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런> 포스터

영화 <런> 포스터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우리 모두에게 큰 보호막이 되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는 엄마일 것이다. 출산 전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내며 생명을 지원받고, 태어나서는 먹고 마시고 잠 드는 모든 과정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태어난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20여 년 동안 부모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에 비로소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또 다른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마음이 강해져 아이를 향한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 집착이 지속도면 아이와 대립하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그 대립은 커지고 서로에 대한 애증은 심화되기도 한다.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

영화 <런>은 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 클로이(키에라 엘런)와 함께 살고 있다. 당뇨병, 천식, 하반신 장애 등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딸을 돕기 위해 다이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클로이는 극 중에서 내년이면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된 상황이고 원하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클로이에게 다이앤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클로이는 자신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의지하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영화 <런> 장면

영화 <런> 장면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클로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집 안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고 계단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영화 초반 집안에서 클로이와 다이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장애가 있는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어떤 모습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실 영화 초반 클로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영화의 중반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 더 크다. 집의 구성과 배치, 그리고 클로이의 생활 동선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집안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에 더욱 긴장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엄마 다이앤의 출산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산이 될 뻔한 아이를 겨우 살려내 인큐베이터에 넣었으나 그 아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영화에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스릴러 영화 장르를 많이 본 관객들이라면 그 아이의 생존 여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런>은 다이앤이 의료진들에게 아이가 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장면이나, 현재 다이앤이 학부모 회의에 참석해 딸에 대한 의견을 낼 때 건조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후반부 다이앤의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 암시한다.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딸

클로이는 엄마가 장을 봐온 물건들을 뒤적이다가 처방받은 약통을 발견하면서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약은 클로이가 아플 때 먹던 약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약통의 겉에는 엄마 다이앤의 이름이 쓰여있다. 작은 초록색 알약이 야기한 마음의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클로이가 계속 그것에 대해 추적하게 만든다. 엄마의 활동 일정과 동선을 알고 있는 그는 그 약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쓴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 다이앤에게 동정과 위로를 보내고 싶을 수도 있다. 장애아를 키웠고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런데 엄마가 딸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들이 드러난 이후, 심지어 딸을 방안에 가두었을 때 관객들의 마음은 요동친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 엄마가 실제 선한 존재가 아니었을때 집이라는 공간은 지옥이 된다.
 
 영화 <런> 장면

영화 <런> 장면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클로이가 집안에서 최선을 다해 엄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장면에선 긴장감을 유발한다. 사실 클로이 입장에서 엄마를 벗어난다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간 받았던 모든 지원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며 혼자 세상 밖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그 존재로부터 탈출을 결심한다.

독립 직전의 딸과 엄마의 감정

영화 <런>은 독립하기 직전의 딸과 엄마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20년간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엄마가 아이의 독립을 바라보며 기대감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끼고, 반면 아이는 그저 독립된 생활을 하루 빨리 시작하길 희망한다. 

마음이 복잡해진 엄마와 그런 엄마가 무섭고 두려워진 딸. 이 영화는 그런 엄마와 딸의 애증의 시기를 아주 단순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 장르에 대입해 풀어나간다.

다이앤 역할을 맡은 사라 폴슨은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나 넷플릭스 <래치드> 같은 시리즈에서 두각을 보였던 배우다. 그는 차갑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또 반면에 여리고 지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연기가 가능한데, 특히 차가운 악역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차가운 엄마 연기를 잘 소화하고 있다. 

딸 클로이 역을 맡은 키에라 엘런은 독립을 원하는 딸 역할을 맡았는데,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동하는 모든 장면은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스릴러 영화로 약간의 반전과 좁은 공간에서의 추격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 영화 <서치>의 감독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스릴러 서치 감독 사라폴슨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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