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우수한 선수들이 특정한 해에 쏟아져 나오는 '황금 세대'가 존재하듯 아마추어 가수 지망생들의 실력을 뽐내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재능 있는 인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해가 있다. 1977년부터 2012년까지 36회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MBC대학가요제'에서는 1978년에 열린 2회 대회 때 유독 뛰어난 뮤지션들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상을 받은 노사연을 비롯해 송골매 멤버들이 주축이 된 활주로(은상),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전설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심수봉 등이 1978년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활주로 멤버였던 배철수의 증언(?)에 의하면 2회 대회에서 우수한 팀들이 쏟아져 나온 이유는 1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이었던 샌드페플즈의 <나 어떡해>를 듣고 각 학교의 음악동아리에서 "뭐야, 저 정도는 우리도 하겠네"라며 2회 대회에 대거 참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의 축제였던 강변가요제에서는 단연 1988년이 '황금세대'라 불릴 만하다. 솔로 데뷔 후 <한 번만 더>로 인기를 얻었던 고 박성신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가창상과 장려상을 받았고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신승훈의 <우연히> 등을 만든 작곡가 박광현도 1988년 강변가요제 은상 출신이다.

알 없는 안경을 최초로 유행시킨 이상우는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받고 <바람에 옷깃이 날리 듯>, <그녀를 만나는 곳 100M전>, <하룻 밤의 꿈>, <비창> 등 많은 히트곡을 부르며 인기가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토록 쟁쟁한 1988년 강변가요제 멤버들도 대상 수상자만큼의 명성은 얻지 못했다. 바로 1980년대 최고의 여성 아이돌이자 가요계를 대표하는 '자유로운 영혼' 이상은이다. 
 
 1989년 12월 발매된 2집은 '아이돌 스타'로서 이상은이 내놓은 마지막 앨범이었다.

1989년 12월 발매된 2집은 '아이돌 스타'로서 이상은이 내놓은 마지막 앨범이었다. ⓒ 지구레코드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후 '마이클 잭슨'을 외친 당돌한 톰보이

무남독녀 외동딸인 이상은은 어린 시절부터 건축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술, 문예, 연극 등 예체능 쪽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미대 진학을 원했던 이상은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원비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변경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이상은은 1학년 여름방학이던 1988년 8월 춘천 남이섬에서 열린 제9회 MBC강변가요제에 출전해 학교 선배가 써준 <담다디>를 불러 대상을 차지했다. 이상은은 대상 수상 후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MC 이수만의 질문에 당당하게 "마이클 잭슨"이라고 외쳐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다(그런 상황에서는 십중팔구 부모님이나 스승님을 찾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강변가요제가 끝난 후 이상은이 몰고 온 '담다디 열풍'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이라는 단순한 후렴구가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가사와 쉽고 경쾌한 멜로디, 그리고 이상은의 자유로운 무대매너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돌 가수'라는 말조차 없었던 시절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 아이돌이 바로 이상은이었던 셈이다(특히 이상은은 특유의 중성적인 매력 때문에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더 많기로 유명했다).

이상은은 정식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담다디>로 KBS <가요톱텐>에서 무려 4번이나 정상을 차지했고 이상은이 주연한 <담다디>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제작됐다. 이상은은 <가요톱텐>같은 순위프로그램이 없던 MBC에서도 연말 < 10대 가수 가요제 >의 신인상과 10대 가수상을 휩쓸며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어린 나이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만19세의 어린 학생이었던 이상은에게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관심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상은을 대스타로 만든 경쾌한 댄스곡 <담다디>는 애초에 이상은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도 아니었다. 결국 이상은은 1989년 1월, 대중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1집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

훗날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유명해지는 포크 가수 강인원이 프로듀싱을 맡은 이상은의 1집 앨범은 < Happy Birthday to you >, <사랑해 사랑해>, <내 인생을 위하여>, <슬픔 없는 이별> 등 느린 템포의 발라드 위주로 채워져 있다. 하나같이 이상은의 허스키한 보이스를 극대화한 명곡들이었지만 대중들이 기대했던 것은 '발라드 가수' 이상은이 아니었다. 결국 이상은 1집은 높았던 기대치에 비해 다소 실망스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렇게 이상은은 '하고 싶은 음악'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고 고민 끝에 절충안을 찾아냈다. 그리고 1980년대가 저물어가던 1989년 12월 대중들의 기호와 자신의 음악적 욕심을 반씩 채운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물론 이상은은 앨범을 준비해야 할 비활동 기간에도 캐롤음반을 내고 영화 <굿모닝 대통령>에 출연하는 등 부지런히 '혹사' 당했다).

대중의 기호와 음악적 욕심 사이에서 찾아낸 절충안

이상은은 1집에서 실망한 대중들을 달래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사랑하게 될 거라고 외치는 단순한 가사와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댄스곡 <사랑할거야>를 2집 타이틀곡으로 선택했다. <담다디>의 이미지를 다시 앞세워 인기몰이를 해보겠다는 소속사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곡이었다. <사랑할거야>는 <가요톱텐> 1위 후보까지 오르며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훗날 일본곡을 표절한 것으로 판명됐다(물론 이상은이 쓴 곡은 아니다).

이상은은 후속곡 <그대 떠난 후>에서도 비슷한 이미지의 중성적인 매력을 뽐냈다. 사실 <담다디>의 연장선에 있던(게다가 표절곡이었던) <사랑할거야>보다는 '<그대 떠난 후>를 타이틀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스탠딩 마이크에 선글라스를 끼고 '걸크러시'를 내뿜는 무대연출을 할 수 있는 솔로 여가수는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은 2집 앨범을 통해 1집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발라드 음악들을 다시 시도했다. 1집의 프로듀서 강인원이 만든 <눈 뜨면 사랑이에요>와 <언아그듣(언제나 아침이면 그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이 대표적이다. 특히 <언아그듣>은 세련된 멜로디와 슬픈 가사, 그리고 한층 노련해진 이상은의 보컬이 조화를 이룬 명곡이다. 

앨범 후미에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야간비행>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5분 4초짜리 대곡이다. '태양이 스스로 떠오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가사에 노래의 속도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실험적인 형식의 곡이다. 비록 이상은이 직접 가사를 쓰진 않았지만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다는 가사 내용은 마치 그 시절 이상은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앨범에서 결코 쉽게 듣고 넘겨선 안 될 곡이 바로 이상은 최초의 자작곡 <아오아오아>다. 발매 당시엔 가사 내용처럼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신부가 혼자 숨어 우는 장면을 상상해 곡을 썼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스타 시스템'에 의해 조종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담은 곡이다. 생각 없이 들으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 이상은이 처한 상황을 알고 나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지는 곡이다.

비록 데뷔할 때만큼의 신드롬엔 미치지 못했지만 이상은은 여전히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아이돌 가수였다. 하지만 이상은은 원치 않는 음악을 하면서 소비되는 현실에 큰 자괴감을 느꼈다. 결국 이상은은 1990년 늦가을, 라디오DJ를 비롯한 모든 방송 출연을 중단(심지어 학교까지 휴학)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 어느 여름날 갑자기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80년대 아이돌'은 그렇게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정의 인기를 버리고 홀연히 떠난 자유로운 보헤미안

당초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이상은은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 타올라 음악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이상은은 1991년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만든 3집 <더딘 하루>를 발표하며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1993년에는 어쿠스틱 음반인 5집 <언젠가는>을 발표하며 인기스타가 아닌 여성 뮤지션으로 인정 받았다.

이상은은 5집 발매와 동시에 미국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한국 연예계의 부조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이상은은 <언젠가는> 활동 후 한국 활동에 환멸을 느껴 주류 연예계로 눈길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유학을 마친 이상은은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다. 1995년에는 대중성이라고는 귀를 씻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6집 <공무도하가>를 발표해 대중들을 패닉에 빠트렸다. 비록 대중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상은 6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10위에 오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참고로 대중음악 100대 명반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린 여성 뮤지션은 이상은이 유일하다).

이후 이상은은 <외롭고 웃긴 가게>, <비밀의 화원>, <삶은 여행> 등 '아는 사람만 아는 노래'들을 발표하며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이어 갔다. 이상은은 지난 9월에도 '남도애가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싱글 <쉬어가리>를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더 이상 대중들에게 익숙한 가수는 아니지만 이상은이 직접 쓴 <그대 떠난 후>의 노랫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사라진 건 아니다.
 
 이상은은 2014년에 발표한 lulu 앨범까지 무려 15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이상은은 2014년에 발표한 lulu 앨범까지 무려 15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 Sony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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