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혜승 음악감독은 드라마 음악 작업에 대해 '드라마 안에 담긴 내용을 받쳐도 주고 돋보이게도 해 줄 수 있는 진심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남혜승 음악감독은 드라마 음악 작업에 대해 '드라마 안에 담긴 내용을 받쳐도 주고 돋보이게도 해 줄 수 있는 진심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 김희주


음악이 가지고 있는, 아니 영상 음악이 가져다주는 오묘한 감정의 힘이 있다. 어떤 장면의 분위기를 특별하게 바꿔놓기도 하고, 어떤 인물의 여정을 따라가며 마음의 불을 지피기도 한다. 감명 깊게 봤던 어느 드라마의 기억을 불러내는 빔 프로젝터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영상 음악이다. 

지난 2일, 망원동의 한 녹음실에서 남혜승 음악감독을 만났다. 남혜승 음악감독은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사이코지만 괜찮아>, <청춘기록> 등 시청자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던 여러 드라마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다음은 남혜승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런데 자라면서 사진,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는 피아노를 전공으로 시키고 싶어 해서 타협점을 찾은 게 '음악을 하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피아노 가르쳐 주시던 분이 작곡 전공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작곡, 청음을 배웠던 거였다. 피아노 학원을 가면 다 그런 걸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웃음). 사실 그림 쪽을 훨씬 좋아했고 공연을 보거나 뮤지컬, 영화를 보는 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아직 작업실에 이젤과 캔버스가 있을 정도다. 당시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영상 음악을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 드라마 음악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EBS 교육 방송국에서 음악 효과를 넣을 사람을 뽑는 공고를 우연히 보고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다. 그때는 붙었으니까 한번 다녀보자는 마음이었다. 음대를 나와서 공채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시험을 봐서 뽑는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크게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다."

- 전체적으로 드라마 음악을 작업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섭외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는 게 시놉과 대본이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대본 상에 나와 있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영상이 어떻게 찍힐까 상상을 하면서 그 인물들을 분석한다. 장르마다 음악이 달라져야 하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도 그 감정이 수만 가지의 깊이와 색깔이 있다. 빨간색, 파란색이냐도 중요하지만 빨강의 색깔이 정말 수만 가지의 농도로 표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도대체 어떤 색깔로 칠해야 될지, 어떤 농도로 어떤 색과 어떤 색을 섞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테마를 보자마자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그 고민을 먼저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같은 경우에는 여주인공을 항상 따라다니는 특별한 악기를 고민했었다. 문영이라는 캐릭터는 어떤 악기를 써서 표현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그런 게 드라마마다 너무 다르고 복잡하다. 대본 안의 모든 내용을 굉장히 꼼꼼히 분석해서 톤을 잡는, 건축으로 비유하자면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그것이 영상과 딱 맞는 경우도 있고 생각했던 경우와 달라서 부시고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테마들을 만들고 영상이 나오면 영상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다. 영상에 맞게 다르게 편곡하거나 손을 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OST 노래들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인지와 어떤 곡을 어떤 가수들과 뮤지션들과 작업하는 게 좋을지도 파악하고 섭외도 해야 한다. 녹음을 해야 되고 연주와 믹싱도 해야 된다. 미디로 다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필요하면 연주자들을 불러서 녹음을 하기도 하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이다." 

- 처음에 음악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설명하기 정말 어렵다. 어떤 법칙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은 그냥 감인 것 같다. 정답도 없고 같은 신을 보고 생각하는 게 감독님마다 다르다. 같이 일하는 감독님들의 성향도 파악을 해야 한다. 작가가 이런 신을 썼을 때 왜 썼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이 캐릭터가 이런 성격이면 어느 정도의 깊이로 화를 낼까가 음악이 어떻게 들어가냐에 따라 달라진다. 숫자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감각인 것 같다. 

모든 음악감독들이 같은 신을 봐도 다르게 만든다. '어떤 게 더 잘했어, 훌륭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다 협업이기 때문에 연출 감독님이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건지,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어떤 색으로 다가가고 싶어 하시는지를 파악하고 상의를 하면서 찾는 것 같다. 매번 가장 중요한 게 '톤 앤 매너'인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기가 어렵더라."

- 많은 작곡가들과 협업도 해야 되고, 가수도 섭외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예전에는 모든 걸 혼자서 했다. 혼자 곡을 쓰고 혼자 어디에 음악이 들어가야 되는지 정했다. 지금은 내가 못하는 부분을 잘하는 친구와 같이 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기도 한다. 가수를 결정하는 것도 음악 감독이 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조심스럽긴 한데 모든 드라마가 그때마다 다르다. 어떤 프로젝트는 곡도 다 참여를 하고 가사까지 다 손을 대고 가수도 '이 노래는 이 가수가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진행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수들이 같은 시기에 본인들의 앨범을 내야 된다거나 하면 못할 수도 있는 거다. '이 노래는 꼭 이 분이 해야 잘 맞아' 했는데 그런 이유들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가수분이 하는 경우가 있다. 노래가 정말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게 '이분이 안 했었으면 어쩔 뻔했어' 하고 말하곤 한다. 이 노래만은 꼭 이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게 드라마마다 늘 있기는 한 것 같다."

- 물론 가수들이 부르는 OST들이 화제가 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목소리 없이 깔리는 사운드트랙들이 드라마에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래가 더 중요하다, 연주곡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 어떤 드라마는 노래들이 중요해서 중심을 잡는 드라마가 있고, 굳이 노래를 꼭 많이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드는 드라마도 있다. 아직은 노래를 더 기억을 해주시는 시청자분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연주곡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연주곡도 기억을 많이 해 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곡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남혜승 음악감독, 이건호 기사, 김경희 작곡가.  남혜승 음악감독은 작곡가들과의 협업에 대해 "내가 못하는 부분을 잘하는 친구와 같이 하면서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 곡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남혜승 음악감독, 이건호 기사, 김경희 작곡가. 남혜승 음악감독은 작곡가들과의 협업에 대해 "내가 못하는 부분을 잘하는 친구와 같이 하면서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 김희주


- '음악이 들어가야 할 신, 들어가지 않아야 할 신이 있고, 들어가더라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인 앤 아웃을 정하는 어떠한 기준이 있는가?
"인 앤 아웃은 같은 신을 봐도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재밌는 점은 장르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코믹한 장면이나 장르물은 음악이 먼저 치고 들어간다. 반대로 멜로 신 같은 경우에는 조금 호흡을 주고 들어가는 편이다. 키스신이나 손을 잡는 신이 있으면 잡자마자 음악을 넣는 게 아니라 아무 소리가 안 났을 때 시청자들이 오히려 더 몰입을 하고 그 떨림을 느낀다. 그런 경우에는 음악이 먼저 나오면서 강요하는 느낌으로 가는 것을 안 좋아한다. 아예 비우거나 시청자들이 그 떨림을 조금 느끼고 나서 들어가도록 음악을 넣어본다. 

음악이 빠지는 것도 어디서 빠지는 것이 시청자에게 감정 전달이 잘 될지, 감정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음악을 어떻게 채워 넣을까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음악을 어떻게 잘 비울까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비우는 것이 잘 넣는 것보다 어렵지만,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을 때의 텐션이 확실히 있다.

음악 자체도 시대가 가면서 많이 바뀌는 것 같다. 효과음인지 음악인지 구분이 애매한 음악들도 많아졌고 빠르게 달라진다. 어려운 건 정답도 없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대답을 해줄 수 없다. 방송하는 걸 보고 저 부분은 저렇게 가기보다 다르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기도 하고 아침에 보는 것과 저녁에 보는 것이 다를 때도 있다.

시청자분들이 크게 생각 안 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어떻게 하는 것이 그 신의 호흡을 효과적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을까, 인 앤 아웃 지점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끝낼까의 찰나를 놓고서 엄청 고민하는 것 같다."

- 작업을 해 나가면서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영상과의 매칭이 가장 숙제거리이다. 음악만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이 있지만, 그것보다 음악만 들었을 때는 모자란 것 같고 이상한 것 같지만 영상에 붙였을 때 기가 막히게 신을 도와주고 같이 갈 수 있는 음악이 있다. 요즘은 계속 잘 하던 것을 하느냐, 새로운 것을 하느냐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게 나의 색깔인데 굳이 그걸 피해 가면서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히트를 친 드라마를 작업한 뒤에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데, 음악만 들었을 때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는데 가수의 톤이 비슷해서 너무 비슷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같이 작업했던 연출 감독님께 고민을 얘기했더니 감독님이 설사 비슷해도 그게 너의 색깔이고 좋은 색깔인데 뭐가 그렇게 잘못한 것이냐고 말씀하시더라. 그러면서 그게 그 드라마에서 최선이면 굳이 피해 갈 필요가 있냐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 드라마 할 때는 음악이 뭔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다. 마이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니까 어떨 때는 '내가 뭘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나이고 그런 게 잘 맞는 드라마를 잘 표현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할 수 없는 드라마, 잘 안 맞는 드라마도 있는 것이다."

- 가장 최근에 작업했던 <청춘기록>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음악적으로는 바비의 'Spotlight'가 가장 기억에 남고, 가사는 단연 이하이의 'Brave Enough'이다. 둘 다 사실은 자기가 자기한테 해주는 이야기이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 자신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두 곡 다 김경희 작곡가와 가사를 나눠 썼는데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이어지더라. 결국에는 모두가 그 자리에서 힘든 것들이 있고, 고민의 색깔과 내용은 다르지만 다 비슷하구나,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곡들이다. 'Brave Enough'에 이런 가사가 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 그곳에 낯선 내가 있어 / 말 없는 미소로 나를 보며 / 괜찮다고'. 정말 아끼는 가사이다."

- 음악감독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질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나?
"곡만 잘 쓴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계속 대화하는 가운데 음악과 보이는 것의 매칭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지의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곡은 엄청 잘 썼는데 결이 안 맞는다든지 잘 안 맞지 않는 장면에 쓴다든지, 그 장면에는 잘 맞는데 어떤 부분을 시작을 해야 되는지 감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다. 그 음악 때문에 그 신이 왜곡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다. 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과 매칭 능력이 중요하다."

- 드라마 음악 작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
"색깔을 입히면서 진하게도 하고 옅게도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은 '감정과 감정의 사이를 메꾸는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배우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대본을 봤을 때의 감정이 있는데 이 두 감정의 사이사이를 메꿔주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정성과 진심을 다해서 선물을 포장하는 느낌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받쳐도 주고 돋보이게도 해 줄 수 있는 어떤 진심 같은 것이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 하나가 있다면.
"방송이 끝나면 드라마 음악도 같이 사라지는 느낌이 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노래와 연주곡들을 가지고 한번 공연을 해 보고 싶다. 노래나 가수에 집중되기보다는 어떤 드라마에서 중요한 음악들, 아니면 볼 때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들으니 '맞아, 그때 이런 음악이 있었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평소에도 악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내년에는 국악기도 해 보고 잠시 접고 있는 기타에 몰입을 해서 연주나 밴드로서의 공연도 하고 싶다.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꾼다. 재밌는 무대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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