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만능 엔터테이너 이승기가 MC를 담당했다.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만능 엔터테이너 이승기가 MC를 담당했다. ⓒ JTBC

 
유명 오디션 프로 준우승자, 유명 그룹 출신 멤버,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부른 곡의 주인공...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하는 음악 예능이 등장했다. 16일 첫 방송된 JTBC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의 기본 구성 자체는 기존 오디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노래를 듣고 합격 버튼(어게인)을 누르고, 참가자들은 일정 개수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다.

상위 단계로의 진출 방식이나 출연자들을 조별로 편성해서 예선전을 치르는 형식 등에선 사실 특별함을 발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싱어게인>만의 특별함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참가자들을 이름 대신 번호로만 부른다는 점이다. ​'재야의 고수', '오디션 최강자', 'OST', '슈가맨', '홀로서기', '찐무명' 등 71명의 <싱어게인> 참가자들은 각자의 특징에 따라 6개 조로 분류되어 1라운드 경쟁을 치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들의 이름은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오직 과거 <짝>마냥 'OO호 가수'라고만 불리며 "나는 OOOO 가수"라는 힌트 정도만 소개된다. '3어게인' 이하를 부여 받아 탈락이 확정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이 자막과 함께 소개된다.

방송에선 49호, 26호 등의 번호로만 소개되었지만, 음악 좀 들었다는 시청자들은 누군지 다 알 만한 인물들이 첫 회부터 다수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인디 음악계에선 지명도 있는 싱어송라이터 재주소년을 비롯해 록그룹 러브홀릭 출신 지선, 크레용팝의 초아 등의 출연은 시청자들을 제법 놀라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굳이?"라는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모든 참가자들에게 동등한 조건을 부여하는 측면에선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그동안 <슈가맨> 시리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던 제작진이 각기 다른 이유로 현재 '무명' 신분이 된 그들이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다. 

<싱어게인> 1라운드는 재야의 고수, 슈가맨, 찐무명, 홀로서기, 오디션 최강자, OST,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참가자가 직접 구역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이 가수가 오디션에?  반가움과 놀라움 동시에 선사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 JTBC


​스스로를 오디션과 맞지 않다고 소개한 70호 가수는 재주소년(박경환)이었다. 심사위원 유희열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여러차례 출연한 재주소년의 말에 공감하며 "아는 사람 있으니까 못 쳐다보겠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터'(한돌 원곡)을 소화하자 당초의 우려는 단번에 사그라졌다. 재주소년은 그의 음악, 이름을 잘 모르는 규현, 선미 등 주니어 심사위원들까지 사로잡으며 '7어게인' 득표로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59호 가수의 등장은 더 큰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 노래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누구나 알고 있는 '빠빠빠'를 부른 크레용팝 출신 초아가 주인공이었기 때문. 더군다나 그는 본인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슈가맨조' 소속이기에 5명 멤버가 함께 했던 이 곡을 혼자서 전 부분을 퍼포먼스까지 곁들여 소화하는 2배 이상의 어려움도 부여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가창력으로 라이브를 소화하며 역시 7어게인 획득에 성공한다. 

이밖에 그룹 시절 데뷔곡인 '러브홀릭'을 열창해준 2호(러브홀릭 지선), '여자 양준일'로 재평가 받고 있는 50호(윤영아), <전국노래자랑>과 <팬텀싱어3>로 주목 받은 20호(이정권) 역시 극찬을 받으며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했다.

반면 관록의 펑크 밴드 레이지본의 보컬 28호(준다이)는 2002년 월드컵 응원곡 'Go West'를 열창했지만 3명의 지지를 얻으며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대신 특별 심사위원 김종진의 선택에 힘입어 와일드카드에 해당하는 '슈퍼어게인' 자격으로 1라운드 통과에 성공했다. 

슈가맨, 무명 가수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 JTBC

 
그런데 2020년 방송과 가요계는 트로트 시대 아니던가. 록, 힙합을 부르던 가수들조차 장르를 바꿔 트로트 도전에 나서는가 하면 각 방송사들마다 앞다퉈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을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반면 올해 들어 방영된 아이돌 또는 보컬 경연 등 음악 예능 상당수가 고전을 면치 못 했음을 감안할 때 <싱어게인>의 선택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성공에 앞서 제작 의도는 감동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특히 유행의 제일 앞에 서 있는 가요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인물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잊히는 사람들이 생긴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상위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이라고 해도 꾸준한 지원 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금세 잊히는 게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 잊힌 가수에게 기회를 주고 시청자들에겐 추억을 길어올릴 수 있게 한 <싱어게인>은 등장은 반갑기만 하다. 

한 번 설 자리를 잃은 '슈가맨'들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찐무명조' 참가자들처럼 음원은 내놓았지만 알려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 무명 가수들에겐 <싱어게인>은 실낱 같은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난 16일 열린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유희열은 "참가자들의 인생이 달린 프로그램"이라고 <싱어게인>을 소개했다. 절실함을 지닌 그들의 실력과 가능성을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게끔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싱어게인>은 충분히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지난 16일 방영된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 JTBC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싱어게인 오디션 음악경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