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광장 인근에서 열린 ‘제12차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가수 이승환 ⓒ 유성호

 
유산슬과 싹쓰리, 환불원정대 등으로 방영 1년 4개월 만에 최고의 주말 예능으로 자리 잡은 MBC <놀면 뭐하니?>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위축된 공연시장을 살리고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공연을 보여주기 위한 '방구석 콘서트'를 기획했다. <무한도전> 시절부터 김태호 PD의 예능이 늘 그런 것처럼 가벼운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시작했던 콘서트의 규모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0팀이 넘는 뮤지션들이 참가한 대형공연으로 판이 커졌다.

'방구석 콘서트'에는 뮤지컬 맘마미아와 빨래팀, 사이먼 도미닉, 우원재, 코드 쿤스트 등이 속한 힙합 레이블 AOMG, '벚꽃 재벌(?)' 장범준, 전국에 춤바람을 일으킨 <아무 노래>의 지코, 언더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새소년과 선우정아, 트로트 여신 송가인 등 많은 뮤지션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2주의 시간을 할애하며 가장 스케일이 큰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는 바로 이승환이었다.

지금은 가수 육성 시스템이 체계화돼 대부분의 가수들이 기획사들에 의해 데뷔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급자족'으로 앨범을 내는 가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앨범을 낸 가수들 중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는 가수는 극히 일부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게 사는 50대 '아재' 이승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고 그렇게 받은 사랑으로 또 다시 음악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앨범 제작부터 활동까지 손수 해결하는 자급자족 뮤지션
 
 이승환 4집은 엄청난 제작비 만큼이나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앨범이다.

이승환 4집은 엄청난 제작비 만큼이나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앨범이다. ⓒ 드림 팩토리

 
학창시절 들국화의 공연을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운 이승환은 한국외대 진학 후 언더그라운드 메탈밴드 모임에서 활동했다. 이승환은 함께 활동하던 메탈 프로젝트에서 3집까지 함께 했던 작곡가 오태호를 만났다(당시만 해도 오태호는 메탈에만 푹 빠져 있던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오태호는 고 이영훈의 음악을 듣고 발라드에 심취하게 됐고 이승환은 동년배에 '넘사벽'의 록보컬리스트 김종서가 있어 메탈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승환은 자신이 만든 데모 테이프를 돌렸지만 무려 17군데의 음반사에서 퇴짜를 맞았고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500만 원을 미리 상속받아 직접 1집 앨범을 제작했다. 1989년 발표된 이승환 1집은 초반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6개월이 지난 1990년 여름부터 라디오를 중심으로 이승환의 자작곡 <텅 빈 마음>과 오태호가 쓴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가 동시에 사랑을 받았다.

이승환은 1991년 발표한 2집 앨범에서도 <너를 향한 마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사랑하는 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조용하고 얌전한 음악들과 달리 콘서트에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 1992년 오태호와 함께 '이오공감' 앨범을 발표한 이승환은 1993년 김광진이 참여한 3집 앨범을 통해 타이틀곡 <내게>를 비롯해 <덩크슛>, <화려하지 않은 고백>등을 히트시켰다.

이승환은 기본적으로 TV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활동방식 탓에 순위프로그램에서는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언제나 수십 만장의 앨범을 팔아 치웠고 공연장에는 늘 만원 관객이 들어찼다. 대중에게 찾아가는 가수가 아닌 대중이 찾아오게 만드는 가수. 실제로 이승환이 발표한 세 장의 정규 앨범은 대부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이승환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이면서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승환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탈밴드 출신 이승환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승환은 당시 친하게 지내던 후배인 015B의 정석원과 함께 LA로 출국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무려 5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4번째 정규 앨범 'Human'을 완성했다(당시 가요 앨범의 평균 제작비는 2000~3000만원 선이었다고 한다).

[Water Side] 대중들이 사랑하는 발라드 '어린 왕자' 

1995년 6월에 발매된 이승환 4집은 13개의 트랙이 담겨 있는 대형 앨범이다. 이승환은 기존의 대중적인 발라드곡들 위주로 채운 첫 7개의 트랙을 'Water Side', 자신이 추구하고 싶었던 실험적인 음악들이 들어 있는 나머지 6개의 트랙을 'Fire Side'로 구분했다. 당연히 일반 대중들이 기억하는 4집의 명곡들은 'Water Side'에 집중돼 있다.

타이틀곡은 오늘날까지도 이승환의 올타임 넘버원 히트곡으로 꼽히는 <천일동안>. 이승환의 처절한 가사와 김동률의 애절한 멜로디, 데이빗 켐벨의 웅장한 편곡, 그리고 폭발적인 가창력이 더해진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이다. 특히 '우리 이 생애에선 불행했지만 다음 세상에선 꼭 행복하게 지내요'로 끝나는 대중가요의 일반적인 공식을 깨고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마요"라고 끝나는 후반부 가사는 노래의 처절함을 극대화했다.

<천일동안>을 제외하고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곡 역시 김동률이 만든 <다만>이다. 사실 김동률은 이 곡을 현악기를 써서 조금 더 웅장하게 편곡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승환은 편곡자 김현철에게 짝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사 내용에 맞게 담백한 편곡을 요구했다. 이승환 3집에서 <내게>, <덩크슛>, <라디오헤븐>을 만들었던 김광진은 본인의 장기를 살려 슬픈 발라드 <흑백영화처럼>을 작곡했다.

'Water Side'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가 바라는 나>는 이승환이 콘서트에서 앵콜 무대 중 한 곡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다(공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이승환은 앵콜 무대도 한두 곡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담담하게 늘어 놓다가 마지막으로 진정 바라는 나는 '더 이상 너 때문에 아파하지 않는 나'라며 궁상 맞은 반전(?)을 주고 끝나는 곡이다.

[Fire Side] 공연의 황제이자 전직 메탈 보컬리스트

이제 '발라드 가수' 이승환의 서비스 타임은 끝이다. 이승환은 'Fire Side'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록성향의 음악들을 담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면 듣는 사람이 적응을 못하기 때문에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통해 '예열'의 시간을 준다.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자신은 수많은 발라드곡을 통해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한다고 청승을 떨어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쿨한 이별'을 강요하는 매우 이기적인(?) 곡이다. 

'Fire Side'의 커다란 특징은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감성변태' 유희열의 등장이다. 유희열은 이승환 4집에서 <부기우기>와 <변해가는 그대>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특히 <변해가는 그대>는 'Fire Side'는 물론이고 유희열이 다른 가수에게 준 곡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힌다. 물론 <변해가는 그대>가 명곡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승환의 변화무쌍한 보컬을 만났기 때문인데 앨범버전보다는 라이브 버전에서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희망찬 가사와 이승환 특유의 시원한 보컬이 돋보이는 <멋있게 사는 거야>가 지나가면 이승환 4집에서 가장 비범한 곡 <너의 나라>가 등장한다. <너의 나라>는 9분4초의 런닝타임을 자랑하는 대곡으로 이승환이 메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인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김종서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너의 나라>는 무명 시절 자신이 인정한 실력파 친구와 함께 한 노래이기에 이승환에게는 더욱 의미가 남다른 곡이다.

이승환 4집은 밀리언셀러가 판을 치던 시대에도 1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승환의 마니아와 라이트팬을 나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4집 발매 후 '발라드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그의 낯선 모습에 실망해 '탈덕'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러 장르의 음악이 가능한 '뮤지션'이자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는 '율동록커' 이승환에게 더욱 열광했다.

명절에 지상파에서 공연실황을 방송해주는 '공연장인'
 
 이승환은 작년에도 데뷔 30주년을 맞아 12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이승환은 작년에도 데뷔 30주년을 맞아 12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 드림 팩토리 클럽

 
이승환은 이후에도 정규 앨범뿐 아니라 'HIS BALLAD', '유치뽕', 'Serious Day' 같은 전혀 다른 색깔의 비정규 앨범들을 발표하며 팬들의 분열(?)을 부추겼다. 심지어 7집 < Egg >에서는 아예 발라드 위주의 'Sunny Side-Up'과 록 음악 위주의 'Over Easy'를 나눠서 발매하기도 했다. 뮤지션은 자신의 음악적 취향대로 음악을 만들었으니 대중들도 각자의 취향에 맞게 앨범을 구입하라는 이승환의 '패기'가 담긴 앨범이었다.

오늘날 이승환은 대중들에게 훨씬 다양한 형태로 알려져 있다. 50대의 나이에 피규어 수집을 취미로 하는 '오타쿠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최신 히트곡이 없는 '왕년의 인기가수'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떤 이는 그의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트집 잡기도 한다(실제로 이승환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졌다는 사실을 굉장히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에 대해서는 '꼴통 같이 타협도 싫고 독종 같이 고집만 쎈' 이승환을 좋아한다. 이승환은 모창가수들이 출연하는 <히든싱어>의 무대조차 경연장이 아닌 '공연장'으로 만드는 진정한 보컬리스트이고 가슴 시린 가사와 곡을 쓰는 뮤지션이다. 

지난 2015년 설날에는 SBS에서 이승환의 연말콘서트 '진짜'를 녹화중계하기도 했다. 사실 명절 때 특정 가수의 단독 콘서트가 지상파를 통해 방송되는 것은 나훈아, 조용필 등 이른바 '국민가수'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물론 이승환이 그 정도의 입지를 가진 가수는 아니지만 8시간 27분 35초라는 역대 최장기간 공연기록을 보유한 이승환은 적어도 공연의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레전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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