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런> 포스터

영화 <런> 포스터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선천적인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17세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최근 지원한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정맥, 당뇨, 마비 등 복합적인 병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클로이. 하루에 먹는 약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때문에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다. 모든 정보와 권한은 엄마로부터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엄마의 보살핌이 있어 지금까지 버텨 왔기에, 클로이는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외딴곳에 살고 있지만 딱히 불만이 없다. 

아픈 클로이의 수족이 되기로 한 모성 강한 엄마 다이앤은 17년을 평생 딸 하나를 바라보며 살았다. 아픈 자식을 홀로 돌보기 위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이겨냈다. 지금까지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내 자식의 건강을 위해 텃밭을 손수 가꾸며 내 몸보다 더 살뜰히 돌본다.

두 사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 클로이가 장바구니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클로이는 초콜릿을 먹기 위해 장바구니를 뒤지다가 엄마의 이름표가 붙은 정체불명의 초록색 약을 발견한다. 그 약은 이내 클로이가 먹어야 할 새로운 약으로 바뀌고, 이상함을 눈치챈 클로이는 약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중, 삼중고를 뚫고 탈출하라!
 
 영화 <런> 스틸컷

영화 <런> 스틸컷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영화 <런>은 전작 <서치>의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의 신선한 연출력과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안전하게 장르 영화의 모범적인 길을 따랐다. 한정된 공간에서 두 인물의 단조로움을 차용했다. 장르 영화 마니아라면 익숙한 장치의 변주임을 알아차리겠지만, 스릴러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긴장과 탄탄한 복선은 비뚤어진 모성의 광기를 보여주기 충분했다.

이는 빠른 편집과 효과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하나의 장면애서 보여주는 물건이나 상황이 다음 신으로 연결되기까지 관객의 추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빠르게 치닫는다. 소위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알고 있다.

긴장감은 영리하게도 배우의 표정과 몸짓은 물론, 물건이나 단순한 상황만으로 조여온다. 즉, 고전의 클리셰를 쫓으며 단순한 아이디어로 승부 보는 것이다. 두 모녀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숨기고 숨겨 놓은 단서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가 주는 대로 받기만 하던 클로이가 품은 작은 의심은 서서히 다이앤의 숨통까지 조여간다. 다이앤은 평소와는 다르게 자동차 문을 닫지 않고 우편물을 받으러 간다거나, 알약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거나,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엄마라는 이름의 구속복은 딸 클로이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총망라되어 있다. 모든 것이 엄마의 통제 하에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 인터넷이 끊긴 것은 우연이 아니며 그 흔한 스마트폰이며 친구 하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는 클로이의 방이 2층이라는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다. 클로이는 철저히 다이앤의 소유가 되어 집착의 끝을 경험한다. 사소한 의심으로 시작된 진실은 똑바로 마주하기조차 힘든 충격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달리다, 도망치다라는 뜻을 가진 <런>은 가장 안전해야 하는 집과 엄마를 벗어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오로지 두 여성의 연기력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데, 엄마 역의 사라 폴슨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딸을 연기한 키에라 앨런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극을 장악한다. 휠체어를 타고 집안 곳곳을 빠르게 누비는 것은 물론, 명석한 두뇌로 의문을 풀고, 끈질기게 전력 질주하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이쯤이면 열릴 법도 한 문이 한 단계를 더 가야만 열리는 방탈출 게임처럼 느껴진다.

다만, <서치>의 명성을 이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뻔한 설정도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이름값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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