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한국 현대사에 포커스를 맞춘 또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이웃사촌>이다.

비극적 한국 현대사에 포커스를 맞춘 또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이웃사촌>이다. ⓒ ㈜트리니티픽쳐스

 
때로는 영화가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로 역할 한다. 그런 경우를 직접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몇 해 전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조카딸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와서는 동생에게 진지한 얼굴로 묻더란다.

"아빠, 옛날엔 진짜로 우리나라 군인들이 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총 쏴서 죽이고 그랬어요? 아니죠?"

동생이 뭐라고 답했는지 굳이 묻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도 학교에선 중학생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겼을 뿐.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카가 백부처럼 캄캄한 골방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비밀스럽게 제작한 <광주항쟁 사진집>을 통해 끔찍한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게 아니란 걸.

19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책을 펼치고 총 맞아 죽은 광주 청년의 반쯤 감긴 눈을 보며 홀로 경악하던 밤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내내 그럴 것이다. 이후로 30년 세월. 세상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

비단 내 조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 < 1987 > 등 비극적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본 중학생들은 자기들 학교 역사 교사에게 "이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인가요?"라고 물었을 듯도 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답변을 들었을까?

간명한 이야기… 빼어난 연기 보여준 조연들

최근 개봉한 <이웃사촌> 역시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의 역할을 자처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 이전', 공간적 배경은 '한국', 밑바탕에 깔린 메시지는 '슬픔과 저항'이다.

상영시간은 2시간 10분으로 꽤 길지만, <이웃사촌>의 스토리는 몇 줄로 정리가 가능할 정도로 간명하다.

DJ와 YS를 섞어놓은 듯한 민주화운동 투사(오달수 분)가 있고, 그를 감시하는 정보기관의 공무원(정우 분)이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투사의 진심을 알게 된 정보기관 직원은 그간 살아온 삶의 태도와 지향을 180도 바꾼다. 시대의 슬픔을 자기희생과 저항을 통해 이겨낸 둘의 재회로 영화는 마무리.
 
 <이웃사촌>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김희원.

<이웃사촌>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김희원. ⓒ ㈜트리니티픽쳐스

 
정치적으로 끔찍했던 한국의 1980년대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관객을 울리다가 웃기고, 서럽게 만들다가 깔깔거리게 한다.

감독 이환경의 연출 스타일은 말 잘하고 재밌는 역사 교사와 닮았다. "감정 과잉에 신파적이라 영화가 19세기 동화 같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 7번 방의 선물 > 등 전작들에서 이미 봐온 이환경의 패턴화 된 영화 연출 방식이라면 인정할밖에.

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력은 <이웃사촌>의 핍진성을 높여준다. 지난 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정보기관의 고위직 역을 맡은 김희원은 "악역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소화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값하는 연기를 이번에도 보여준다.

민주화운동 투사의 딸 역할로 나온 이유비의 눈빛 연기는 극장 안 사람들의 서러워서 뜨거워진 가슴에 기름을 붓는다. 기대하지 못했던 연기력이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영화 <이웃사촌>은 '과연 한국에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영화 <이웃사촌>은 '과연 한국에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지게 한다. ⓒ ㈜트리니티픽쳐스

 
다시 한국 현대사에 관한 질문 앞에 섰을 학생들은...

어쨌건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에 카메라를 들이댄 또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나중 문제.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조카딸은 <이웃사촌>을 볼까? 본다면 또 동생에게 질문을 던질까? 그게 아니면 제법 컸으니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우리의 1980년대를 기록한 책을 읽을까?

조카의 의문에 답해줄 좋은 역사서 한 권 선물하고 싶은 흐린 초겨울 저녁이다.
이웃사촌 이유비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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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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