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말이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변호인> 주인공의 치열하고 헌신적인 삶과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참담하게 고통스러운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게 타인과 소통하고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지난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영화 <변호인>으로 23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는 이런 수상소감을 전했다. 앞선 8월, 송강호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 준비모임'의 '영화인 릴레이 단식'을 지지하며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고 응원합니다"란 메시지를 전해 언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 논란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영화인 모임'이 기자회견을 여는 등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로 술렁거렸다. 그 당시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선언'에 서명으로 동참한 영화인만 1123이나 됐다. 문화인, 아니 세월호 특별법을 언급한 단체로서는 최대 규모라 할 수 있었다.
 
영화인들도 세월호 단식 동참 가수 김장훈에 이어 정지영 감독 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제정되어야 한다'며 유가족 단식에 동참했다.

▲ 영화인들도 세월호 단식 동참 가수 김장훈에 이어 정지영 감독 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이 2014년 8월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제정되어야 한다'며 유가족 단식에 동참했다. ⓒ 남소연

 
그해 8월 시작한 영화인들의 릴레이 단식도 계절을 넘겨 10월까지 계속됐다. "영화보다 못한 현실이 지금 대한민국", "현실이 영화보다 끔찍한데 무슨 영화인가"란 한탄 속에 영화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광화문 농성장으로 모여들었었다.

그 중 뜻을 모은 영화인들은 세월호 참사 200일 하루 전인 10월 31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영상제'를 열기도 했다. 릴레이 단식 초반에 참여했으며 '세월호 추모 영상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은 당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분석을 전한 바 있다.

"'론스타 먹튀'를 떠올려 봐라. 그건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가 사회 안전망 붕괴 속에서 온 것처럼 대한민국 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걸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거다. 대한민국 금융시스템 문제도 마찬가지였고. 비단 재난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성찰할 때다. 이게 내일, 모레, 1년 안에 끝나는 게 아니다. 깊고 넓게 국민과 토론해서 나가야 한다(...)

(영화인들이) 처음엔 (단식을) 이렇게 오래할지 몰랐다. 사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영화인들이 침묵했던 거다. 다 자기들 문제이고, 독립영화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데 가만있고. 생각해 봤더니, 그동안 많이 참은 것 같다. 스크린쿼터 싸움 때는 조직이 움직였는데, 그런 움직임을 선도하지 못했다. 조직이 안 움직이니까 개개인만 목말라 했던 거지." (관련 기사 : <"영화인들이 왜 정치투쟁 하냐고?
'이명박근혜' 거치며 많이 참았다"
 http://omn.kr/ap8g>)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와 블랙리스트

이때만 해도 몰랐다. 서명과 단식에 동참한 영화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박근혜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불편과 탄압을 겪게 될지. 이후 박근혜 정부는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 등이 주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통해 유무형의 탄압을 가한 바 있다.

그 6년 사이,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이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한 이들도 대부분 구속‧수감됐다. 이들 중 김 전 실장은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조 전 장관은 2심에서 2년의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심리가 더 필요하다며 블랙리스트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이 내년 1월 14일 개시된다.

이렇게, 블랙리스트 사건조차 아직 완전한 해결을 맺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정지영 감독은 '론스타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머니>를 만들었다. 블랙리스트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하나인 송강호는 칸과 아카데미를 휩쓴 <기생충>을 포함,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며 관객들을 만났다. 많은 영화인들이 그랬다. 지난해엔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생일>이 개봉했을 정도다.

안타까운 사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6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진상규명,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란 구호를 내세운 영화인들이 다시금 '세월호 진상규명을 바라는 영화인'이란 이름 아래 서명에 동참하고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예술의 의미, 정치의 의미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11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진실이 밝혀질 것은 기대했지만 기대는 또 다시 무너졌다. '수사'가 아닌 '조사'라는 완곡한 방법으로는 자료 취합 자체도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세월호와 관련없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범정부 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직접 수사하게 해달라는 김성묵씨와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단식투쟁단'의 입장에 뜻을 같이 한다."


지난 23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영화인들의 주장(관련 기사 : "조사 아닌 수사해야" 영화인들,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http://omn.kr/1qny9)은 이랬다. 이들 영화인들은 "세월호 생존자인 김성묵씨가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탄식투쟁'단과 함께 (기자회견 당일) 4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공소시효가 코 앞임에도 책임자 처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6일로 단식 48일째를 맞고 있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씨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강경한 요구에 힘을 실은 것이다. 앞서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이던 김성묵씨는 지난 4일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촉구 단식투쟁단과 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의 처벌은 물론, 재발방지 대책과 피해자 중심의 피해회복 방안 마련을 위한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 설치 요구 등이 포함된 '문재인 대통령 규탄문'을 발표한 바 있다.
 
 23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영화인 기자회견

23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영화인 기자회견 ⓒ 임순혜 제공

 
총 232명의 영화인이 긴급하게 서명에 동참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6년 넘는 시간 동안 세월호 사건의 해결이 지지부진한데 대한 공감의 표시라 할 수 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영화인들이 "대통령의 의지로 '범정부 합동수사단'을 만든 선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한 것 역시 법이나 절차를 무시하는 일방의 주장이라 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 최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등이 참사 7주기까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두 번째 '4.16 진실버스'를 출발시켰다. 코로나19가 악화되는 상황 속에 국민적 동의를 얻어 국회를 압박하려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달라'는 직접적인 주장과는 배치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을 향한 요구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자명하다. 기억의 무게란 무섭고, 소통의 무게를 더 크게 담당할 이들 또한 뚜렷하기 때문이다. 6년 전 김영오씨 지지단식에 동참했던 문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 그 6년 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 대통령의 임기도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40일 넘게 '세월호 단식'을 이어가는 '세월호 피해자'가 또 나왔다.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 설치는 차후 문제일지 모른다. 우선 문 대통령이 '기억의 무게'를 소환한 채로 김성묵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먼저일지 모를 일이다.

영화인들이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고 행동에 나섰듯, 대통령 또한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곱씹으며 김성묵씨와의 대화에 나서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는 외침을 외면할 순 없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쓰고 난 26일 오후, 김성묵씨가 결국 호흡곤란과 탈진 등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료진은 단식 중단과 치료를 권해왔으나 극구 거부해왔던 김씨의 빠른 쾌유를 비는 마음이다.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가 단식 46일째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단식농성장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발언을 듣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호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구조했던 김씨는 지난달 10일부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 직속 특별수사단 설치 등을 촉구하며 단식을 벌이고 있다. 2020.11.24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가 단식 46일째인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단식농성장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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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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