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후드 포스터

▲ 걸후드 포스터 ⓒ (주)영화특별시SMC


응달에 핀 양지식물 같았다. 아무리 고개를 뻗어도 해를 볼 수 없는 해바라기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걸후드> 주인공 마리엠(카리자 투레 분)의 삶이 그랬다.

마리엠은 파리 외곽에 사는 16살 소녀다. 아프리카계 이민자 가정에서 홀어머니와 오빠, 아직 어린 여동생 둘까지 모두 다섯이 살아간다.

집은 보금자리가 되지 못한다. 청소일을 하는 엄마는 러닝타임 내내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못할 만큼 바쁘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는 오빠는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손찌검부터 한다. 가슴팍이 부풀어 오른 동생에게 마리엠은 "엄마랑 오빠한텐 말하지 말라"며 "우선은 헐렁한 셔츠를 입어"하고 말한다. 마리엠에게 보금자리라 부를 공간은 동생과 함께 쓰는 작은 방이 전부다.

마리엠에겐 모든 게 억압이다. 여자인 것도, 흑인인 것도, 가난까지도 그렇다. 여자만 아니었더라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테다. 흑인이 아니었더라도, 가난하지 않았대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마리엠을 절망으로 내몬다.
 
걸후드 영화의 오프닝. 여자들이 럭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 걸후드 영화의 오프닝. 여자들이 럭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 (주)영화특별시SMC


재잘대던 럭비소녀... 반전의 오프닝

첫 장면은 뜨겁고 아름답다. 등번호 6번을 단 마리엠이 공을 잡고 달린다. 붉고 흰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두 패로 갈려서 공 하나를 쫓는다. 럭비다. 마리엠은 수비수를 뚫고 질주해 터치다운에 성공한다. 카메라는 슬로우모션으로 이 장면을 멋지게 담는다.

오프닝은 영화의 나머지 부분과 이질감이 크다. 영화는 더는 극적이지도, 슬로우모션을 걸지도, 무언가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잡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찍어낸다. 이 온도차가 영화의 주제와 닿아있다. 마리엠과 친구들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럭비를 마친 친구들은 재잘재잘 떠들며 함께 동네로 걸어간다. 소녀들의 수다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말 한 마디 끼워 넣기 어려울 정도다. 오디오를 가득 채웠던 말과 웃음은, 그러나 한 순간에 뚝 그친다. 사내들이 있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면서다. 동네로 들어선 소녀들은 말없이 걷다 하나둘씩 제 집으로 흩어진다. 아무 말도 없이.

박탈감이다. 계단을 올라 동네에 들어서기 전까지 소녀들이 와글와글 떠들던 모습을 아이들은 잃어버렸다. 어두운 거리와 사내들의 눈길과 팍팍한 삶이 소녀들에게서 마땅했을 제 모습을 앗아갔다. 방에선 오빠 심기를 거스를까 목소리를 낮추고 밖에선 다른 이의 눈에 띌까 조용조용 걷는다.

영화는 응달에 핀 양지식물이 악착같이 뿌리와 줄기를 뻗는 이야기다. 불행히도 햇볕은 구부러지고 흐릿하여 충분히 닿지 않는다.
 
걸후드 마리엠(카리자 투레 분)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폭력으로 해결하는 오빠에게 기를 펴지 못한다.

▲ 걸후드 마리엠(카리자 투레 분)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폭력으로 해결하는 오빠에게 기를 펴지 못한다. ⓒ (주)영화특별시SMC

 
응달에 핀 양지식물처럼

마리엠은 어떻게든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실업계가 아니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지만 성적은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다. 유급을 해서라도 인문계로 진학하고 싶다는 마리엠에게 선생님은 "이미 두 번이나 했으니 이젠 유급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앞에서 마리엠은 "제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엄마는 마리엠을 자신의 일터로 데려간다. 방학 동안 청소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마리엠은 책임자에게 "엄마에게 나를 뽑지 않겠다고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마리엠은 엄마처럼 살고 싶진 않다. 허리가 빠지게 일해도 상황은 나아질 줄 모른다. "평생 청소일이나 하며 살 수는 없어"하고 말하지만 다른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또래들과 어울리며 놀고 웃고 떠들 뿐이다. 그러다 그마저 한계에 부닥쳐 더 위험한 일에 손을 댄다.

마리엠이 동생의 따귀를 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느 날 마리엠은 동생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뺏는 모습을 목격하고 불러 세운다. 마리엠은 동생에게 "이런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지만 동생이 들을 리 만무하다. "언니도 똑같지 않냐"며 대드는 동생에게 마리엠은 끝내 손을 대고 만다.

"나를 때렸어"라며 "언니도 오빠와 다르지 않아"하고 외치는 동생의 말에 마리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이들은 잘못을 반복한다.

영화는 마리엠의 앞에 섣부른 성장 대신 거듭된 절망을 준비한다. 각박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망치는 선택을 한다. 집을 나간 마리엠이 결국 집 앞에서 울음을 울기까지 마주한 일은 성장보다는 실패며 좌절에 가깝다.

엄마처럼 평생 열심히 일하면서도 밑바닥 삶을 살던지, 못된 일에 손을 대고 스스로를 망치는 것 사이에서 마리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리아나의 '다이아몬드'를 열창하던 소녀들이 꿈꾼 삶은 어디에 있을까. '아름다운 바다에서 빛을 찾아 행복해지기로 했다'는, '다이아몬드처럼 밝게 빛나'야 마땅할 아이들의 꿈은 정녕 이뤄질 수 없던 것일까.
 
걸후드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벗어날 곳을 찾지 못한 마리엠은 거듭 잘못된 길로 빠진다.

▲ 걸후드 만족스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벗어날 곳을 찾지 못한 마리엠은 거듭 잘못된 길로 빠진다. ⓒ (주)영화특별시SMC

 
누구도 돌보지 않는 세상에서

절망적이다. 응달에 자리 잡은 양지식물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한 송이 꽃을 피우기가 이토록 어렵다. 영화의 끝에서 마리엠은 화면 왼편으로 박차고 나아간다. 전진이 아닌 후퇴고, 발전이 아닌 역행이다. 감독 셀린 시아마가 마련한 세계는 이토록 끝까지 어둡고 닫혀있다.

얼핏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인종차별과 성불평등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뿌리내린 프랑스의 현실은 이미 많은 영화를 통해 다뤄진 바 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글로리아를 위하여>도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의 불행을 다뤘다. 어쩌면 더 처절하고 절망적이며 현실적인 이야기다.

결정적 차이는 <워터 릴리스>와 <톰보이>를 잇는 시아마의 '성장 유니버스 3부작' 마지막 작품이 훨씬 더 어두운 결말로 종결지어진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마리엠을 구하는 이도, 마리엠이 구하는 이도 없다. 마리엠 스스로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시아마가 지목한 원흉은 사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여자라서, 흑인이라서, 가난해서 받는 온갖 차별과 제약을 묵인한 세상, 없는 자들끼리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도록 놓아두는 세상 말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마리엠과 같이 착한 이도 길에서 돈을 뜯고 동생의 빰을 때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숙하고 조악한 구성이긴 하지만 주제도, 표현하는 방식도 선명했다. 어쩌면 시아마가 주목받는 이유가 이 거짓 없는 솔직함과 분명함 덕분일지도 모른다. 대륙 반대편 한국의 오늘에도 울림이 있는 영화다.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빨리 알아차린다면 이 땅의 마리엠 한명쯤은 더 구할 수도 있겠다.

음지에 놓인 양지식물은 옮겨 심으면 되는 일이니.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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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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