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즌을 또다시 2부리그에서 맞이하게 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가 최근 파격적인 신임감독 카드를 꺼내들어 주목받고 있다. 부산 구단은 25일 새로운 사령탑으로 포르투갈 출신의 히카르도 페레즈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부산은 지난 2019년 4년만에 승강 PO를 거쳐 1부리그 복귀에 복귀했지만, 2020시즌은 최하위에 그치며 1년만에 다시 2부로 강등당했다. K리그 역사상 기업구단이 두 번이나 강등당한 것은 사상 최초다. 하필이면 부산의 구단주가 한국축구의 수장이자 프로연맹 총재까지 역임했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라 '회장사'의 연이은 강등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부산은 지난 시즌 성적 부진으로 1부리그 승격의 주역이었던 조덕제 감독이 막바지에 전격 사임했고, 이기형 감독대행이 잔여 경기를 이끌었으나 결국 강등을 막지못했다. 특히 마지막 2경기중 1경기에서 무승부 이상만 거둬도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서 강등경쟁팀 인천과 성남에게 연이어 덜미를 잡히며 리그 최종일에 역전을 당했다. 부산은 시즌 종료 이후 전면적인 팀 재정비와 함께 새로운 감독을 물색해왔다.

골키퍼 출신 페레즈 감독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가 히카르도 페레즈 감독을 제2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25일 밝혔다. 페레즈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을 지휘하던 시절 골키퍼 코치로 함께 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가 히카르도 페레즈 감독을 제23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25일 밝혔다. 페레즈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대표팀을 지휘하던 시절 골키퍼 코치로 함께 했다. ⓒ 부산 아이파크 제공

 
여러 감독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부산이 외국인 감독 카드를 선택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그것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 감독도 아니라 눈에 띄는 커리어가 없는, 무명에 가까운 젊은 지도자를 영입한 것을 두고 구단의 의중에 대하여 추측이 무성하다.

신임 페레즈 감독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직 많지 않다. 76년생인 페레즈 감독은 골키퍼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고 오히려 2005년부터 코치로서 일찍 활동을 시작했다. 선수생활 보다 지도자 경력이 더 빼곡하다. 

눈에 띄는 부분은 프로 선수 경력이 아예 없다는 점. 이는 유럽과 한국의 축구시스템의 차이점이기도 한데, 유럽에서는 프로 경력이 없는 무명 선수 출신, 심지어 아예 비선수 출신 일반인이라도 체계적인 지도자 자격 과정만 모두 수료하면 프로 감독 자리까지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주제 무리뉴(토트넘)나 율리안 나겔스만(라이프치히),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마르세유), 세르히오 파리아스(전 포항) 감독 등이 모두 무명 선수나 비선출로 프로 감독직까지 올라 큰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사례들이다. 지도자의 현역 시절 경험이나 명성도 중시할뿐 아니라, 골키퍼 출신 프로 감독들도 드문 한국축구에서는, 외국인 감독임을 고려해도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할 만하다.

비록 선수 시절 명성은 미약하지만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과소평가할 정도는 아니다. 페레즈 감독이 거쳐 온 팀들을 살펴보면 모국인 스포르팅CP(포르투갈)를 비롯하여, 포르투갈 대표팀, 크루제이루(브라질), 올림피아코스FC(그리스) 등으로 다수의 명문클럽들과 대표팀에서 골키퍼 코치-수석 코치 등을 역임했다.

같은 포르투갈 출신인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과의 깊은 인연도 돋보인다. 페레즈 감독은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시절에 골키퍼 코치를 맡으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12 4강이라는 성과를 함께 이뤄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끝으로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을 떠나 크루제이루, 올림피아코스 등으로 옮겼을 때도 계속 코치로서 함께하며 사실상 '벤투 사단'의 일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페레즈 감독이 벤투 감독과 떨어져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은, 벤투가 올림피아코스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여전히 팀에 남아 19세 이하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부터다.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미지수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아직 미지수다. 성인팀 감독을 맡은 것은 2019-20시즌 중반에 포르투갈 2부리그 카사 피아FC의 감독직에 오른 게 처음이지만, 1승4무7패라는 초라한 성적에 거치며 그나마도 지난 6월 중도에 경질당했던 초라한 경력이 전부다. 당시 카사 피아가 페레즈 감독이 소방수로 투입되기 전부터 2부에서도 강등권에 있던 약체팀이었음은 감안해야 한다.

부산은 전신인 대우 로얄즈 시절부터 K리그와 역사를 함께해왔지만 80-90년대의 짧은 전성기를 제외하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시간이 더 길었다. 역사적으로도 K리그에서 감독교체가 유난히 빈번했던 팀중 하나다. 공식적으로 페레즈 감독은 구단 역사상 23번째 감독이며 외국인 감독으로 국한하면 역대 6번째다.

부산은 2007년 사임한 앤디 에글리(스위스) 감독 이후 무려 13년만에 맞이하는 외국인 감독이다. 부산은 그동안 프랑크 엥겔, 비츠케이 베르탈렌, 샤키(드라고슬라브 셰쿨라리치), 이안 포터필드, 에글리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감독들을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한 고 포터필드 감독만이 2004년 FA컵 우승, 2005년 K리그 전기리그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 등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을뿐, 나머지 외국인 감독들은 대부분 실패했고 임기도 모두 1년 내외로 단명했다. 특히 이전의 마지막 외국인 사령탑이던 에글리 감독은 임기내내 성적보다 과장된 쇼맨십이나 심판 판정에 불같은 리액션으로 더 주목받는 등, 여러 가지 기행만을 일삼다가 돌연 1년도 안되어 시즌중 자진 사퇴했다. 지금도 부산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떠올리기 싫은 흑역사로 남아있다.

부산은 현재 K리그에서 빅클럽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팀이다. 내년 무조건 1부리그 승격을 노려야 하는 부산을 맡기기에는, 새 외국인 감독치고는 커리어가 빈약해 보인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당장의 성적을 기대하기보다는 불확실한 실험을 선택한 셈이다. 유럽 선진 축구의 시스템을 이식한다거나, 팀을 장기적으로 젊은 선수 육성 위주로 재정비하겠다는 명분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역시 성적과 어느 정도 병행되어야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파리아스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결코 특출한 커리어를 지닌 감독은 아니었지만, 포항을 이끌고 리그,FA컵,ACL 등 가능한 모든 대회를 차례로 정복하며 지도자 인생의 최전성기를 K리그에서 맞이했다. 주제 모라이스 감독도 전북 사령탑 부임 전까지는 '무리뉴의 친구' 정도로만 더 알려졌으나 K리그 2연패와 FA컵 우승 등 3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성과로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다만 페레즈 감독이 맡아야 할 부산은 전력이나 투자 면에서 우승권 팀이었던 포항이나 전북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페레즈 감독은 부산이 사실상 성인무대 1부리그에서 정식 감독으로서는 본격적인 첫 커리어라고 할 수 있다. 페레즈 감독은 과연 구단의 직전 마지막 외인 감독이었던 에글리의 전철을 밟게 될까. 아니면 파리아스나 모라이스의 성공을 재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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