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후드> 포스터

영화 <걸후드>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시작으로 셀린 시아마 감독의 팬이 되었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라며 도발적 시선의 전복을 꾀하며 18세기 여성들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 이야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미카엘'이자 '로레'인 10살 아이가 펼친 대담한 성별 정체성 전복기 <톰보이>, 10대 소녀들의 파란만장한 섹슈얼리티가 펼쳐진 <워터릴리즈>까지 모두, 누가 '이런 것에 흥미가 있겠어'라고 밀쳐버릴 여성의 이야기를 시아마 감독은 영화 깊숙이 끌어들여 사유하게 하게 해 주었다. 거장의 힘이다. 흥미로운 점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주목받은 후, 그의 작품들이 지각 개봉하며 성원 받고 있다는 데 있다. 보석이 늦게 발견되어 채굴되고 있다고나 할까? 늦었지만, 찾았으니 됐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걸후드>도, "역시 시아마 감독이야" 하며 무릎을 치게 한다. <걸후드>는 여성, 특히 소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면에서 그의 앞선 영화와 결이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등장인물들에선 전작들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인종적 특징과 동성애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걸후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심지어 등장인물 대부분까지 모두 흑인이다. 영화 속 인물이 거의 흑인이라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라는 사실이 이미 증명하듯이, 흑인이 영화 속 중심 서사를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당연히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어렵다. 드물게 흑인이 백인 중심 서사에 '토큰'처럼 배치되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영화계 인종 차별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일어난 변화다. 백인 감독인 시아마 역시 자신의 백인 정체성을 완전히 탈각하기는 어려웠을 터, 그렇다면 전격적인 흑인 일색인 영화 <걸후드>는 그에게도 도전이나 혁신에 준하는 작업이었을까?
 
'걸후드'를 '소녀 시절' 혹은 '소녀시대'로 해석하면 적절할까? 분명한 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시기라는 것이다. 물론 청년, 중년, 장년, 노년 시절 역시 특정한 시기이고 지나가면 돌아갈 수 없긴 하지만, 유독 소녀(소년) 시절이란 그 (불)가능성에 비해 턱없이 미화되어 있다. 육체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효능감 있는 시기라 여겨지는 때문일지도, 혹은 유독 짧게 지나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나면 짧았다고 회상하지만, 그 흐름 속에 있는 당사자 소녀들은 다른 시간의 속도에 있을 것이다. 찬란하지만 불안정한 이 시기는 애도 어른도 아닌 희미한 정체성으로 여기도 저기도 소속되지 못한 채 애매하게 걸쳐져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소녀들은 어른이 되면 번듯한 무언가가 돼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이때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흑인의 피부색은 똑같은 검은색이 아니다
  
 영화 <걸후드> 스틸 컷

영화 <걸후드> 스틸 컷 ⓒ (주)영화특별시SMC

 
<걸후드>의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검은색이라 일관되게 명명된 이들의 피부색이 정말 다채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각기 다른 검은색의 피부를 그저 흑인이라고 불러왔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허면 피부색에 따라 분류되는 황인, 백인은 어떨까? 이 또한 각기 다른 피부색이지만 그저 황색, 흰색이라 퉁 쳐졌을 뿐이다. 다만 유독 흰색만, 선민의식 가득한 숭고한, 순결한 색으로 전유되었을 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검은 피부색은 다 다르다. 회색빛이 강하게 도는 검은색, 갈색빛이 퍼져있는 검은색, 칠흑 톤의 검은색 등. 단일하게 검은색이라 불리지만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환경 등도 다 다르다. 흑인이라고 모두 균질한 흑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전 지구적 인류의 누구도 같은 처지의 사람은 단 한 경우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6살, 출구 없는 마리엠
 
마리엠(카리자 투레)은 의기소침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이 어렵다. 싱글 맘 혼자 어렵게 다섯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걸 보며 꿈을 키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 오빠는 지독한 가부장으로 종종 폭력을 휘두르며 독재자로 군림한다. 블랙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는 가부장이 흑인 가정에서 더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를 그들이 겪는 낮은 사회적 지위와 연관지었다. 흑인으로 사회에서 불신당하고 하대 받는 차별의 경험을 약자성으로 성찰하지 못하고, 그 울분을 더 약자인 여성에게 혐오로 투사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승인받지 못한 남성성을 유일하게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며, 집 안의 여자가 최후의 식민지가 되는 셈이다.
 
마리엠은 그저 그런 인생,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지만 막막하다. '출구 없음'의 상황에서 좀 노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의 관계에서 끈끈한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가난한 이들이 우정을 다지는 방법은 삥을 뜯고 상점에서 좀도둑질을 하는 등 일탈을 동반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고작 싸구려 술과, 마리화나와 피자가 다인 파티를 열지만,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이들이 펼치는 향연은,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신을 발산하는 유일한 유희다. 이들이 <다이아몬드> 노래 선율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내게 손꼽을 수 있는 영화의 명장면이 되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 소녀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먹으로 헤게모니를 잡는 것이 남자들의 전유물일까? 마리엠 4인방의 리더인 레이디(아사 실라)는 길거리 소녀들 사이의 패권을 잡기 위해, 결전을 앞두고 있다. 한껏 모양을 내는 것으로 투지를 불사른다. 참담하게 지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결에서 패한 레이디는 강호를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 패자에게 "너는 루저야"라는 손가락질 외, "너는 한낱 계집애일 뿐이야"라며 쏟아지는 성차별적 모욕은, 레이디가 처한 지형이 인종적 혐오와 배제의 경계에 젠더까지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린다.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레이디는 힘들게 기른 머리를 아버지에게 잘리고,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처럼 실의에 빠진다.
 
좌절한 레이디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마리엠은 위험한 결전을 불사하고, 레이디가 당한 모욕을 더 크게 되돌려준다. 이로써 우정을 공고히 하고, 가부장 오빠에게선 비록 폭력으로나마 얻은 승리지만, 자신을 망신시키지 않은 동생으로 승인받는다. 승리에 대한 대가로 혼자만 독차지하던 축구 게임기를 내밀며 오빠가 "독일 팀 할래?"라고 물을 때, "아니. 프랑스 팀"이라고 대답하는 마리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주변인으로 상정된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당당한 주체로 세우고 싶었는지 그 마음이 드러난다.
 
 영화 <걸후드> 스틸 컷

영화 <걸후드> 스틸 컷 ⓒ (주)영화특별시SMC

 
16살은, 이성에게든 동성에게든,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승인받고 싶은 섹슈얼리티 실험의 절정기이기도 하다. 마리엠 또한 남자친구를 가지고 싶고 섹스를 하고 싶다. 오빠 친구에게 끌리던 마리엠이 마침내 섹스에 돌입하지만, 이로서 곤경에 처한다. '남친'과의 섹스가 발각되자, 그는 오빠에게 욕설과 함께 얻어맞는다. '남친'과의 섹스는 '남친'이 발설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 일터, 섹스란 지극히 사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것이 남자들 간 공유되어 오빠에게까지 혐오 당해야 하는 사건이 되는 것일까? 가족 내 여자의 섹슈얼리티가 남자의 통제 아래 관리되어야 한다는 유구한 가부장의 망령이 여전히 출몰하고 있지 않은가?
 
얻어맞고 집을 뛰쳐나온 마리엠은 갈 곳이 없다. 막막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일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록 그 선택이 마약의 판매책이라는 위험한 일일지라고, '자기만의 방'을 얻기 위한 마리엠의 결정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남자처럼 입고 남자처럼 머리를 자른 마리엠의 모습에선 개같이 일하고 정승같이 쓰겠다는 다짐이 선명하다. 하지만 이런 그를 삶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약상 보스의 파티에서 보스의 여자가 되라는 성적인 압박을 당차게 뿌리치자, 마리엠은 다시 위기에 처한다. 보스의 "너는 아웃이야"라는 한 마디는, 16살 소녀가 그나마 비비고 있던 불안한 언덕이 허물어졌음을 알려준다. 막다른 곳에 몰린 그에게 어떤 삶의 결정이 남아있을까?
 
위기에 처한 마리엠에게 '남친'은 결혼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양 구혼하지만, 그리고 이런 무대책 '남친'을 사랑하지만, 마리엠은 구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인생을 저당 잡힌 자신의 엄마와 애를 업고 등장한 16살 친구의 추락을 아프게 새긴 마리엠에게 결혼이란,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마리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그를 떠나게 만든 집. 지금 당장 지친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곳이겠지만, 마리엠은 눈물을 삼키고 그가 떠날 수밖에 없던 그날을 복기한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어" 떠난 그곳으로, 노예가 되어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한번'을 다짐하며, 가시밭길이 뻔한 두 번째 '마이 웨이'에 들어선 마리엠, 꼭 안아주고 싶다.
 
영화의 첫 장면은 미식축구를 격렬하게 치르는 선수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물론 투구를 벗기 전까지 이들이 소녀, 그것도 흑인 소녀라는 것은 알 수 없다. 이기기 위해 공을 뺏고 뺏기는 치열함 속에 온 힘을 쏟아붓고 분투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내달은 선수가 마리엠이다. 안락한 집을 뒤로하고 저 격렬한 삶의 경기장으로 다시 뛰어든 용기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다시 뛰어라 마리엠! 너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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