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A4의 리더였던 진영은 팀 내에서 리더와 서브보컬 외에 메인 프로듀서를 담당한 멤버였다. 진영은 B1A4의 정규 1집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해 <이게 무슨 일이야>,< Lonely >, < Solo Day >, < Sweet Girl >, < 거짓말이야 > 등 B1A4의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만들었다. 진영은 뿐만 아니라 I.O.I, 오마이걸 같은 걸그룹 앨범에도 참여했고 2017년에는 웹예능 <아이돌 드라마 공작단>의 OST에서 타이틀곡 < Deep Blue Eyes >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거물이 된 방탄소년단의 슈가도 가요계를 대표하는 '작곡돌'이다. BTS가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상남자>, <불타오르네>, < DNA >, < 봄날 > 등의 작사, 작곡에 참여한 슈가는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만 100곡이 넘는다. 지난 5월에는 아이유와의 협업으로 <에잇>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에잇>은 노래가 발표된 지 6개월이 지난 11월까지도 음원차트 20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진영이나 슈가처럼 외모가 출중하고 무대 매너가 뛰어난 가수들 중에서는 음악성이 평가절하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990년대에도 자신의 앨범 타이틀곡을 직접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잘생겼다는 이유로, 그리고 동시대에 워낙 천재 뮤지션이 많았다는 이유로 그 능력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가수가 있었다. 바로 '순정만화 실사판', '가요계의 귀공자' 김원준이 대표적이다.

오디션 합격 후 45일 만에 데뷔해 정상 등극
 
 김원준 4집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김원준이 다양한 음악 색깔을 시도했던 앨범이다.

김원준 4집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김원준이 다양한 음악 색깔을 시도했던 앨범이다. ⓒ 이엔이미디어

 
김원준은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엄한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교 시절부터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1991년 서울 예술대학 진학 후에는 메탈 밴드 'LAST Scene'을 거쳐 유명한 통기타 동아리 '예음회'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예음회는 91학번에서만 인기스타를 둘(김원준과 컬투의 김태균)이나 배출했다(예음회는 아니었지만 유재석과 전도연, 이휘재 등도 서울예대 91학번 출신이다).

김원준은 1992년 8월 선배의 소개로 제일기획의 오디션에 참가해 3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김원준은 데뷔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됐고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도 전에 CF모델로 TV에 얼굴을 비췄다. 김원준의 데뷔 앨범은 1992년 10월에 발매됐는데 김원준이 오디션 합격부터 가수 데뷔까지 걸린 시간은 단 45일이었다.

사실 기획사의 계획대로 급하게 만들어진 앨범은 대부분 완성도가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김원준은 달랐다. 본인이 직접 작사·작곡한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는 KBS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3주 연속 1위, SBS <TV가요 20>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무엇보다 김원준은 고 장국영을 연상케 하는 귀공자 같은 외모로 순식간에 소녀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MBC <특종TV연예>의 뮤직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이었던 이영자와 함께 케빈 코스트너, 고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를 패러디하며 소녀팬들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떠올랐다. 김원준은 1993년 8월 2집 <언제나>를 통해 한층 성숙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또 한 번 큰 인기를 누리며 1집에서 받은 사랑이 '반짝'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김원준이 가수로서 최전성기를 찍은 시점은 1994년 10월에 발매된 3집을 통해서였다. 인기 작곡가 김형석이 편곡자로 참여했으면서도 대부분의 수록곡을 직접 만든 김원준은 타이틀곡 <너 없는 동안>을 통해 독특한 치마패션과 여심을 녹이는 미소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KBS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 SBS <TV 가요20> 6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3집 활동 당시 김원준의 인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음반판매 기록으로는 김원준이 김건모나 신승훈 등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당시 가요프로그램 공개방송에서 받았던 소녀팬들의 환호성은 남자 솔로가수 중에 단연 으뜸이었다. 쟁쟁한 가수들이 대거 활동하던 1990년대 초·중반 여성팬덤의 규모로 김원준을 능가하는 가수는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뿐이었다.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의 김원준은 1995년 드라마를 통해 연기에도 도전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생활을 그린 <창공>이었다. 비록 <창공>은 잦은 출연진 교체와 이병헌, 고 최진실, 정우성, 이영애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했던 경쟁작 <아스팔트 사나이>에 밀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김원준이 직접 부른 주제가 <세상은 나에게>는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상당히 많은 인기를 얻었다.

김원준은 드라마에서의 아쉬움을 음악으로 풀기 위해 곧바로 4집 준비에 들어갔다. 3집에서 편곡을 담당했던 김형석이 다시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훗날 god의 <관찰>, 영턱스클럽의 <못난이 콤플렉스> 등을 만드는 이철원이 작곡가로 참여했다. 물론 앨범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뮤지션은 당연히 대중들로부터 '과소평가 받았던' 김원준이었다.

음악적 욕심으로 가득 채운 김원준의 4번째 앨범

1995년 10월에 발매된 김원준 4집 Dear는 기존 앨범들에 비하면 다소 담담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노래들이 많이 담긴 앨범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집은 1집부터 5집까지 김원준이 발표한 5장의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 1위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완성도만큼은 김원준의 앨범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을 만하다.

타이틀곡은 역시 김원준이 직접 만든 <넌 내꺼>.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온 엄마 친구의 딸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하는 내용으로 가사만 보면 소녀팬들을 의식한 곡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 듣기 힘든 코러스와 웅장한 현악기로 시작되는 전주, 그리고 노래 사이에 나오는 기타 솔로 등 음악적으로는 김원준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곡이기도 하다.

3집의 <너 없는 동안>에서 파격적인 치마패션으로 유행을 선도했던 김원준은 <넌 내꺼>에서는 뒷머리를 살짝 길러 뒤로 말아 올린 이른바 '아톰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 시절 다른 가수가 했다면 '머리 가지고 장난 친다'며 비난을 받았겠지만 언제나 유행을 선도하던, 그리고 워낙 출중한 외모를 가진 김원준이었기에 대중들은 김원준의 새로운 시도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그렇다고 크게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

타이틀곡 <넌 내꺼>가 3집까지의 타이틀곡들에 비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자 김원준은 활동곡을 발라드 <다시 내 곁에>로 바꿨다. 김원준이 데뷔 후 발라드곡으로 활동한 것은 <다시 내 곁에>가 처음이었다. 이 곡은 2번 트랙의 <사랑한 나 좋아한 너>와 이어지는 곡으로 노래의 부제도 각각 <이별 Part 1>, <이별 Part 2>라고 명시돼 있다. 두 곡 모두 군대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이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쓴 김원준은 '좌견 관절 재발성 탈구'로 군면제를 받았다는 점이다. <사랑한 나 좋아한 너>와 <다시 내곁에>에서는 공통적으로 군복무기간을 의미하는 '3년'이라는 가사를 강조하는데 실제로 이 앨범이 발표된 1995년에는 육군 기준으로 군 복무기간이 26개월이었다(김원준은 1999년 병역 비리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수차례의 재검에서도 같은 사유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별된 침묵>과 < Jungle Boogie >는 상당히 빠른 비트의 댄스곡이다. 이미지 변신에 도전했다면 활동곡으로 삼아도 좋았을 만한 노래들이다. 특히 < Jungle Boogie >에서는 'JYP' 박진영이 랩피처링에 참여했는데 사실 김원준과 박진영 사이에는 이렇다 할 음악적 교류나 친분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프로듀서 김형석과의 인연으로 김원준 앨범에 참여했을 확률이 높다(김형석은 박진영에게 음악의 기본을 가르쳐 준 '스승'이다).

<어떤 연인>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괴로운 마음을 표현한 발라드로 <사랑한 나 좋아한 너>, <다시 내 결에>와 함께 남자들의 '순정'을 건드리는 곡이다. 김원준 4집은 다른 앨범에 비하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발라드와 댄스, 록, 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두루 실려 있다.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 김원준의 역량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김원준의 팬들 사이에서 많은 인정을 받는 앨범이다. 

스타성과 음악성 겸비했던 최고의 엔터테이너
 
 김원준은 지난 1월 <슈가맨3>에 출연해 히트곡들을 부르며 변함 없는 외모와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김원준은 지난 1월 <슈가맨3>에 출연해 히트곡들을 부르며 변함 없는 외모와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 jtbc 화면 캡처

 
보통 3집까지 큰 사랑을 받았던 가수가 4집에서 기세가 한 풀 꺾이면 다시 반등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김원준은 1996년에 발표한 5집 < Show >를 통해 멋지게 대중적인 인기를 회복했다. < Show >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람회의 김동률이 만든 곡인데 김동률이 실제로 고교 시절에 김원준을 연상하며 썼던 곡이라고 한다(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건데 진짜로 김원준이 부르게 돼서 김동률도 굉장히 신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6집 <얄개시대>(요즘 나왔으면 엄청난 논란이 됐을 노래)와 데뷔 첫 발라드 타이틀곡이었던 7집 <가까이>가 나오는 사이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 보이그룹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김원준의 전성기도 조금씩 저물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곡을 직접 쓰는 가수를 넘어 앨범 전체를을 프로듀싱하는 뮤지션으로 발전하는 지점에서 대중들의 기호를 맞추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하락의 원인이었다.

2000년대 들며 오랜 기간 활동이 뜸했던 김원준은 2009년 뮤지컬 <라디오스타>에서 최곤을 연기하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2010년에는 캔의 배기성, 유리상자의 이세준, 최재훈 같은 동갑내기 가수들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M4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다만 2001년 9집 이후 20년 가까이 솔로 정규 앨범 발매 소식이 없는 것은 김원준의 팬들에게는 꽤나 아쉬운 일이다.

만약 김원준이 계속 대중 지향적인 노래를 위주로 만들고 불렀다면 전성기는 더 오래 유지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원준은 여전히 믿기 힘든 동안 외모를 유지한 채 강동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2018년부터는 1인 프로듀싱 '빈방 프로젝트'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다시 전성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기는 어렵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얼굴천재' 김원준은 여전히 많은 대중들의 추억 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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