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Voice of Slience, 2020)

소리도 없이(Voice of Slience, 2020)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묵비사염(墨悲絲染),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슬퍼하였다. 실은 푸른 물감에 물들이면 푸른 빛깔이 되고, 누런 물감에 물들이면 누런 빛깔이 된다. 물감의 차이에 따라 빛깔이 결정되는 실을 보며 사람 또한 습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함을 탄식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착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악당이 의도치 않게 선행을 하거나 온정적인 행동을 하는 연출을 통해,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우리가 통념적으로 여기고 있는 '착하다'는 말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주업은 계란장수이고 알바로 범죄조직의 뒤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창복(유재명)과 태인(유아인). 한 쪽 다리를 절고 있는 창복은 조폭이 난도질한 시체를 뒷수습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청소를 하고, 암매장을 할 땐 시체의 방향까지 살피며 명복을 빌어주기도 한다.

태인은 장애가 있는 건지 본인의 의지로 말을 하지 않는 건지는 모르지만, 창복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성실함을 보인다. 심지어 신앙과는 무관하게 '기도 테이프'를 듣는 일도 창복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처럼 주어진 일을 근면성실하게 해내며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던 창복과 태인에게 뜻밖의 일이 주어진다. 단골이었던 범죄 조직의 실장에게 부탁을 받고 유괴된 11살 아이 초희(문승아)를 억지로 떠맡게 된다. 다음 날 다시 아이를 돌려주려던 두 사람은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리면서 '착한 유괴범'이 된다.
 
영화를 보면 '착하니까', '말 잘 들었으니까'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창복과 태인의 말과 행동에는 악의적인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온정적이고 선량한 인물로 비쳐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는 살인을 공모하고 납치된 아이의 몸값을 요구하는 범죄이다.

이렇듯 무서운 일들을 평화롭고 일상적으로 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며,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에 의한 게 아니라 무작정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인 '사유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영화 또한 그저 '순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악이 저질러 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묵자의 탄식과 달리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 그저 물들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이기도 하다. 일상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나의 행위의 결과가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상하여 선택할 수 있는 사유능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소리도 없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아렌트)'는 점, 그리고 악은 생각의 무능에서 배태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선(善)은 온정과 사유의 두 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실하지만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창복은 '생각의 무능' 그리고 마음은 따뜻하지만 말을 잃어버린 태인은 '말하기의 무능'을 은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착한 유괴범'의 우화로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영화.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소리도 없이>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 <느리게 걷는 여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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