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 주심이 11일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 5세트에서 김연경의 네트 행위에 대한 판정에 대해 GS칼텍스 주장 이소영에게 설명하고 있다. (장충 체육관, 2020.11.11)

강주희 주심이 11일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 5세트에서 김연경의 네트 행위에 대한 판정에 대해 GS칼텍스 주장 이소영에게 설명하고 있다. (장충 체육관, 2020.11.11) ⓒ 한국배구연맹

 
김연경이 경기 도중 스스로에게 분노를 표출한 제스처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런 가운데, 경기 당시 주심을 맡은 강주희(49)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이 김연경의 행위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기자는 강주희 주심과 어렵게 연락을 취한 끝에 그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논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2020-2021시즌 V리그 여자배구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가 1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여자배구 최고 빅매치답게 경기 수준이 매우 높았다. 내용도 시종일관 접전을 거듭했다. 경기 결과도 흥국생명이 GS칼텍스에 세트 스코어 3-2(23-25, 25-22, 25-19, 23-25, 17-15) 신승이었다. 2시간 30분에 걸친 명승부였다. 

흥행 면에서도 관중 광속 매진, 높은 케이블TV 시청률(2.0%) 등 역대급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과열되면서 선수들의 제스처도 커지고, 감독 등 코칭스태프도 사안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또한 심리전이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장면은 5세트 막판 14-14 동점 상황에서 나왔다. 살얼음판 국면에서 김연경의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막히면서 GS칼텍스가 다시 15-14로 앞서갔다. 그러자 김연경은 네트를 잡아끌며 스스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자책성 제스처'를 취했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주심을 향해 '김연경의 행위에 대해 경고를 주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강주희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경기는 재개됐고,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맹활약과 이재영의 쐐기포로 막판 역전승을 연출했다. 차상현 감독은 경기 직후 공식 인터뷰에서 판정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김연경의 행동에 대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경고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팬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김연경의 행동이 과했다는 비판과 프로 스포츠에서 그 정도는 승부욕의 표현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옹호론이 맞섰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12일 "김연경 선수의 행위에 대해 주심인 강주희 심판이 선수를 제재하지 않고 경기를 진행한 점에 대해 잘못된 규칙 적용이라 판단하고, 해당 심판에게 제재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각 구단들에게도 선수의 과격한 행동 방지와 이를 위한 철저한 재발방지 교육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강주희 주심에게 남은 카드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강주희 주심은 어떤 판단에서 김연경에게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걸까.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강주희 주심은 KOVO의 징계 판단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그 판정이 최선이었다"며 자신의 소신을 유지했다.

강주희 주심은 국내에서 유일한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이다. 2016 리우 올림픽 등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주심을 맡아 왔고, 내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심판으로 배정됐다. 국내 심판 중에서 국제적 명성이 가장 높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소신 판정을 할 수 있는 레벨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11일 GS칼텍스-흥국생명 경기 상황을 복기하면서 자신의 판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우선 5세트 막판 상황에서 주심이 취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두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강주희 주심은 앞선 2세트에서 공을 바닥에 내리친 행위를 한 김연경에게 '구두 경고'를 준 바 있다. 물론 상대팀을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친 것이었다. 때문에 구두 경고로 그쳤다.

또한 4세트 막판에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비디오 판독 도중 경기 감독관석을 향해 "비디오 판독을 받아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항의하자, 강주희 주심은 경고 카드(옐로 카드)를 꺼냈다. 이로써 흥국생명 팀에게 이미 옐로 카드가 주어진 상황이 됐다.

결국 5세트에서 강주희 주심이 취할 수 있는 추가 제재는 김연경 행위에 대해 레드 카드를 주거나, 선수를 퇴장 조치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규정상 한 경기에서 구두 경고와 옐로 카드를 2번 연속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드 카드를 줄 경우 GS칼텍스가 1점을 추가 획득하면서 경기가 그대로 끝나버린다. GS칼텍스가 15-14로 앞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연경을 퇴장시키는 조치도 과연 그 상황에서 적절한지,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레드카드·퇴장시켰다면, 해외 토픽감 조롱 받았을 것"
 
 흥국생명 선수들 경기 모습... 2020-2021시즌 V리그 (2020.11.11)

흥국생명 선수들 경기 모습... 2020-2021시즌 V리그 (2020.11.11) ⓒ 한국배구연맹

 
강주희 주심은 "5세트 막판 팽팽한 순간에 주심으로서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해야 했다"며 "김연경의 네트 행위에 대해 제재 조치를 하지 않은 건 크게 세 가지 이유였다"고 밝혔다.

그는 첫 번째 이유로 "김연경의 행위가 비신사적인 건 맞다. 그러나 레드 카드나 선수 퇴장 조치를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연경이 긴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스스로 분에 못 이겨서 하는 행위였다"며 "상대팀에게 자극을 주거나 경기에 방해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주심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경기가 잘 마무리되도록 운영하는 것도 큰 임무"라며 "5세트 막판 양 팀 모두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주심이 선수의 행위를 과도하게 해석해서 레드 카드나 퇴장을 시켜 경기를 끝내는 조치는 국제 심판계에서도 잘못된 운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이유로는 "국제대회나 해외 리그에서도 경기 막판 상황에서 선수의 행위가 심각한 정도가 아닌 경우 레드 카드나 퇴장 조치를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만약 제가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아마 해외 토픽감으로 조롱을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날 경기에서 김연경 말고도 GS칼텍스 선수도 자신의 실책 후 네트를 붙잡고 끄는 행위를 했다. 실제로 경기를 하다 보면, 많은 선수가 아쉬움 마음에 그런 행위를 한다. 그렇다고 모두 경고를 주는 건 아니다. 결국 의도, 당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빅매치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때, 주심은 어떤 판정을 내려도 욕을 먹게 돼 있다. 규정과 소신에 따라 판정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 전직 국제심판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김연경의 네트 행위에 대해 레드 카드나 퇴장 조치를 줄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다만 주심이 손짓으로 자제하라는 제스처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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