼 존은 자신의 SNS를 통해 '위켄드는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았어야 한다'라며 #Grammysnub(그래미가 모욕했다)이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의 문을 여는 장면은 상심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이었다. 그의 야심작 < Reputation >이 한 개를 제외하고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이 보여주듯, 그래미는 여전히 많은 뮤지션들의 꿈이자 준거점이다. 그 기저에는 역사가 뒷받침하는 '대중음악 시상식 최고의 권위'가 있다.

그러나 그 권위는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프랭크 오션이나 드레이크처럼 그래미 자체를 외면하는 뮤지션들이 더 많아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래미 무용론'에 있어, 위켄드의 탈락은 상징적인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여덟.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