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 넷플릭스

 
1950년대 후반 미국 중남부 켄터키주의 어느 보육원. 엄마와 함께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혼자 살아남은 9살 소녀 엘리자베스 하먼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흑인 친구 졸린이 그녀와 함께해 준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매일매일 두 가지 약을 먹었는데, 초록색 약은 온화환 성품을, 주황-갈색은 튼튼한 몸을 길러준다 했다. 불시에 혼자가 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완벽한 식단을 챙겨 주지 못하기에 약으로 보충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하먼은 어느 날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관리인 샤이벌이 두는 체스에 관심을 가지고 곧 초록색 약, 즉 신경안정제의 효능으로 체스에 비상한 능력을 뽐내게 된다. 신경안정제만 먹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머릿속 체스 게임이 천장에 그려져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샤이벌에게 방법과 전략과 매너 등을 배우며 곧 그를 이기고 근처 고등학교 체스부 전체와 맞붙어 이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 만 그녀에게 체스금지령을 내리고 몇 년 후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난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곤 하는 남편을 둔 앨마 휘틀리 부인과 살게 된 하먼, 휘틀리 부인이 복용하는 신경안정제를 빼돌려 복용하며 다시 체스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체스에 대한 열망과 돈 벌 길 없이 앞날이 막막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체스대회에 출전한다. 켄터기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돈도 벌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하먼, 휘틀리 부인이 매니저가 되어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의 체스 대회들을 석권하기 시작한다. 

US 오픈, US 챔피언십 등의 미국 대표 대회에도 출전하며 미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이자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 대회에도 출전해 체스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 될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와도 대결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의 체스 선수 자리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보이는 그녀,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에겐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넷플릭스 명작 드라마 폭격의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열일하는 모양새다. 각국의 명작 드라마들이 폭격하듯 시간차를 두지 않고 찾아오니까 말이다. 최근 들어 접한 드라마들, 이를테면 한국의 <보건교사 안은영>, 독일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바바리안>, 프랑스의 <라 레볼뤼시옹>, 미국의 <어웨이> <래치드> 그리고 영국의 <퀸스 갬빗>과 곧 나올 <더 크라운 시즌 4>까지. 하나같이 나름의 합리적이면서 확고한 시선을 장착하곤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와 미장센으로 중무장했다. 

<퀸스 갬빗>은 1983년에 출간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함이 돋보인다. 2014년에 드라마로 데뷔해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주조연 가리지 않고 활발히 얼굴을 비춘 '안야 테일러조이'가 하먼 역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그녀가 아니면 이 역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이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이 분한 다니엘의 아들 역으로 큰 명성을 떨친 '토머스 브로디생스터'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두들리로 역시 큰 명성을 떨친 '해리 멜링'이 그들이다. 

'퀸스 갬빗'은 체스의 오프닝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해, 체스 게임을 시작하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오프닝 전략은 체스의 말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폰'(우리나라로 치면 '졸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을 희생해 '퀸'으로 이후 포지션을 유리하게 진행시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인기가 많을 뿐더러 분석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체스라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하먼의 '성장'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체스 대회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인 듯 시크한 성격에 인생을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하먼에게 불시에 '체스'가 다가온다. 이후 그녀는 체스를 잘 두어 최고가 되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길이 성장의 길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겠다. 

하먼은 체스를 하지 않는 때에 체스를 통해 인생을 알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뭔가를 하며 살아간다. 대체로 직업으로서의 일일 텐데, 거기에서 기본적으로 돈을 취득하고 나아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을 알아간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실제론 인생을 알아가거니와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함께하며 많은 걸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나는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등. 

동양의 장기나 바둑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양의 체스도 다분히 남자의 전유물이다. 지금이야 남녀 관계 없이 함께하지만, 50년이 넘은 작품 속 배경에서 여자는 여자부에 소속되어 여자끼리 실력을 겨루어야 했다. 물론, 여자부에서 우승했다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배경에서 10대에 불과한 소녀 하먼이 독보적인 실력으로 대회를 휩쓰니 세상의 눈이 획기적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극한 일상에서 그녀가 대면한 건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다. 세상이 가르쳐 준 '여자'로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지는 모습 말이다. 

하먼은 그래서 더더욱 체스로 빠져든다.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64칸의 체스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놓쳤고 놓칠 뻔한 것들이 있으니, 그녀 곁에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 준 사람들이다. 체스를 잘하려면, 당연히 체스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체스에 인생을 바친 하먼에게도 인생=체스일 수 없듯, 하먼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체스 아닌 것들도 필요하다. 체스라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는 걸 깨닫는 데 좋은 인연들이 절대적으로 한몫들 한다.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 너머, 특별한 이야기

<퀸스 갬빗>은 체스를 잘 알면 알수록 재밌을 테지만 체스를 아예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췄다. 하먼의 '체스' 이야기 만큼 '인생'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중간중간 나오는 체스 대회와 대회 속 게임에서의 알 길 없는 용어, 전략 들이 꽤나 전문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체스와 관련되어 있지만 체스 밖의 것들이라 할 만한 스승과 친구와 라이벌과 파트너 들이 빛을 발한다. 하먼의 '체스' 이야기가 아닌, '하먼'의 체스 이야기. 

그런가 하면, 사실상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뻔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하먼의 특별한 개인적 배경 덕분이겠다. 극 중에서 하먼의 최대 난적인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가 말한 "물러설 곳이 없으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 말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홀로 보육원에 뚝 떨어진다. 10대 중반 입양을 가서 나쁘지 않은 시절을 보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체스밖에 남은 게 없지만 여전히 어린 나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과중한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체스 천재'가 체스 안에서가 아닌 체스 밖에서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천재 아닌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통용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 체스의 오프닝과 엔드게임, 하먼의 밑바닥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남김 없이 모두 보여 준 작품은, 시즌 2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하먼의 이야기로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강렬했던 하먼 아닌 다른 캐릭터로 스핀오프를 제작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만큼 여러 모로 완벽했던 작품 <퀸스 갬빗>, 하여 제작과 각본과 연출까지 도맡아 한 '스콧 프랭크'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그는 <조지 클루니의 표적>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리와 나> <로건>의 각본가로 유명한데, <퀸스 갬빗>으로 본인 인생에 한 획을 그었을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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