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방송된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의 한 장면

지난 12일 방송된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의 한 장면 ⓒ KBS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김경준이란 국제 금융 사기꾼에 MB가 당한겁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란 질문이 국민적 반향을 일으켰던 지난 2017년 11월, JTBC <썰전>에 출연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2007년) 이명박 캠프 대변인으로서 BBK에 대해 양심고백하겠다"며 위와 같이 결론지었다. 본인 시각에서, MB 입장에서 'BBK 사건'의 전말을 재구성한 뒤 MB의 '무죄'를 역설한 것이다.

당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던 <썰전>에서 꽤나 여유롭게,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MB에게 책임이 없음을 설파하던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기획관을 거쳐 정무수석과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까지 지낸 'MB맨' 중 하나였다. 그랬던 그가 MB의 '대법원 확정 판결'엔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이 MB의 징역 17년형을 확정 판결하고 이어 지난 2일 MB가 재수감되는 사이 박 교수는 국민의힘에 재입당했고, 그가 부산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뉴스가 공공연하게 나왔다. MB의 재수감 당일 측근들이나 MB계 정치인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비친 것과 달리 그는 언론 카메라에 등장하지 않았다.

정부여당 비판에 열을 올리던 본인 소셜 미디어에서도 MB 관련 언급은 일절 함구했다. 그런 박 교수에게 KBS가 27분짜리 꽤나 긴 인터뷰를 할애했다. 지난 12일 KBS1 <사사건건>을 통해서다. 의아한 것은, MB가 재수감된 지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KBS마저 관련 질문을 일체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법원 판결 관련 질문은 왜 없었을까

단순 사실을 전하거나 정파적 보도에 매몰되거나, 그도 아니면 애써 무시하거나 의미를 축소하거나. MB의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쏟아진 언론보도의 갈래가 대략 이 정도였다. 같은 맥락에서, <사사건건>의 박 교수 인터뷰는 전형적인 후자 양상이라 할 만했다.

저널리즘 종사자라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만한, 아니 기울여야 할 사안이었을 터다. 'MB맨'들이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땠는지 말이다. 'MB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고 MB 정권 시절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현재 어떤 심정이고 근황이 어떤지에 대한 취재는 '권력 감시'를 중시하는 언론이라면 능히 관심을 기울였어야 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사사건건>은 그러지 않았다. 박 교수와 27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도 관련 질문을 하지 않았다. KBS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MB 대법원 확정 판결 관련 기사를 보면) 저는 한편으로는 되게 스트레이트성 기사가 많거나 아니면 아예 정치적 기사, 양분돼 있다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MB 정권의 언론 장악이라든가 내지는 검찰의 도구화 그리고 언론과의 언론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스트레이트성 기사를 넘어서서 의견을 보탤 수 있는 해설성 기사라든가 맥락을 제공하는 기사가 부재했던 것은 아쉽습니다."

15일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패널인 강유정 교수의 일침이다. <사사건건>만 놓고 보면, KBS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류 언론은 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앞서 대법원으로부터 사법적 단죄를 받은 MB 관련 보도를 건조하게 다뤘을까. <'징역 17년'에는 없는 것... MB는 언론에 무엇을 남겼나>란 주제로 방송된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에 대한 나름의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있었다.

MB 정부의 방송 장악사

"저는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바뀐 정권에 유리하게 보도해달라 하는 것을 원치도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MB는 재임 초기 입버릇처럼 '방송 장악 불가'론을 천명하곤 했다. 물론 대외용이었다. MB의 방송 장악사와 보수언론 길들이기는 가시적으로 이뤄졌고, 반면 당근 효과는 언론 지형을 뒤흔들 정도였다. '보수 종편' 출범이 대표적이었다. 이날 방송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프레스 프랜들리'란 MB 정부 시절 추억의 기치를 길어 올리면서.

"MB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이고 그때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프레스 프랜들리라는 기치를 열었으나 인수위 시절 직후부터 최측근이라고 분류되는 최시중씨 방통위원장 임명하고요. KBS 정연주 사장 사퇴 종용하고, YTN에도 언론 특보 맡았던 구본홍씨 사장으로 임명하고 YTN 돌발영상 압박하고 PD수첩에 대한 민형사상 추진하고 이게 다 출범 100일 만에 벌어진 일들인데.

그러고 나서 조금 이따가 8.15 특사로 인해서 대대적으로 (언론계 사장 및 간부들을) 사면해주거든요. 이거는 우리나라 언론계 전체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거거든요. 프레스 프랜들리에서 그 프레스가 누구냐, 친정부 언론이다, 반정부 언론이 무엇을 할 것이냐, 엄격하게 채찍을 가할 것이다. 이런 메시지로 크게 전달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땐 그랬다. 심지어 네티즌들의 공론장이었던 '다음 아고라'를 압수수색했고, 세계 경제 위기 속 휘청거리던 MB 경제정책을 비판하던 논객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유죄를 만들던 시기였다.  
 
MBC를 비롯해 KBS와 YTN, 연합뉴스까지 파업에 나섰지만, MB 정권에 순응한 수뇌부들이 장악한 방송과 언론은 빠르게 보수화됐다. 그리고 MB 정권과 보수여당이 밀어붙인 '미디어법'이 통과됐고, 2011년 말 보수종편이 탄생했다. 한국사회의 언론지형과 여론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보수언론은 공공연하게 MB 정권의 수혜를 입었다. 반면, MBC와 KBS, YTN 등 공영을 중시하는 방송들은 공정성에 큰 훼손을 입었고, 해고노동자가 양산되고 업무배제 등 불이익을 받은 구성원들이 나오면서 방송사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사이 종편이 굳건히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언론지형은 물론 포털에 집중화된 여론 지형 역시 심하게 왜곡되었고, 언론 신뢰도 역시 빠르게 하락했다. 이 모두 MB의 공이자 유산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여전히 안일한 보도 양상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취임하고 2009년의 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있습니다. 관련해서 KBS가 가장 욕을 많이 먹었는데 그때 현장의 기자에게 침을 뱉었어요. 대중이, 시위대가. 그래서 굉장히 기자들이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보도국 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못 가고 있다. 이게 지금 시청자들이 우리에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정확히 한 10명 정도의 간부, 또는 기자들이 나와서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게 중립이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던 어떤 앵커는 다음 정부 때 대변인이 돼요."(최경영 기자)


그 앵커가 바로 지금 미국까지 건너가 '부정선거'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민경욱 전 의원이다. KBS의 그런 기조는 박근혜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은 올해 초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유죄가 확정됐다. 방송법 위반 혐의로는 첫 유죄 판결이었다.

박근혜 정권이던 2015년부터 <뉴스9> 메인앵커를 맡았던 황상무 전 앵커는 최근 사직서를 제출하며 '극단적 진영논리', '극단의 적대정치'를 비판하는 '사직의 변'을 내놓기도 했다. 황 전 앵커는 보도국 국장 재임 시절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와 해경 관련 의혹 보도를 소위 '킬'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KBS 새노조 파업 당시 적지 않은 KBS 구성원들은 "KBS를 살리겠습니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란 구호를 내세웠다. 과연 KBS가 그에 걸맞은 변화상을, 공정 보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굉장히 영리했다, 현명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기간에 정국을 장악할 수 있었고요. 기억에 대한 왜곡이 있습니다. 정연주 사장이 어떤 뭐가 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그랬겠지 또는 광우병과 관련해서 PD수첩이 좀 오버를 했던 것도 사실인 게 아닌가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도 많거든요."(최경영 기자)

맞다. MB는 현명했고 꼼꼼했다. 대통령 직을 사익추구의 일환으로 활용했던 것 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 지형을 자신의 유리하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보수정권 재창출을 위해 댓글부대를 동원해 여론을 뒤흔들었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셈이다.

국민여론은 그러한 디테일을 세세하게 기억하지도, 기억할 수도 없다. 방송사 파업은 이제 먼 기억이고, MB의 언론 장악 시도 역시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 후반부에 출연한 '진실탐사그룹'의 박상규 대표 기자는 주류 매체의 안일한 관성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제가 기존 매체를 나오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였거든요. 사실 4대문 안에 있으면 되게 편하거든요.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 주로 만나고 좋은 음식 먹고 안락한 데에서 지내고, 기자실 가면 다 편의 제공해주고... 권력을 감시한다고 말을 하지만, 지난 정권 비선실세 문제를 보면 그 많은 기자들이 권력을 잘 감시했으면 왜 그 사람을 그렇게 뒤늦게 발견했을까, 최순실씨를." (박상규 기자)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J>의 한 장면 ⓒ KBS

 
이명박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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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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