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국민영웅이자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중 한 명으로 꼽히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하늘의 별'이 됐다. AFP 등 주요 외신들은 25일(현지시간) 일제히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티그레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60세, 현대에는 그리 고령이라고 할수 없는 나이다. 최근까지도 클럽팀 감독 등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던데다 지난 11일에는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퇴원한 것으로 알려져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전세계 축구팬들은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대통령실 성명을 통해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신'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DIOS에 그의 등번호 10을 넣어 'D10S'라고 적힌 배너를 흔들어 곳곳에서 추모의 뜻을 밝히고 있다. 마라도나와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축구팬으로 알려진 프란체스코 교황도 대변인실을 통하여 성명을 내고 고인을 애도했다.

라이벌로 꼽혔던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를 비롯하여,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두 자신의 SNS를 통하여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마라도나의 위상이 단순한 한명의 유명 축구인을 넘어서 얼마나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풍운아' 마라도나

마라도나는 펠레와 함께 세계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1~2위를 논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전설이다. 펠레가 '축구황제'라면 마라도나는 '풍운아'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축구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천재이자 탁월한 테크니션이었지만, 그라운드 안팎에서 거침없는 기행과 사건사고, 명암이 엇갈리는 사건사고 등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던 '애증의 인물'이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남 4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가난한 빈민가에서도 특출난 축구 실력 하나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인생역전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의 명문 보카 주니어스를 거쳐 보카 주니어스,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와 세비야FC, 이탈리아 SSC 나폴리 등을 거치면서 총 23년간이나 프로 선수 생활을 보냈다. 통산 692경기에 출전하여 무려 352골을 기록했다. 국가대표로서도 역대 최연소(16세)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래 1979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현 U-20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정상에 올려놓았고, '꿈의 무대' 월드컵 본선에만 4차례 출전해 1986년 우승과 1990년 준우승을 이끌며 세계축구계를 흔들었다.

마라도나의 축구스타일을 현대의 슈퍼스타들과 비교하자면 폭발적인 드리블 능력은 네이마르, 넓은 시야와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메시,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단단한 체격과 큰 경기에서 더 빛나는 골결정력은 호날두의 장점을 연상시킨다. 거친 압박과 파울성 플레이에도 어지간해서는 밀려서 쓰러지지 않고, 수비를 달고 드리블중에도 자유자재의 방향전환과 개인기를 구사하는 화려한 플레이는 지금봐도 경탄을 자아낸다.

축구팬들에게 마라도나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마라도나는 이 대회에서 혼자 5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의 후계자로 꼽히는 국가대표 후배 리오넬 메시가 화려한 클럽경력에도 아직 마라도나를 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유일한 이유는 월드컵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우승보다 두고두고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는 기록한 그 유명한 '신의 손' 득점이었다. 마라도나는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손으로 슬쩍 공을 건드렸지만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다. 당시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마라도나는 이에 대한 언론의 질문이 이어지자 "신의 손에 의해 약간, 나머지는 머리로 넣은 골"이라는 기상천외한 명언을 남기며 손을 썼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월드컵 우승이 국가대표 커리어의 정점이었다면 클럽에서는 나폴리 시절이었다. 모국 아르헨티나와 함께 마라도나가 신처럼 숭배받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다. 마라도나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나폴리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며 188경기에 출전하여 81골을 넣다.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명문팀에서도 활약한 마라도나지만, 그의 커리어 최전성기를 보낸 것은 바로 나폴리였다. 이때의 활약이 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가하면,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입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하위권을 오가는 평범한 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두 번의 세리에A 우승(1987, 1990)과 한번의 UEFA컵 우승(1989)을 거머쥐며 찬란한 전성기를 열었다.

'마라도나 시대'의 우승 기록이 곧 나폴리 역사의 전체 리그 우승 기록과 동일하다. 지역감정이 극심한 이탈리아에서도 극심한 경제난과 치안 불안 등으로 무시당하는 위치에 있던 나폴리에게 마라도나는 축구로 자부심을 안겨준 존재였다. 나폴리 시민들의 마라도나에 대한 애정은 절대적이어서 그가 나폴리를 떠난 지 3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곳곳에 마라도나의 활약을 그린 벽화들이 남아있다. 마라도나가 2017년 나폴리의 명예시민으로 위촉되었을 때는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여 환호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걸출한 축구실력만큼이나 화제가 되었던 숱한 기행과 사건사고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 재능에 비해 부족했던 자기관리  등으로 마라도나는 일생 내내 숱한 구설수에 휘말렸고 그것이 선수로서의 명성을 상당히 깎아먹었다.

나폴리에서 말년에는 마약인 코카인 복용으로 15개월 동안 선수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자신의 마지막 대회였던 1994월드컵 기간 중에 금지약물인 에페드린 복용이 적발되며 대회 도중 퇴출당했다. 마라도나가 활약했던 나폴리는 마피아의 근거지이자 각종 범죄로도 악명이 높다. 각종 유명세에 시달렸던 마라도나도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마약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이런 무절제한 모습은 은퇴 후에도 마라도나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탈리아 시절에는 세금 탈루 혐의로 법정에 서야했고 입출국시에 시계와 보석을 압류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취재하려던 기자에게 공기총을 쏴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가 하면, 관중석에서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팬들에게 양손가락 욕설을 날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나서기도 했지만 화려했던 현역 시절에 비하면 '명 선수는 명 감독이 되기 어렵다'의 좋은 반면교사만 남겼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조국 아르헨티나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메시, 이과인, 베론, 아게로, 에인세 등 초호화멤버를 거느리고도 남미지역예선을 턱걸이로 간신히 통과하는가 하면, 본선에서는 8강에 올랐으나 독일에 힘 한번 못쓰고 참패를 당하는 등 흑역사를 남겼다. 이후로도 알 와슬, 도라도스 데 시나로아, 힘나시아 데 라 플라타 등 중동과 중남미의 여러 변방클럽들을 전전으나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 축구와의 인연

마라도나는 한국축구와도 인연이 있었다.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만에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아르헨티나가 있는 마라도나와 한 조가 됐다. 정상적인 수비로 도저히 마라도나를 막을 수 없었던 한국은 결국 허정무를 마라도나의 전담 마크맨으로 붙이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허정무의 마크로 마라도나는 부진한 경기를 펼쳤다.

외신에서는 허정무가 공을 걷어내면서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걷어차는 장면을 올리며 '태권축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마라도나도 훗날 "당시의 한국은 축구가 아니라 태권도를 했다"며 비난했고, 허정무는 "고의성이 없었기에 당시 심판도 경고조차 주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마라도나는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 열린 2017년 U-20월드컵의 조추첨자로 방한하기도 했는데, 이때 다시 허정무 감독과 재회했다. 과거의 앙금이 풀린 듯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악동으로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축구팬들 앞에서는 친절한 미소와 장난끼 넘치는 모습으로 호평을 받았던 그다.

마라도나는 축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풍운아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자신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온 '마이웨이 정신'이야말로, 마라도나를 축구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선수로 기억하게 만든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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