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추천사가 장류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더해졌다. 그리고 그런 추천사가 틀리지 않게 <일의 기쁨과 슬픔>은 출간과 동시에 동시대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미 앞서 2012년 알랭 드 보통은 동일한 제목의 <일의 기쁨과 슬픔>, 부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를 통해 '일' 그 자체의 현장을 글로 되살려내며,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엄숙한 '노동'을 통해 '먹고사니즘'으로 낮잡아 치부되던 '일' 그 자체의 존엄성을 살려낸 바 있다.

장류진 작가는 바로 그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추구했던 '노동의 현장'을 그녀가 소설을 쓰며 몸 담았던 20세기 한국 사회로 옮겨온다. 책의 소개글에서 말하든 '눈물짓되 침잠하지 않고, 힘에 부치지만 자기 나름의 지혜로 잘 버텨나가고자 하는' 이 시대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시대인들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화제작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지난 21일 KBS 드라마 스페셜 네번째 작품으로 찾아왔다. 

판교에서 밥벌이란?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 kbs

 
우리 사회에서 '판교'란? 첨단 IT기업과 스타트업 기업들이 '군집'하는 판교는 마치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우리 사회 첨단의 기업과 기업 문화를 상징한다. 드라마는 바로 그 '판교' 속 직장인의 모습을 그려내며 문을 연다. 

경쾌하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으로 하루를 여는 안나(고원희 분)와 제니퍼(김보정 분), 이들은 '우동은 팔지 않습니다'란 문구를 붙인 문을 열고 자신들의 직장인 '우동 마켓'으로 들어선다. 그들을 맞이한 건 아침부터 탁구를 치던 우동마켓의 CEO 데비잇(오민석 분)이다. 탁구도 잠시, 다함께 모여 실리콘 밸리의 합리적이며 효과적인 미팅 방식을 본딴 스크럼을 짜자고 하는 데이빗. 그런데 어쩐지 모여드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드라마는 주인공 안나의 독백을 통해 언뜻 보기에는 그럴 듯한 스타트업이 보이지만 사실은 중고 직거래 사이트인 우동 마켓이라는 직장을 통해 수평적인 '첨단'의 직장 문화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 갑을 관계와 얽히고설킨 인간 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판교'의 한 직장을 조명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수평적 스타트업이지만, 스사트업 전체 중 단 3%만이 생존하는 게 현실인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고급 외제차 카달로그를 손에 쥔 채 소수의 개발자와 기획자와 함께 유저 한 사람에 일희일비하는 우동마켓의 생생한 직장 내 생태가 드라마의 한 축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본명이 안나라 본의 아니게 안나가 되어버린 기획자 안나를 중심으로 갑이 아닌 척하지만 '갑'인 CEO 대식과  매번 기획자와 개발자의 업무적 성격으로 인해 충돌을 빚게 되는 사회성 부족한 외골수 개발자 케빈과의 갈등이 그 중심에 있다. 

안나는 자신의 촌스러운 본명을 숨기고자 외국식 예명을 쓰고 실리콘 밸리 방식을 흉내내는 CEO 데이빗을 비웃지만, 실수로 올린 기획자 모집 공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케빈과의 직무적 갈등에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는 양가적 존재감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우동 마켓의 헤비 유저 '거북이 알'에 대해 알아보라는 CEO 대식의 '명령 아닌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커피 머신 구입을 핑계로 드라마의 또 한 축이 되는 거북이 알, 이지혜(강말금 분)를 만나 그녀가 중고 거래 사이트의 '헤비 유저'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전해 듣게 된다.

카드 회사 차장이 거북이 알이 된 사연은?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 kbs

 
이지혜는 거대 기업인 유비 카드의 현직 15년차 차장, 그녀는 한때 공연 기획팀을 이끌던 책임자였다. 유비 카드의 회장이었던 조운범 회장이 직접 지시한 명망있는 아티스트의 기획을 실행하던 중, 회장의 '복심'을 무시한 채 절차에 따라 일을 처지하다 밉보여 카드 기획팀으로 발령을 받았고, 이제 월급조차 1년 동안 '포인트'로 받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 '포인트'를 현금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동 마켓의 헤비 유저가 된 사연을 이지혜는 안나에게 허심탄회하게 전한다. 

'판교'라는 첨단 산업의 공간, 하지만 그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겪는 건 수평적인 기업 문화라는 그럴 듯한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여전히 '갑을' 관계가 현존하는 상황이다. 

스크럼을 짜자고 해놓고서는 CEO의 일방적인 아침 조회라던가, 해비 유저의 득세를 알아보라는 지시에 기획자라는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까봐 거절하지 못하는 구차한 상황은 안나의 '자존감'을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런 안나는 해비 유저 거북이 알을 만나, 그녀가 단지 자신의 인별그램 홍보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하고 거기에 더해 '포인트'로 월급을 받게 되는 '보복'까지 당하게 되는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끼고, 그럼에도 '거북이 알'이 되어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극복하려는 이지혜의 태도에 '동지'적 위로를 얻는다. 

알랭 드 보통이 바다에서 사무실까지 섭렵하며 '일'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며 때로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으며 단순 반복적이며 세상에 조명되지 않는 일들의 존재론적 의미를 복원해냈다면, 장류진 원작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론에 방점을 찍는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직장 내 서열과 '관계'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 그럼에도 '월급'이라는 문자 하나에 기분이 전환되는 아이러니한 '밥벌이'에 구속된 존재들이 그럼에도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구겨지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며 살아내개 위한 '노력'들을 드라마는 원작의 주제에 맞게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글이 드라마로 구현되는 과정은 또 다른 '창작'의 현장인지라, 20~30대 직장인들을 열광케 했던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달픔이 감각있게 표현되었는가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덤덤하지만 내공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강말금 배우의 이지혜 에피소드는 배우 류진의 또 다른 면을 발견케 해준 조윤범 회장과의 호흡을 통해 원작 속 의도가 실감나게 전달된다.

반면  안나의 우동마켓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배우들 연기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다보니 이야기의 경중에서 밀리고 만다. 덕분에 판교라는 공간이 가지는 사회 생태적 환경에 대한 이야기의 '페이소스'가 아쉽다. 아마도 원작을 읽으며 동시대적인 공감에 무릎을 쳤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드라마적 감동에 인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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