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오현진(엄지원 분)이 말하는 출산 3단계 '무통 천국기'(무통주사를 맞아 진통을 느끼지 못하는 시기)를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첫째 때는 멋모르고 참다가 '무통 천국'을 맛볼 새도 없이 급속히 '대환장 파티기'로 넘어갔다. 첫 아이치고 진행이 빨랐던 탓이다.

둘째 때는 '참는 데까지 참아 보리다'라며 허세를 부리다 어느 순간 남편의 스웨터를 물어뜯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참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남편에게 "에피듀럴!"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으나, 남편은 평생 들어본 적 없었을 낯선 영어단어 '에피듀럴(epidural, 무통주사)'을 못 알아듣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는 다시 한번 "에, 피, 듀, 럴!" 하고 있는 힘을 다 짜내 외쳤다. 하지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다가온 캐나다인 간호사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더랬다. "이젠 너무 늦어서 안돼요. 아기 나올 때 다 됐어요." 그토록 상냥하고도 얄미운 얼굴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셋째 때는 진통을 견디는 내게 간호사가 연신 "어메이징! 굿걸!"이라 추임새를 넣어댔다. '나보다 어려보이는구만 자꾸 나보고 걸(girl)이래!' 이후, 그런 시답잖은 트집도 잡을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혼미해지고 나서야 아기가 나왔다.
 
출산 2단계 '짐승기'라는 표현은 또 얼마나 적절한지. 첫아이를 낳을 때 난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의 또다른 목소리와 마주했다. "우어어허어허어~~~!" 그야말로 짐승의 소리가 몸속 저 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혼절 직전임에도 '정녕 내가 낸 소리인가' 싶었다. 계속해서 미친듯 소리만 질러대는 영화 속 산모의 모습이 현실성 없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쓰나미같은 진통이 한바탕 휩쓸고 가면 잠시의 평온한 휴지기가 찾아오는데, 그 간격은 차츰 짧아지고 휴지기는 다음 진통을 예비하는 두려운 침묵의 시기로 변모한다.
 
출산 과정 생생하게 그린 <산후조리원>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산후조리원> 1화는 이런 출산의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생생하게, 그리고 코믹하게 그려내 엄마들의 폭풍 공감을 얻었다. 출산의 마지막 단계 '대환장 파티기'에서는 최고조에 이른 진통을 엄청난 수의 말떼가 우르르 몰려드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산모들은 곧 알게 된다. 진정한 '대환장 파티기'란 아기가 세상에 나오고 난 후 시작된다는 것을.
 
모성애가 본능인가 아닌가는 종종 논란이 되곤 하는 주제다. 동물생태학자들은 새끼를 대하는 어미의 행동을 통해, 뇌과학자들은 임신과 출산 후의 호르몬 변화를 근거로 모성애가 본능이라는 주장을 내놓곤 한다. 반면 모성을 사회화와 학습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모성 본능설이 여성을 옥죄는 근거로 작용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엄마니까 희생은 당연한 것", "엄마가 아이를 위해 그것도 못해?" 같은 프레임을 씌워 여성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고 때론 죄책감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모성애가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 모성애는 분명 본능이다. 노력한 적도 강요받은 적도 없지만 아이들을 만난 순간부터 사랑은 저절로 시작됐으니까. 그러나 배우지 않고도 육아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모성애라고 한다면, 그건 결코 본능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게 아니다. 쥐면 부서질 듯 작은 생명체 하나가 내 손에 떨어졌을 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환장 파티기'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우선, 엄마를 온 우주로 알고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고 있는 한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설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첫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병원에 다녀오는 것뿐이었지만, 모처럼의 외출에 발걸음은 가벼웠고 공기냄새마저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었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취해 바깥 풍경을 만끽하던 나는 문득,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맞다! 나 집에 아기 있지!" 엄마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더라. 뱃속에 있던 아기가 세상에 나와 분리된 하나의 객체로 나와 마주한 지 채 며칠 안됐던 어느날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산후조리원> 3화에서 펼쳐진 상황이 과장이 아님을 안다. 간만에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외식을 즐기며 아이를 잘 키우자는 다짐도 하고 희희낙락 귀가한 현진과 도윤. 현관 앞에서 현진이 말한다. "근데… 나 뭐 좀 놔두고 온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집안에 늘어선 아기용품들을 보고서 깨닫는다. 놔두고 온 그 '무엇'은 이제 막 세상에 온 자신들의 아기 '딱풀이'라는 걸.
 
이루다의 통쾌한 한 방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엄마들이 아이를 낳자마자 가장 먼저 직면하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 중 으뜸은 단연코 '모유수유'라 하겠다. <산후조리원>이 관련 에피소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속 세레니티 산후조리원 원장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모유야말로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나 역시 그 말을 신봉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이를 낳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젖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방법을 몰라 무조건 한 시간 두 시간씩 젖을 물리면 아이는 배고파 울고 나는 힘들고 속상해 울면서,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런 날들을 수없이 보냈다. 유두가 헤어져도 참고 먹이다 아이 입을 피투성이로 만들기도 하고, 드라마 5화에서 가슴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가 내려앉은 것으로 묘사되는 무시무시한 젖몸살도 겪었다. 젖양 늘리는 데 도움 된다는 돼지족 삶은 물과 미역국을 주식 삼으면서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육아 카페를 들락거렸다.
 
<산후조리원>의 현진 역시 그러한 과정을 겪는 중에 모유나 분유냐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자타공인 육아 만렙 조은정(박하선 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예의 그 말을 꺼내든다.
 
"애한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느껴지는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할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 애한테 문제라도 생기면요? 내가 모유를 안 줘서 그런 건 아닐까,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구요!"
 
이때 지원군으로 나선 이루다(최리 분). 그런 죄책감을 자극해 엄마를 구속하는 게 "진짜 구시대적이고 별로"라며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
 
"요즘엔 소들도 다 방목해서 기르잖아요. 스트레스 안 받아 행복한 젖 짜려구요. 근데 여기 있는 엄마들 봐봐요. 밤새 한숨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고 있잖아요. 잠도 못자고 여기 갇혀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짠 엄마젖이 자유롭게 뛰놀면서 행복하게 짠 소젖보다 진짜 좋을까요?"

 
하나의 정답을 따르며 혹은 정답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 당하며 모유에 집착하는 것은 비단 세레니티 산후조리원 엄마들의 모습만이 아니다. 자연분만을 하고 모유를 먹이며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하는 엄마만이 일명 '일등칸'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훌륭한 엄마라는 획일적 공식. 이 공식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모유를 먹이지 못한 엄마, 길게 수유하지 못하고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워킹맘, 그리고 아이 낳기 전의 커리어나 일상을 잃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모든 엄마들에게 죄책감이라는 굴레가 씌워진다. 현진의 자조 섞인 내레이션은 바로 그런 죄책감에 기인한다.
 
"아이만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게 모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난 아이를 잊어버리는 이상한 엄마였고, 엄마가 되기 전의 삶이 훨씬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완벽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없었다."
"좋은 엄마를 포기할 용기도, 나의 자유를 포기할 용기도 내겐 없었다. 난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인간도 아닌, 엄마와 사람 그 중간 어디쯤, 반인반모일 뿐이었다."

 
결국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문제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의 한 장면 ⓒ tvN

 
결국 옳고 그름이 아닌 선택의 문제다. 나는 앞서 말한 그 지난한 시기를 겪고 완모(모유로만 수유하는 일)했다. 전업맘이었고 친정엄마와 남편의 지지가 있었고 다행히도 젖량이 점차 늘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산후 회복이 덜 되어있던 시기 안나오는 모유를 억지로 먹이려 애쓰다 삐끗하는 바람에 평생 등이 아파 고생하고 계시고, 결국 분유 먹고 자란 나는 아직 병원 신세 한 번 진 적 없이 건강히 살고 있다. 육아는 장기전이다. 앞으로 선택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 빽빽히 쌓여있는데, 초장부터 넉다운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루다의 속시원한 한방은 5화에서도 이어졌다. 아내가 임신과 출산, 산후조리를 하는 시기에 바람나는 남자들이 많은데, 계속해서 신혼처럼 사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은정은 부부 사이에도 긴장을 놓으면 안된다, 서로 풀어진 모습을 보게되면 긴장이 풀어진다고 답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속사포처럼 쏟아진 이루다의 거침없는 한 마디.
 
"바람 피우는 남자가 예방이 되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시기에 바람 피는 남자가 더 나쁜 거 아니에요? 왜 그 이유를 여자한테서 찾아요? 아니, 이 상황에서 남편이 바람을 펴도 긴장을 놓친 여자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루다, 모두가 정해진 한 가지 정답만을 향해가던 세레니티 산후조리원에 파란을 일으키는 이 여자,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진다.
 
사회에서는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이지만 육아에서는 이른바 '꼴등칸'에서 탈출하고자 전전긍긍하는 엄마 현진, 남 눈치보지 않고 소신육아를 펼치는 루다, 완벽한 모성의 표본인 듯 보이지만 실제 삶은 고군분투하는 보통의 엄마들과 다를 바 없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은정 등을 통해 <산후조리원>은 매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우리 모두 너나없이 완벽하지 않은 부모라고, 하나씩 배워가며 아이를 키우고 더불어 부모도 함께 크는 거라고, 그러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획일적인 모성의 엄격한 잣대에 치여 베테랑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이 드라마의 공감과 응원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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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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