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랜드의 정정용 감독이 지난 2일 홈경기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서울 이랜드의 정정용 감독 ⓒ 박영우

 
승격의 꿈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프로축구 K리그2 서울 이랜드가 결국 준플레이오프를 향한 마지막 티켓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정정용호'가 보여준 가능성은 내년을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결코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에 가까웠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서울 이랜드는 21일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27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 전까지 준PO 진출권인 4위였던 이랜드는 최종 승점 39점, 33득점을 기록했으나, 같은 승점을 올린 경남FC(39점, 40득점)-대전하나시티즌(39점, 36득점)에 다득점에서 밀리며 5위로 내려앉으며 분루를 삼켜야했다.

승격의 기적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지난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이랜드로서는 '동네북' 신세를 벗어나 승격 경쟁을 다투는 팀으로 올라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반등이었다. 이랜드는 2014년 창단과 2015년 K리그2 무대에 처음 뛰어든 이래 줄곧 2부리그를 벗어나지 못했다. 첫 시즌인 2015년에 4위(16승 14무 11패, 승점 61)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이 역대 최고성적이었고, 이후로는 6→8→10→10위를 기록하며 줄곧 내리막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창단 6년밖에 되지않은 팀이 벌써 6명이 감독이 거쳐가며 임기가 평균 1년밖에 되지않을 만큼 감독의 지위와 리더십도 안정적이지 못했다. 팬들도 창단 이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이랜드의 행보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변화의 중심에는 정정용 감독의 등장이 있었다. 이랜드는 지난해 11월 28일 당시 U-20 대표팀을 이끌던 정정용 감독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정 감독은 지난해 6월 폴란드에서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정 감독의 수제자였던 이강인은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최우수선수인 골든볼까지 수상했다. 정 감독은 남자 대표팀 역사상 FIFA 주관 대회 최고 성적을 올리며 일종 무명 지도자에서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정 감독은 그해 8월 축구협회와 2021년까지 U-20 대표팀을 전담하는 재계약을 체결했고, 10월까지 고등학교 선수들로 꾸린 U-18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예선을 통과하기도 했다. 유소년 선수 육성과 연령대별 대표팀에 대한 애착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정 감독이 프로행, 그것도 2부리그에서도 최하위팀의 사령탑직을 선택한 것을 두고 많은 축구팬들이 놀랐다.

사실 정 감독은 이랜드와 과거부터 인연이 있었다. 정 감독은 서울 이랜드의 전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실업팁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이자 원클럽맨이었다. 공교롭게도 푸마는 그가 부상으로 은퇴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1998년을 끝으로 해체됐다. 사실상 구단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랜드는 그동안 감독 선임에서 정정용 감독을 비롯하여, 2대 박건하(수원 감독), 4대 인창수(현 이랜드 코치) 등 과거 푸마에서 뛴 경력이 있었던 인물을 자주 영입했다. 인창수 코치는 이랜드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지도자로 활동하며 2019 U20 월드컵에서 정감독을 보좌했고, 그가 이랜드로 자리를 옮기자 다시 코치로 함께 부임하는 등, 자신이 감독을 맡았던 팀에 코치로 합류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정 감독의 이랜드행에 세간의 평가는 엇갈렸다. 물론 프로행 자체는 어찌 보면 예고된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정 감독은 이미 U20 월드컵 이후 여러 프로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대한축구협회에서 10여년 넘게 유소년 지도자로 활약하며 정점을 찍어본 만큼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 감독은 정정용 감독에게도 검증되지않은 낯선 경험이었다. 이전까지 정 감독의 프로 지도자 경력이라고는 2014년 당시 2부리그로 갓 강등당했던 대구 FC의 암흑시절 수석코치로 한 시즌을 치른 게 프로에서의 유일한 지도자 경력이었고, 당시 대구는 부진한 성적으로 1부 승격에 실패하며 최덕주 감독이 경질되자 코치였던 정 감독도 자연스럽게 팀을 떠나야했다. 정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프로 선수에서 뛰어본 경력은 전무했다. '초보 감독과 리그 꼴찌팀의 조합'이라는, 어쩌면 스포츠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도박에 가까운 시도였다.

하지만 정 감독은 자신의 임기 3년동안 이랜드의 1부리그 승격을 약속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부임과 동시에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이랜드를 자신의 축구철학을 입히면서 천천히 변화시켰다. 이상민 등 자신의 U-20 대표팀 제자들을 영입하면서 세대교체를 시도했고, 대표팀에서 성공했던 빌드업과 점유율 중심의 축구를 바탕으로, 전력상 약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했다. 1군의 성적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육성 프로세스까지 가동하여 산하 유소년팀 출신 선수들을 꾸준히 발탁하는 등 팀의 미래까지도 신경쓰고 있다. 처음 기대반 우려반으로 바라보던 팬들도 차츰 정 감독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사실 정정용의 이랜드를 두고 애초에 첫 시즌부터 기적적인 반등을 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불과 2년전에서 K리그 상위권에 있던 경남이나, 신생구단이지만 엄청난 투자로 전력을 끌어올린 대전은 이랜드보다 승격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았던 팀들이다. 하지만 이랜드는 훨씬 적은 규모의 투자에도 이 두 팀과 동일한 승점을 올렸고 골득실에서는 오히려 앞섰다. 정 감독 입장에서도 프로팀을 맡은 자신의 데뷔시즌에서 이런 성과를 냈다는 것은 아쉬움보다는 충분히 박수받을만했다.

다만 정 감독도 시즌중에 이미 팀의 약점으로 여러 차례 지적했던 골결정력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는 것은 보완해야할 부분이다. 이랜드는 레안드로-수쿠타 파수라는 좋은 외국인 공격진을 보유했지만 득점루트의 다양성이 부족했다. 전남과의 최종전을 비롯하여 내용상 좋은 경기를 펼치고 찬스를 만들고도 문전에서의 마무리 능력 부족으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경기가 많았다. K리그가 만일 순위 동률시에 일반적인 골득실 우선 규정을 적용했다면 이랜드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필 K리그의 다득점 우선 규정에 최대 피해자가 된 것은 이랜드에게 불운이었다.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 이랜드지만 다가오는 2021시즌은 또다른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되며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2부리그 구단들은 내년에는 더 긴축 운영이 불가피하다. 기업구단인 이랜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전력보강에 얼마나 투자할수 있을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올해 프로무대에서도 지도력을 인정받은 정정용 감독이 다른 유명 구단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축구계에서 나온다. 정 감독이 이랜드와 계약기간이 남아있고 신의를 중시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과연 정정용 감독과 이랜드는 내년에도 행복한 동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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