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 포스터

영화 <내가 죽던 날>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눈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한바탕 울고 난 뒤엔, 그간 속에 얹혀 있던 슬픔, 분노,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찌꺼기를 게워낸 것처럼 속이 편안해진다. 특히 우는 것이 서툰 사람들에겐 더하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무슨 일인가 호되게 마음이 상한 다음에도 '도대체 그게 뭐라고 울 것까지 있냐'며 나 자신을 다그치기 일쑤다. 그런데 울어야 할 때를 놓친 사람들은 남들 눈엔 매사 배짱 좋아 보일진 몰라도, 사는 것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최근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펑펑 울 일이 하나 생겼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보던 중이었다. 사실 영화가 시작한 지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결말을 예상했다. 그러나 영화는 뜻밖에도 빤한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극에서 멀찍이 비켜 서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내가 죽던 날>은 2008년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주목받는 여성 감독 박지완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또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 받고 있는 배우 김혜수와 영화 <기생충>에서 어마어마한 연기 내공을 펼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배우 이정은의 만남만으로도 영화는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거기에 당찬 신예 배우 노정의까지 합류해서, 영화는 우는 것이 서툰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오래 묵어 두었던 눈물을 쏙 뽑아낸다.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컷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실 남성 감독과 남성 배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의 선전은 쉽지 않다. 더 많은 여성 중심 서사의 영화가 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배우진과 감독의 노력 끝에 완성된 영화가 바로 <내가 죽던 날>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는 태풍이 몰아치던 날 벌어진 한 소녀(세진)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세진(노정의)은 중요 범죄의 핵심 증인이자 용의자의 하나뿐인 딸이다. 경찰은 그동안 '증인 보호'란 명분을 내세워 세진을 외딴 섬의 빈 집에 머물게 했다. 세진은 24시간 자신을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된 집에 혼자 남아 기약 없고 희망은 더더군다나 없는, 위태위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는 그것을 견딜 수 없다는 심정을 토로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문제는 절벽에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진의 시체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서둘러 세진의 죽음을 단순 자살로 종결지으려는 경찰 측에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휴직 상황에서 막 복귀를 결심한 현수(김혜수)에게 사건을 맡긴다.
 
믿었던 남편의 외도와 자신을 둘러싼 추문 속에서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오던 현수는 그즈음 일선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수는 상사로부터 '경찰이 세진의 신변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그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보고서를 제출한다면, 그가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안을 받고 섬으로 향한다. 영화는 이처럼 사라진 소녀의 시체를 찾는 형사의 이야기라는 범죄 미스터리물의 형식을 표방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현수가,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배신당한 뒤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어야했던 세진의 처지를 자신에게 이입시키면서부터 영화는 자연스레 범죄 미스터리물에서 멀어진다. 대신 상처 입은 존재들끼리의 연대라는 드라마의 주제를 향해 속도감 있게 달려간다. 그 중심부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세진이 머물던 빈집의 주인인 순천댁(이정은)이다.
 
순천댁은 동생이 죽고 난 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인 조카를 돌보고 있다. 그러나 조카는 식물인간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온종일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처지다.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조카를 묵묵히 돌보던 와중에 심신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차례 음독을 시도했던 순천댁. 순천댁은 그 일로 인해 목소리를 잃는다.
 
순천댁은 현수에게 세진이 죽던 날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전부를 필담으로 증언한다.  그러나 현수는 순천댁의 증언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순천댁이 세진의 죽음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평범한 여고생으로 별다른 걱정 없이 살던 세진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렸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세상으로부터 뚝 떨어져, 가족도 친구도 없이 그저 혼자 남겨져 잊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택할 수 없었던 세진에게 순천댁은 믿고 기댈 수 있는 단 한 명의 보호자나 다름없었다.
 
순천댁은 세진의 외로움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세진의 처지에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진 역시 긴 세월 순천댁이 혼자 감내해왔던 아픔을 공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끌어 안았다. 그래서 세진의 죽음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현수의 다친 마음 또한 천천히 다독여지기 시작한다.
 
현수는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 어쩐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한 상태다. 명백한 유책 배우자인 남편은 현수의 상처를 조금도 헤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협의 과정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를 더 깊은 절망의 끝으로 몰아붙인다. 그래서 현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자책한다. 나는 왜 몰랐을까? 몰랐다는 것은 결국 내 잘못이 아닐까?
 
영화는 세진과 순천댁, 현수라는 인물을 통해 살아보고자 발악하는, 연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세진이 되었다가 순천댁이 되었다가 다시 현수가 되면서 어느 순간 그 모두가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순천댁이 세진을 향해 건네는 서툰 한마디는 오랫동안 여운에 남는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이 한줄의 대사만으로도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미덕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꾸만 어긋나고 주저앉게 되는 고된 일상의 어디쯤에서 눈물이 고픈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혹 남들 눈에 속없이 나약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쉬지 않고 훌쩍이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여러모로 힘들고 지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 무엇도 네 잘못이 아니다, 이 다정한 한마디가 절실한 당신이라면 지금 이 영화가 딱이다. 가슴 속 어딘가 울음이 체한 것처럼 얹혀 있다면, 지체하지 말자. 지금이 바로 쏟아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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