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현대건설을 완파하고 파죽의 8연승 행진을 내달렸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2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7,25-14,25-23)으로 승리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개막 후 최다 연승 기록을 '8'로 늘린 흥국생명은 2위 IBK기업은행 알토스(15점)와의 승점 차이를 7점으로 벌리며 독주체제를 이어가고 있다(승점 22점).
흥국생명은 통산 2500점과 후위득점 600점을 돌파한 김연경이 블로킹 2개를 포함해 17득점으로 공격을 주도했고 이재영이 14득점, 루시아 프레스코가 9득점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에 현대건설은 헬렌 루소를 윙스파이커에 배치하고 황연주를 선발 출전시키는 변칙적인 선수기용을 들고 나왔지만 흥국생명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현대건설은 2연승 후 6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이다영 떠났지만 거물 외국인 선수 루소 합류
▲ 현대건설은 5순위 지명권으로 루소라는 거물 외국인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다. ⓒ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주전 리베로 김연견이 발목부상으로 21경기 만에 시즌아웃되고 외국인 선수 밀라그로스 콜라(등록명 마야)가 중도 퇴출되는 악재 속에서도 27경기에서 20승7패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물론 지난 시즌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시즌이 조기 종료됐지만 만약 플레이오프까지 정상적으로 치렀더라도 현대건설은 챔프전으로 직행할 확률이 가장 높은 팀이었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현대건설의 경사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팀의 기둥 양효진이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에 선정된 것이다. 양효진은 김연경이 해외 무대로 떠난 이후 V리그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며 8년 연속 연봉퀸과 11시즌 연속 블로킹 여왕 등 화려한 수식어가 있었지만 유독 정규리그 MVP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따라서 양효진에게 첫 MVP 수상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이다영 세터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현대건설은 졸지에 지난 세 시즌 동안 풀타임을 소화했던 주전 세터를 잃게 됐다. 현대건설은 흥국생명으로부터 보상선수로 신연경(기업은행)을 지명한 후 기업은행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나연 세터를 영입했다(이나연 세터 역시 조송화 세터의 입단으로 기업은행에서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다).
이다영 세터를 빼앗긴 현대건설은 나머지 집토끼 단속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팀의 주장이자 주전 윙스파이커 황민경을 총액 3억 원(연봉 2억8000만원+옵션2000만원)에 붙잡았고 김연견 리베로를 잡는데도 2억 원(연봉 1억8000만원+옵션2000만원)을 투자했다. 샐러리캡(연봉상한선)이 23억 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이다영을 제외한 나머지 내부 FA선수를 잡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5순위 지명권을 얻은 현대건설은 안나 라자레바(기업은행)와 함께 '빅2'로 불리던 벨기에 국가대표 출신의 헬렌 루소를 지명했다. 벨기에와 스위스, 폴란드, 이탈리아, 터키 리그 등 유럽의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한 루소는 지난 시즌 터키리그에서 득점2위와 함께 윙스파이커 부문 BEST7에 선정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황민경 부상과 부진 속 대체할 선수가 마땅치 않다
▲ 현대건설의 주장 황민경은 이번 시즌 발바닥 부상으로 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컵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현대건설은 지난 10월 17일 GS칼텍스 KIXX와의 개막전에서 새로 영입한 이나연 세터 대신 김다인 세터를 주전으로 출전시켰다. 그리고 세트 중간마다 이다현을 투입하고 정지윤이 윙스파이커로 나서는 작전으로 높이와 공격력을 동시에 보강했다. 외국인 선수 루소가 서브리시브까지 가능하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개막전에서 3-2로 승리한 현대건설은 23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를 3-0으로 꺾으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도로공사전 3-0 승리는 현대건설이 이번 시즌 따낸 마지막 승리였다. 현대건설은 이후 6경기에서 거짓말처럼 모든 경기에서 내리 패했고 18번의 세트를 잃는 동안 단 세 세트를 따내는 데 그쳤다. 2-3 패배조차 없어 승점을 1점도 따내지 못한 것이다. 5연패 중인 '동병상련의 팀' 도로공사(승점 4점)가 있어 최하위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현대건설이 지난 시즌 1위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시즌 추락은 믿기 힘든 결과다.
이번 시즌 352득점을 합작하고 있는 '삼각편대'의 활약은 썩 나쁘지 않다. 특히 프로 3년 차를 맡는 정지윤은 중앙과 양 날개를 오가면서 39.06%의 공격성공률과 함께 세트당 0.75개(3위)의 블로킹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정지윤의 블로킹이 세트당 0.47개였음을 고려하면 상당한 발전속도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정지윤은 입단 동기인 박은진(KGC인삼공사), 이주아(흥국생명)보다 공수에서 한 발 앞서가고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발바닥 통증으로 8경기에서 단 27득점에 공격성공률 15.7%에 그치고 있는 황민경의 부진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시즌 36.9%의 성공률로 267득점을 올려준 황민경이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고예림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도희 감독은 22일 흥국생명전에서 루소를 윙스파이커로 출전시켰지만 이날 루소는 32번이나 몰려오는 목적타 서브를 감당하지 못하고 3.13%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흔들렸다.
노장 황연주에게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기대할 수 없고 황민경도 당장 제 컨디션을 보여줄 수 없다면 정지윤을 오른쪽에 배치하고 중앙에 이다현을 투입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루소가 서브리시브를 어느 정도 감당해 줘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현대건설은 오는 29일과 12월 4일 각각 인삼공사와 도로공사를 상대한다. 이 두 경기에서도 연패를 끊지 못한다면 현대건설의 부진은 연말까지 길게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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