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는 오페라의 프리 마돈나(여주인공)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바'라는 단어가 오페라 무대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어 사전에는 디바를 '뛰어난 여가수나 여배우'로 정의돼 있고 1990년대 초·중반 미국 팝 시장에서는 고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그리고 셀린 디옹을 묶어 '팝의 3대 디바'로 부르기도 했다.

국내에서 '디바'라는 단어는 지난 1997년 룰라 출신의 채리나가 중심이 된 3인조 여성 댄스그룹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지난 2016년에는 Mnet의 페이크 다큐 <음악의 신2>에서 디바를 뛰어 넘는 가수가 되겠다는 의미의 CIVA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이 데뷔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진 여성 가수들에게 '디바'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비교적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는 국내에서 '디바'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선희, 정수라, 박미경, 이소라 같은 쟁쟁한 여성 가수들도 전성기 시절 '디바'라는 호칭을 거의 듣지 못했다. 그리고 90년대, 대중적 인지도는 조금 부족했지만 노래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디바'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여성 가수가 있었다. 언제나 무대에 오를 때보다 무대가 끝날 때 훨씬 더 많은 박수를 받았던 가수 장혜진이다.

MBC 합창단 출신의 신인가수, 2집부터 포텐 폭발
 
 장혜진 3집은 군더더기 없는 8개의 트랙으로 채워져 있는 알찬 앨범이다.

장혜진 3집은 군더더기 없는 8개의 트랙으로 채워져 있는 알찬 앨범이다. ⓒ 오감 엔터테인먼트

 
장혜진은 상명여대 체육학과에서 기계체조와 리듬체조를 동시에 전공했던 체조선수였다. 하지만 기계체조 훈련도중 목과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2년 정도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장혜진은 고된 선수생활을 하던 중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 기뻤다고 한다. 사실 체조선수의 경우 선수생명이 워낙 짧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 큰 부상을 당하면 사실상 현역으로 재기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 노래에 관심이 많던 장혜진은 휴식을 취하던 중 MBC 합창단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요즘에야 각 기획사에서 전문 댄싱팀을 결성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수는 노래만 부르고 코러스나 백댄스는 방송국 소속 합창단이나 무용단에서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예전 <토토즐>이나 <젊음의 행진>을 보면 방송국 무용수가 노래와 전혀 상관없는 춤을 열심히 추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장혜진은 막내 매니저로 일하며 방송국을 자주 드나들던 '깡통매니저' 강승호를 만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장혜진은 데뷔곡 <꿈속에선 언제나>를 통해 합창단 출신답게 맑고 고운 음색을 뽐냈다. <꿈속에선 언제나>는 라디오를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장혜진이 가수로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2집 <키 작은 하늘>부터였다.

사실 장혜진은 1집 활동 당시 합창단 출신의 맑은 목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음색을 애써 감춰왔다. 하지만 장혜진은 2집 <키 작은 하늘>에서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강조한 창법(그렇다고 고음에서 힘이 빠지지도 않는다)을 앞세워 1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혜진은 결코 외모가 떨어지는 가수가 아님에도 그 시절 강수지나 하수빈처럼 TV에 자주 출연하는 '비주얼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선 언제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들을 감동시기는 가수로 유명했다. 특히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워낙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내 '무대에 오를 때보다 무대가 끝날 때 더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는 가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장혜진의 '듣는 음악 우선 전략'은 그녀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3집 앨범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장혜진은 3집 앨범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리던 가수 김현철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다. 오랜 경력을 가진 노련한 뮤지션부터 이제 막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약관의 어린 뮤지션까지 다양하게 참여한 장혜진의 3집 앨범은 1994년 11월 세상에 공개됐다.

응원송 <내게로>와 불후의 명곡 < 1994년, 어느 늦은 밤 >

장혜진 3집의 트랙은 총 8개로 구성돼 있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김현철이 작곡한 인트로 형식의 연주곡 < Before The Party >를 제외하면 실제 수록된 노래는 7곡에 불과하다. 90년대 중반이 10곡 이상의 노래들로 앨범을 채우는 게 유행하던 시절이었음을 고려하면 장혜진 3집의 트랙 수는 정규앨범 치고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장혜진 3집은 7곡 만으로도 충분히 듣는 이의 귀를 사로 잡을 좋은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타이틀곡은 여고생 가수 박준희의 <눈 감아 봐도>와 이문세의 <한 번쯤 아니 두 번쯤>, 이장우의 <훈련소로 가는 길> 등을 만들었던 작곡가 유정연이 쓴 <내게로>였다. '숨이 찰 땐 걸어보렴',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어'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살벌한 경쟁을 유도하는 세상에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도 된다는 담담한 위로가 인상적인 곡이다.

90년대의 대표적인 응원송이라면 장혜진의 <내게로>와 노땐스(S.E.S 버전은 2002년에 나왔으니)의 <달리기>를 꼽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두 곡은 모두 박창학이라는 같은 작사가가 가사를 썼다. 하지만 장혜진의 <내게로>에서 조금 늦더라도 함께 걸어가자고 힘을 주는 반면에 노땐스의 <달리기>에서는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라는 잔인한 말로 듣는 이들의 '고생(?)'을 부추긴다.

박창학의 따뜻한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노랫말과 유정연의 부드러운 멜로디, 그리고 장혜진의 시원스런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 <내게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다. 하지만 <내게로>는 라디오를 중심으로 꾸준히 들려지며 1994년 겨울부터 1995년 상반기까지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잔잔하게 사랑을 받았다.

<내게로>를 통해 오랜 기간 사랑을 받은 장혜진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활동곡을 빠른 비트의 <사랑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로 바꿨다. 김완선의 히트곡들을 만들었고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한 손무현이 곡을 쓰고 베이시스와 고 서지원, 솔리드의 노래들을 작사했던 김혜선이 노랫말을 붙인 곡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장혜진의 변신을 다소 낯설어 했고 <사랑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는 <내게로>에 비해 좋은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장혜진 3집에는 <내게로>와 <사랑이라는 그 이름만으로>의 인기를 더해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명곡 <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 들어 있다. 이 곡은 프로듀서 김현철의 가사와 김동률의 곡에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피아노 연주를 한 곡이다. 다른 건 다 잊어도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는 꼭 기억해 달라는 절규는 장혜진의 읊조리는 듯한 저음과 흐느끼는 고음을 타고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 1994년 어느 늦은 밤 >은 작곡가인 전람회의 김동률이 방위병 입대를 앞두고 곡 의뢰를 받아 다소 급하게 만든 노래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곡의 녹음은 김동률이 훈련소에 입대하기 전날 밤에 이뤄졌는데 김동률은 입대 전날 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하고 녹음실을 찾았다. 이를 본 장혜진은 감정을 잡기가 한층 수월해져 예정보다 짧은 시간에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 떠나간 남자를 생각하며 '주책도 없이' 눈물 흘리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우>는 제목처럼 비가 오는 날에 듣기 좋은 슬픈 발라드 곡이다. 솔리드의 정재윤이 작곡한 <귀여운 남자>는 김현철과의 듀엣곡으로 쓰다 만 듯한 여운을 남긴 가사가 인상적이다. 장혜진 3집은 백만장이 팔리지도 않았고 가요 프로그램 1위곡을 배출하지도 못했지만 '디바' 장혜진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확신'으로 바꿔준 앨범이었다.

성대결절도 막지 못한 '디바' 장혜진의 음악 열정
 
 장혜진이 <복면가왕>에서 부른 <1월부터 6월까지>는 <복면가왕> 스페셜앨범에도 수록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혜진이 <복면가왕>에서 부른 <1월부터 6월까지>는 <복면가왕> 스페셜앨범에도 수록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 MBC 화면 캡처

 
장혜진은 1996년 4집 <완전한 사랑>, 1997년 싱글 <꿈의 대화>, 1998년 5집 <영원으로>를 차례로 발표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2002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 후 콘서트 실황이 담긴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장혜진은 30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많은 나이와 기혼자라는 사실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장혜진에겐 큰 제약이 되지 못했다.

장혜진은 다른 뮤지션들과의 듀엣 등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바이브 3집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비롯해 듀스 2.5집의 <떠나버려>, 리쌍의 개리와 함께 부른 <불꽃> 등이 대표적이다(이온음료 같은 장혜진의 청량한 목소리가 듣고 싶다면 윤종신 4집의 < Good-Bye >를 추천한다). 그만큼 장혜진의 목소리에 대한 동료 뮤지션들의 신뢰가 높다는 뜻이다.

장혜진은 유학 생활을 마친 후 서울 재즈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재직하다가 2009년부터 한양여대 실용음악과의 전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레인보우 출신의 파워블로거(?) 김지숙이 교수 장혜진의 제자 중 한 명이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장혜진은 데뷔 초기부터 성대결절에 시달렸다. 장혜진은 수술 후에 목소리가 변할 수 있어 끝내 수술을 하지 않았고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엔 항상 녹화 당일 병원에 들렀다고 한다.

장혜진은 지난 1월 신곡 <이별에게 졌나 봐>를 발표했고 6월에는 한동근과의 듀엣곡 <서쪽 바다>를 발표했다. KBS 9시 뉴스가 방송되기 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이라는 로고송 목소리의 주인공도 바로 장혜진이다.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는 장혜진은 5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가수'로 대중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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