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사망 50주기다. 스물두 살 젊은 청년의 죽음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노동환경의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동과 모진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 영화 속 '노동'의 삶 또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크린 속 '노동'의 현실을 통해 '기계'가 아닌 '인간'이고 싶었던 한 젊은 청년의 소망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편집자말]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과 삼동회는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려 했다. 하지만 화형식은 경찰에 의해 무산될 위기에 놓였고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당시 노동 환경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자의 삶과 권리가 사회 이슈의 중심으로 이동했고, 대학생들은 공장으로 향했다. 노조가 설립되고 많은 저항운동이 일어나면서 노동권은 점진적으로 보장받게 됐다.

그러나 최근 빈발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태일 열사 추모 50주기를 앞두고 지난 2014년 11월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가 떠오른 이유다. 2007년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를 모티브로 삼은 <카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불편한 노동 현실을 환기하는 작품이다.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취업준비생 '미진(천우희)'은 대한민국 대표 마트 '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열악한 휴게실 환경과 교대로 돌아가는 근무표, 온갖 컴플레인과 잔소리에 시달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측은 '동준(김강우)'과 같은 정직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비정규직을 급작스럽게 해고하겠다고 통지한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한 그녀들은 회사에 맞서 노조를 만들고,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로 다짐한다.   

영화는 머리로는 알지만 심정적으로는 먼 노동운동의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히 묘사한다. 작중 등장하는 공간, 인물, 이야기는 현실을 눈앞과 손끝으로 불러오려는 노력으로 가득하다. 주인공들이 일하는 장소는 익숙한 소비 공간이자 노동 공간인 대형 마트와 편의점이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인물들은 남성 정규직 직원, 여성 비정규직, 대학생 및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이다.

이는 현실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을 일반화한 구도로 볼 수 있다. 문화제 형식의 시위, 점거, 폭력적인 공권력 투입과 경제적 요인만을 고려한 일방적인 정리해고 등 클리셰로 쓰이는 노동 관련 이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카트>가 전달하는 두 가지 메시지
 
 영화 <카트> 스틸 이미지.

영화 <카트> 스틸 이미지. ⓒ 리틀빅픽처스

 
영화 <카트>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는 노동과 노동운동이 뭔가 거창하고 위험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과 직결된 그 삶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할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마트 점거 중에 직원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주연급 주인공이 아닌 단역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왜 일하는지, 이 일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직접 전달한다. 이 장면 이후로 단지 일로만 만나던 이들은 새롭게 관계를 맺고 더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선다.

이러한 메시지는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식사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밥을 먹는 것이 삶의 필수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공통점 삼아 밥을 생존을 위한 노동에 비유한다.

선희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혜미가 내미는 손도 거부한 채 악독같이 연장 근무에 나선다. 아들 '태영(도경수)'이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을 못 먹는 상황이 되도록 일에 몰두한다. 집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정규직 전환 여부에 신경이 팔려서 잔뜩 날이 서 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을 챙겨야 하는 태영도 학교 친구인 '수경(지우)'이 내미는 호의(삼각김밥)를 거절한다. 이때 선희와 태영 모자에게 밥은 일처럼 철저히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자신의 일만 챙겼던 이들은 일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자 깨닫는다. 나 혼자 열심히 일할 게 아니라 같이 일할 수 있어야 했다고 말이다. 홀로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인 이들과 연대해야 불의와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도 식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마트 점거 첫날에 선희는 미진, 순애와 함께 밥과 국을 나눠 먹는다. 억울하게 월급 받지 못하고 편의점 창문을 깬 수경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태영도 그녀와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차갑고 날 서 있던 분위기는 누그러지고 그 자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기가 대신한다. 

이처럼 식사 장면에 담긴 메시지는 영화의 제목이자 끝을 장식하는 소품인 카트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결말을 제외하면 작중 카트는 그저 배경이자 소품일 뿐 스토리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다. 계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영화라서 계속 화면에는 등장하지만 미묘하게 초점을 빗겨나간다. 
 
 영화 <카트> 스틸 이미지.

영화 <카트> 스틸 이미지. ⓒ 리틀빅픽처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선 시위에서 언제나 존재하던 카트는 마침내 회사의 탄압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회를 향한 고함의 도구라는 의미를 찾는다. 

또한 경찰의 방패벽과 물대포를 향해 카트를 미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선희는 혜미와 함께 민다. 정규직이었던 사람도, 대학생도, 노인도, 주부도 남녀 가릴 것 없이 카트를 밀며 사회의 차별을 향해 함께 돌진한다. 이렇게 노동자의 연대라는 두 번째 주제를 강렬하게 전달하면서 <카트>의 결말은 왜 영화의 제목이 카트여야 했는지를 증명한다.

다만 <카트>의 결말은 의도대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해당 장면은 긴 슬로 모션과 애절하면서도 비장한 배경 음악이 더해진, 힘을 상당히 많이 준 극적인 연출로 이루어진다. 이 장면이 갖는 의미와 중요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담담한 어조와 감정을 억누르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다소 이질적인 마무리라는 아쉬움을 떨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메시지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개봉했을 당시 80만 명가량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문제의식에 관객들이 공감했다는 방증이다. 

또한 불완전한 결말은 오히려 메시지의 생명력을 역으로 늘린다. <카트>의 결말은 작중 감정을 온전히 날 것으로 분출시키는 몇 안 되는 장면이라서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본래 모두의 일이기도 한 노동자의 현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게 하는 힘이 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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