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레전드와 생활체육을 결합한 또 한편의 새로운 스포츠 예능이 등장했다. 9일 첫방송된 KBS2 새 예능 프로그램 <축구야구말구>에서는 한국 양대 구기종목을 대표하는 두 레전드 박찬호(야구)와 이영표(축구)가 걸그룹 오마이걸 승희와 함께 첫 만남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체육 도전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축구야구말구>는 박찬호와 이영표가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일반인 생활 체육 고수를 찾아 떠나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의 명예를 걸고 '재야의 고수들'과 한 치의 양보 없는 진검 승부를 펼치는 '투머치토킹 스포츠 로드 버라이어티'를 표방했다. 프로그램의 제목 역시 말 그대로 두 스타의 주종목이자 대표적인 메이저 스포츠로 꼽히는 축구-야구를 제외한 다양한 생활 체육 종목을 경험해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과거에 역시 KBS에서 방영되어 다양한 생활체육 도전을 담아내 높은 인기를 끌었던 <우리 동네 예체능>의 리뉴얼 버전이라고도 할만하다.

'코리안특급' 박찬호는 한국야구사에 '원조 메이저리거 1호'이자 '동양인 최다승(124승)' 기록의 업적으로 기억되는 전설이다. '초롱이' 이영표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의 주역이었고, 유럽무대에서도 PSV아인트호벤-토트넘-도르트문트 등 여러 유럽 빅리그 명문팀에서 활약하며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두 스타는 은퇴 후에도 다양한 방송활동과 해설위원 경력 등으로 친근한 이미지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스포츠 스타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다수의 예능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지만, 게스트나 패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역할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적지않은 방송경험으로 나름 단련이 된 스타들답게 박찬호와 이영표는 첫 회부터 능숙한 입담과 변함없는 열정으로 프로그램 컨셉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찬호는 그 유명한 '투머치 토커'라는 별명답게 첫회부터 정신없는 토크 열정으로 다른 출연자들의 혼을 빼놓았고, 이영표는 <안싸우면 다행이야>에서 선보였던 은근히 뺀질거리는 캐릭터와 선배들 앞에서도 할말은 다하는 돌직구 캐릭터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낸 바 있다.

첫 회부터 두 사람은 각자 닉네임 정하기에서 과거사 소환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대화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로그램 제목을 놓고 서로 자신의 종목을 먼저 앞에 세워야한다며 장난스러운 신경전을 펼쳤고, 결국 이영표의 승리로 타이틀이 <축구야구말구>로 정해졌다. 첫 회의 특별 게스트로는 테니스 스타 이형택이 출연하여 함께 테니스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가 진행됐다.

이처럼 최근 방송가에서는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운 체육예능의 인기가 다시 돌아오고 있는 추세다. <뭉쳐야찬다>는 대한민국 각 종목 레전드들이 한 팀을 이뤄서 조기축구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려내며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뭉찬>의 성공 이후 연예인 농구팀의 아마추어 대회 도전을 다룬 <진짜농구, 핸섬 타이거즈>, 여성 스포츠스타들을 내세운 <노는 언니>, e축구게임을 소재로 한 <위캔게임>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포츠 레전드와 생활체육의 조합이 주는 매력은, 역시 예능 특유의 웃음과 스포츠의 역동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다양한 볼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레전드지만, 그외의 영역에서는 일반인과 다를바없는 '생초짜'에 불과한 운동선수들이 과연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뭉찬>은 축구 규정을 몰라서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골키퍼 허재, 운동부족으로 살이쪄서 유니폼을 탱크탑으로 만들어버린 양준혁 등 스포츠 레전드에서 평범한 중년 아재로 내려온 스타들의 친근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큰 웃음을 안겼다. 이들이 축구라는 전혀 다른 분야와 새로운 도전이 주는 재미에 눈을 뜨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또한 <예체능>은 축구-농구-배구-볼링-유도-테니스 등 다양한 종목을 소화하며 약 3년 6개월에 걸쳐 장수예능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예체능>이 연예인-스포츠스타-셀럽 등 각 종목마다 다양한 구성원들을 섭외하여 '팀으로서의 조합과, 미션을 통한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 비하여 <축구야구말고>는 일단 박찬호와 이영표라는 두 개성강한 스포츠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운 일종의 '캐릭터극'에 가까운 분위기로 출발했다. 특별한 전문 MC나 방송인없이 과연 두 사람만으로 원할한 진행이 가능할까 우려했던 부분은 박찬호-이영표의 쉴틈없는 '말빨'과 의의로 잘맞아떨어지는 호흡 덕분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순박하고 어눌한 듯 하지만 마이웨이가 확실한 박찬호, 똘똘하고 논리적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은근히 허당스러운 면도 드러내는 이영표, 전혀 상반된 캐릭터가 보여줄 '뜻밖의 케미'는, 앞으로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일종의 매니저에 가까운 멘탈 코치라는 이름으로 투입된 걸그룹 승희의 경우, 첫 회에서의 비중과 역할은 다소 애매했다. 물론 승희처럼 특유의 비타민처럼 발랄하고 활달한 '리액션'을 담당할 캐릭터도 프로그램에 필요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굳이 걸그룹이나 연예인보다는 박찬호-이영표나 스포츠 분야와 좀 더 관련이 있는 인물을 섭외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이다.

현역 시절의 신비주의와 이미지 관리를 벗어던진 중년의 스포츠스타들이, 뭐든 잘한다며 귀여운 허세나, 세월의 무게를 절감하고 망가지는 모습은, 순발력넘치는 연예인들의 상황극과는 또다른 편안한 웃음과 공감대를 선사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보는 체육이든, 직접 하는 체육이든 직접 운동을 즐길 기회가 줄어든 최근의 시청자들에게는 일종의 대리만족같은 효과도 가져다 줄 전망이다. <축구야구말구>가 스포츠 예능의 인기를 이어가는 또다른 성공작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찬호 이영표 축구야구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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