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3인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는 영화 <내가 죽던 날>.

여성 3인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는 영화 <내가 죽던 날>.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세상엔 3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처럼 함께 앓아주는 자.
자신 외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자.


어떤 게 지향할 만한 삶의 태도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첫 번째와 같은 경우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게 쉬울까? 매우 어렵다. 그래서다. 역사는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성자(聖者), 혹은 위인이라 부른다.

전작 <기생충>에서 연기력이 확인된 이정은과 10대 때부터의 연기 경력이 30년을 넘긴 김혜수, 여기에 젊은 배우 노정의. 이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자극하는 영화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름 하여 <내가 죽던 날>.

부도덕한 밀수로 부(富)를 이룬 아버지는 비명횡사 하고, 삼촌이라 부르던 아버지의 부하도 죽고, 남편의 돈에 기대 살던 새엄마는 제 삶 찾아 떠나고, 자신이 감당 못할 돈으로 마약의 유혹에 빠진 오빠는 감옥에 가고.

여고생 세진(노정의 분)은 겨우 열여덟에 까마득한 절벽에 선 입장이 된다. 주위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어린 소녀. 부잣집 여고생은 단숨에 천덕꾸러기 천애고아(天涯孤獨)의 형편에 처한다.

그리고 영화 속 주연이라 할 나머지 두 사람. 남편의 오랜 기간 불륜을 알아챈 현수(김혜수 분)는 세상 어디에도 지금의 상황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남편은 외려 "네가 먼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고 협박한다.

거친 뱃일을 하다 폭풍 몰아치는 바다에서 죽은 오빠(혹은, 남동생)의 치유 불가능한 아픈 딸을 제 목숨처럼 지켜내고 싶은 순천댁(이정은 분)의 처지도 딱하기는 마찬가지. 조카딸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까지 잃는다.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이정은(오른쪽)과 김혜수.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는 이정은(오른쪽)과 김혜수.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0분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마지막 10분

<내가 죽던 날>이 상정한 영화적 상황은 막막하고 어둡고, 동시에 눅눅하다. 나이와 사람살이 형편과 무관하게 3명의 여성은 견디고 이겨내기 힘든 입장에 처해 있다. 때마다 약을 한 주먹씩 먹어도 치유될 수 없는 병.

더 큰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피붙이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어린 소녀(노정의)만이 아니라, 중년의 여성 경찰(김혜수)과 조로한 섬 아낙(이정은)은 단애(斷崖)에 매달려 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116분. 짧지 않다.

'감독은 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지으려고 이야기를 이처럼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일까? 세 여자 중 한 사람의 고뇌만으로도 러닝 타임이 모자랄 텐데….'

그런데 그건 그야말로 괜한 걱정에 불과했다. 이전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내가 죽던 날>의 감독 박지완은 마지막 10여 분의 화면으로 앞서 100분 이상 펼쳐 놓은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단숨에 풀어낸다.

이 정도쯤이면 무시로 사용되는 '놀라운 연출력'이란 문장이 레토릭이나 과장이 아닌 팩트가 아닐지.

소급되는 주연들의 과거와 추정 가능한 세 여성의 현재, 그리고 '너를 위해 나를 버릴게'라는 3인 여성의 미래를 위한 눈물겨운 연대. <내가 죽던 날>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흡족한 '영화적 결말'.

 
 젊은 배우 노정의(오른쪽)은 기대하지 않았던 연기력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젊은 배우 노정의(오른쪽)은 기대하지 않았던 연기력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세상 모든 '불법'과 '위조'가 다 나쁜 것일까

웃긴 소재로 우스운 영화를 만드는 건 쉽다. 하지만 '청승맞은 소재'로 청승맞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영화가 그렇고 연극이 그러하며 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관객이 원하는 건 너나없이 유사하다. '투입한 자본에 상응하는 감동을 얻고 싶다는' 것. 쉽게 이야기하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영화'를 보고 싶다. 단언한다. <내가 죽던 날>은 그런 영화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불법과 위법, 위조와 변조도 때론 아름다울 수 있다. 그게 고통과 아픔에 처한 어린아이를 구해내는 방법이 된다면. 이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다면 논쟁 한 번 해도 좋겠다.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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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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