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중계의 명콤비로 활약했던 송재익 아나운서와 신문선 해설위원 축구중계의 명콤비로 활약했던 송재익 아나운서와 신문선 해설위원

송재익 ⓒ SBS 화면 캡쳐

 
'축구중계의 송해' 송재익(78) 캐스터가 50년 동안이나 잡아 온 마이크를 내려놓고 시청자로 돌아간다. 현역 최고령이었던 송재익 캐스터는 지난 21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27라운드 서울 이랜드와 전남 드래곤즈의 시즌 최종전에서 마지막 중계방송을 마쳤다.

송재익 캐스터는 스포츠 방송계의 전설이다. 1970년 MBC 공채 4기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 방송에 입문했고 다수의 스포츠 중계를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초창기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송재익하면 권투 전문 캐스터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당시의 권투는 공중파에서도 여러 차례 생중계될 정도로 국민적인 인기스포츠였고, 송재익 캐스터는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와의 대결 등 굵직한 빅매치들을 여러 차례 전담했다. 아웅산 테러 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의 국가적 비극이나 시사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진행을 맡아 스포츠 중계 때와는 또다른 차분하고 진중한 진행톤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역시 송재익의 이름을 전국민적으로 각인시킨 계기는 역시 축구중계였다. 송 캐스터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무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중계를 전담했다. 어지간한 선수나 감독보다도 더 많이 월드컵을 경험했다. 이로 인하여 지금도 중장년 축구 팬들에게는 '축구캐스터하면 송재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송재익 캐스터의 트레이드 마크하면 역시 '현란한 입담'을 빼놓을수 없다. 요즘 흔히 애드리브라고 불리우는, '대본이 없는 상황에서도 즉흥적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능력' 면에서는 지금의 젊은 캐스터들도 송재익을 따라올만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 요즘으로 비교하면 차라리 이수근이나 탁재훈, 김흥국같은 '연예인 애드리버들의 스포츠 캐스터 버전'이라고 할수 있다. 방송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처음엔 토크 프로그램 진행자를 꿈꿨던 송캐스터는, 비록 원했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대신 자신의 특기를 스포츠 중계를 통하여 마음껏 발산했다.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3차전)은 지금도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이자 송재익 캐스터의 '인생경기'로도 회자된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일본에 선제골을 내주고도 서정원의 동점골과 이민성의 결승골로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른바 한국축구사에 전설로 남은 '도쿄대첩'이다. 당시 중계방송 시청률은 50%를 넘어설 정도로 국민적인 반응은 뜨거웠다.

여기에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질 당시 송재익 캐스터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남긴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전설 멘트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야구 한일전에서 허구연 해설위원이 남긴 "데쓰요(됐어요)! 고마워요 사토.", "지금 독도를 넘겼어요. 대마도까지 갔네요(이승엽의 결승홈런 때)." 등과 더불어 역대 한일전 명승부에서 국민감정을 가장 시원하게 대변해준 어록으로도 불린다.

훗날 송 캐스터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 순간을 회상하며 "한일전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멘트가 필요했다. 그 순간에는 왠지 일본의 자존심을 한번 건드리고 싶었다. 먼저 떠오른게 '일왕'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거는 건드리면 안되겠다 싶어, 그 다음으로 생각난 어휘가 '후지산'이었다. 그것이 호응을 많이 얻었고, 일본에서도 굉장히 반응이 컸었다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이후로 송재익 캐스터는 수많은 방송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무수한 어록을 양산했다. 송 캐스터와 축구중계에서 '영혼의 콤비'로 불린 신문선 해설위원 역시 남다른 화술이 돋보이던 스타일이라 이들의 조합은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주춤주춤, 슛! 꼬올~" "아, 위험합니다앗~" "여기서 이상한 짓을 했어요." "아, 저 선수 아직 애가 없는데요(경기중 급소를 맞고 쓰러진 선수를 보며). "수비가 깨진 쪽박처럼 물이 줄줄 세네요." "호떡집에 불난 꼴이에요." "우리가 가스불을 줄일 필요는 없어요. 끓일 때는 펄펄 끓여야 해요." "저 감독은 오늘 굶고 자는 게 좋겠어요, 먹고 자면 체하겠어요."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밥상 들여가듯 올려준 센터링이에요" "마치 보신각 타종하듯이 내리찍은 헤딩이네요" "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께 빌고, 없으신 분은 조상님께 빕시다.(한일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를 앞두고) 등등 지금봐도 정말 저 시대에 방송에서 실제로 저런 말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드립'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곤 했다.

송 캐스터가 주로 축구경기의 다양한 상황을 일상이나 속담에 빗댄 차진 비유가 많았다면, 신문선 위원은 그뒤로 '디딤발'이나 '스포츠 과학'에 대한 강의에 가까운 추가설명을 줄줄이 늘어놓는게 백미였다. 오죽하면 누리꾼들의 패러디를 통해 송재익 캐스터나 신문선 위원의 스타일을 살려서, 당사자들이 정작 실제로 하지않은 발언들까지 한 것처럼 잘못 알려진 어록들도 많았다. 의외의 반전은, 축구중계에서의 호흡과 달리 두 사람간의 사적인 친분은 그리 깊지 않았다는 것. 송재익 캐스터는 훗날 인터뷰에서 서로의 개성과 스타일이 달라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호흡이 잘 맞지는 않았고, 지금도 따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송재익-신문선 콤비의 진행은 한창 인기를 끌던 당시에도 부작용 역시 적지 않았다. 당시에도 지나치게 가볍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2002 월드컵이었다. MBC에서 30년 가까이 중계를 맡았던 송재익 캐스터는 신문선 위원과 함께 특급대우를 받으며 SBS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차범근 위원을 영입한 MBC가 오히려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며 방송사별 시청률 경쟁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70~1990년대까지의 국내 스포츠 중계가 주로 정해진 대본을 바탕으로 개인의 진행능력과 입담에 의존했다면, 2000년대들어 축구에서는 과거보다 전문성과 현장감각을 갖춘 '축구 전문 캐스터'- '선수나 언론인 출신 해설가' 등이 잇달아 등장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축구팬들의 경기 이해도와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송재익 캐스터와 신문선 위원 등의 '올드한 중계 세대'의 빈약한 축구지식과 부정확한 정보전달 등이 약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차츰 주류에서 밀려났다.

시대 흐름에 뒤처진 송 캐스터의 잦은 실언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만큼 방송 경력이 오래되고 축구인들과도 친분이 있기에 가능한 말이기는 했지만, 방송에서 선수나 감독을 대놓고 공격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않아 자주 질타를 받았다. 특히 최고령 캐스터로 활약한 올해에는 '연고이전' 문제로 역사적 악연이 있는 부천FC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중계하며 "SK가 제주도로 내려가고 부천은 FC로 바뀌었다. 프로축구에서 그런 환경이 바뀌는 것에 연연해선 안 된다"며 연고지 문제에 민감한 축구팬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현대축구의 흐름이나 문화, 달라진 팬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옛날 캐스터의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단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송재익 캐스터가 무려 50년에 걸친 현역 생활을 통하여 후배들에게 스포츠 캐스터라는 분야에서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다는 선례를 개척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이다. 과한 입담 때문에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송 캐스터는 항상 방송을 준비하면서 스포츠에 관한 정보는 물론이고, 경기에 열리는 구장이나 도시의 역사, 현장 주변의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연구하며 방송에 사용할 멘트를 고민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보기보다 엄청난 체력소모가 요구되는 스포츠 중계에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말년까지 발성이나 호흡, 순발력 면에서 젊은 캐스터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도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지금보다도 방송의 '엄숙주의'가 훨씬 강하던 시대에 틀에 박힌 중계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진행과 입담을 추구했다는 것은, 이후 세대인 배성재-조민호-김성주-이재형 등의 스포츠 캐스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과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데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포츠 중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스포츠에 대한 자잘한 정보나 화술의 기교 따위를 넘어, 이 백전노장이 수십 년 간 한결같이 방송에 임했던 철학과 프로정신, 장수의 비결을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