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니 보이> 메인 영화 <허니 보이> 메인

▲ 영화 <허니 보이> 메인 영화 <허니 보이> 메인 ⓒ 넷플릭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지난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 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의 일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있을 이 영화제의 레드 카펫 위로 한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나는 더 이상 유명하지 않아(I am not famous anymore)'라고 쓰인 갈색 종이 봉투를 얼굴에 뒤집어 쓰고 말이다. 이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운 웃음과 경악에 휩싸였다. 그는 그해 영화제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님포마니악>의 주연배우로 공식 초청받은 배우 샤이아 라보프였다.
 
샤이아 라보프, 2014년 베를린 영화제 샤이아 라보프, 2014년 베를린 영화제

▲ 샤이아 라보프, 2014년 베를린 영화제 샤이아 라보프, 2014년 베를린 영화제 ⓒ independent


그가 누구였던가?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놓기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샤이아 라보프는 마이클 베이 감독과 함께 영화 <트랜스포머>의 뼈대를 세우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배우였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 거둔 성적만 7억 달러 이상. 그가 출연한 처음 세 편이 거둬들인 수익만 월드 와이드 27억 달러가 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이, 로봇>, <디스터비아> 등의 필모를 갖추며 자신의 미래를 탄탄히 그려 나가던 그였다. 그랬던 배우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유명하지 않다며 자신을 깎아내리며 세계적인 영화제 레드카펫 위에 오른 것이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시리즈의 출연이 힘겹다는 이유로 이 불세출의 시리즈에서 자진 하차하고 직접 연출한 단편 영화 '하워드 캔투어 닷컴'이 표절 문제에 휩싸이면서 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던 것. 이후 자신에 쏟아지는 미디어의 부정적인 관심을 이기지 못한 압박감이 그런 그의 행동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 당시의 중론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진짜 문제는 이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인기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이름이 알려질 무렵부터 흡연 및 음주,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경찰의 체포를 당하고 석방당하기를 반복해 왔던 것이다. 급기야 알코올 중독까지 겪게 되는 그의 볼썽사나운 행동들은 최근까지도 반복되었는데, 2017년에는 자신을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고 몸싸움을 일으킨 것이 발단이 되어 법원의 명령으로 재활원에까지 입소하게 된다. 이 즈음에는 계속되는 루머와 출연작들의 저조한 흥행 성적 등으로 이미 관객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02.
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 각종 페스티벌과 시상식으로부터였다. 샤이아 라보프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출연까지 한 작품 <허니 보이>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그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 또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그가 2017년 수감된 재활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쓰여진 것이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스크린 위로 옮겨낸 것이 관계자들의 많은 이목을 끌었다. 특히, 아버지로 인한 갈등과 심리적 묘사가 실제와 같이 그려지며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그 아버지 역할을 자신이 직접 맡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 부분이 감동을 이끌어 냈다. 같은 해 11월에는 북미 극장에서 정식 개봉까지 하며 괜찮은 성적을 거둔다.

영화 <허니 보이>는 스턴트맨 겸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성인 오티스를 비추며 시작된다. 배우의 삶 뒤에 감춰져 있는 망가진 그의 삶. 환각과 강박, 억압에 대한 스트레스다. 경찰에 체포된 뒤에 입소하게 된 재활원에서 상담사를 만난 오티스는 현재 트라우마의 촉발 요인을 찾기 위해 상상 노출 치료를 받게 된다. 이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과거의 특정 사건을 마주하는 것. 영화는 이 지점에서 어린 오티스로의 회상을 꺼내 들며 오티스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넷플릭스


03.
소년 오티스 역시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듯 싶다.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가 가장 먼저 보여주는 장면은 어린 오티스의 얼굴이 크림 범벅이 된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니까. 감독이 컷 사인이 떨어지고 스탭 한 명이 뛰어나와 걱정스런 말을 건네지만, 아이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무감각한 표정. 그 즈음, 촬영장 한 쪽에서는 그의 아버지 제임스가 처음 보는 듯한 여성과 농 섞인 이야길 나누고 있다.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젠가 그 역시 연기 비슷한 일을 했었나 보다. 정극은 아니고 로데오 판에서 사람들 웃기는 일 같은 것들. 오티스의 촬영이 끝나자,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외에 위치한 허름한 모텔로 함께 돌아온다.

어쩌면 고리타분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정이야 어쨌든 간에, 아내와 이혼한 남자가 번듯한 직업도 없이 시외의 모텔을 전전하는, 그래도 하나 있는 아들이 예체능에 재능이 있어서 그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며 벌이를 이어가는 이야기. 알량한 자존심 덕인지는 몰라도 양육권만큼은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 지금은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있지 않나. 아이 상태야 어떻든 간에 촬영장에 데려다 주고 오고 하며 이 모든 게 널 위한 거야. 하는 그런 부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단순히 그런 정도의 무게였다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오티스가 분노에 휩싸일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화약고라도 건드린 듯 몸부림치는 오티스의 현재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려운 와중에 아들의 꿈을 지지하며 그 벌이로 삶을 이어나갔다.' 같은 속 좋은 이야기는 결코 할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린 시절에 배운 것이라고는 어떤 수난과 고난도 카메라 앞에서 참아내는 것뿐이었기에 때때로 떠오르는 기억에 몸부림 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잘 어울릴 테니 말이다.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넷플릭스


04.
성적인 모멸을 시작으로 무시와 멸시, 자존감을 짓밟는 언행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 영화 속 표현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자신의 과거를 굳이 꺼내 아들의 싹을 짓밟아버리고, 이혼한 아내에게 갖고 있던 자격지심을 지금 눈 앞에 있다는 이유로 오티스에게 퍼부어버린다. 그 와중에 자신이 아들에게 잘 못해주고 있는 건 또 아는지, 누가 조금이라도 아들에게 잘해주려고 하면 온몸으로 접근을 경고하고 나서기까지 하니, 이쯤 되면 제임스가 오티스의 진짜 아버지가 맞는가 하는 의심도 든다.

부모의 이혼, 시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호텔에서의 생활, 일찍부터 해야했던 경제 활동도 어린 오티스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기댈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라니 이보다 더 숨막히는 경우가 있을까. 막말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는 같은 또래 친구들이라도 있었지. 오티스의 삶은 참고 참고, 또 참기만 하는 삶의 연속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어른이어서 참고, 아직 그를 상대할 힘이 부족해서 참고, 그가 없이는 내일을 살 수가 없어서 참고.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어느 정도 완성된 인격의 모양은 그의 말과 행동에 담기게 된다는 것과 성장하는 인격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진짜 슬픔이라면 슬픔이랄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는 성인 오티스는 지워지지 않는 고통에 울부짖는다.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넷플릭스


05.
그러니까 어린 오티스에게는 계속해서 그런 시간의 연속이다. 자신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아빠라는 작자는 자신의 말을 들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배를 모두 주겠다고 흥정을 하는 식 말이다. 사실 흥정도 아니다.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성질을 부릴 지는 이미 뻔히 다 알고 있으니까. 오죽했으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신을 보며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며 오티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끊거나 도망가지 마시고 들어 주세요. 난 정말 아빠가 정말 아빠답게 행동하기를 평생 기다렸어요. 근데 한 번도 안 그러셨죠. 아빠를 평생 그리워했다고요."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낸 장면. 감정이 과격해 진 오티스는 욕도 하고 만다. 지금 끓어오르는 이 울분이 슬퍼서인지, 억울해서인지 잘 알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제임스는 아들의 뺨을 힘껏 때린다. 아버지의 역할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겠다며, 아버지에게 하는 말버릇을 고쳐 놓겠다며 말이다.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영화 <허니 보이> 스틸컷 ⓒ 넷플릭스


06.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지점의 표현은 아버지 제임스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나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다.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일 수 밖에 없는지를 항변하는 장면인데 그 대사가 다음과 같다.

"제 어머니는 작가이자 시인으로 노래도 쓰셨죠. 카지노에서 일하시면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셨고,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엄마랑 술집에 끝까지 남은 남자였던 거죠. 사랑이 그런거라더군요. 제가 11살이 되었을 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엄마는 여자가 더 좋댔죠. 근데 하필 좋아하는 여자가 더럽게 못된 데다가 술어 절은 알코올중독자였죠. 머리를 떄리다가 손이 부러져도 계속 패는 여자였어요. 손이 부러지든 말든. 다음 날도 또 그러고요. 그 여자 손은 항상 깁스였죠. 기가 막힌 게, 정말 기가 막힌 게, 엄마가 창문 밖으로 뛰어서 고속도로에 떨어지셨어요. 인생이 아주 아수라장이었죠. 술이랑 대마초에 절어서 슬픔을 달래다 군대에 갔죠. 다른 수가 없어서요. (후략)"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은 지금 아들인 오티스를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고. 평생을 따라다니던 술도 4년째 끊은 상태고 매일이 괴로워서 죽을 것 같지만 억지로 버티고 있다고. 물론, 그의 또다른 어린 시절의 슬픔이 지금 어린 오티스의 삶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역시 제대로 된 성장 과정을 겪지 못한 또 하나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게 되는 것인지 또, 아이였던 어른은 무엇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처음에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이 영화 <허니 보이>는 시나리오를 쓴 배우 샤이아 라보프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것과 그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극 중 제임스를 샤이아 라보프 본인이 맡아 연기했다는 것. 어느 정도의 픽션이 가미되었음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더라도, 이 대목에서 제임스를 연기하는 샤이아 라보프의 모습은 극과 현실의 거리를 무력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 아버지의 항변을 스스로 써낸 것이나 다름 없으므로.

07.
실제로 샤이아 라보프는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까지 7년이 넘도록 아버지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난 뒤에야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처음에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쓸 때 샤이아 라보프의 마음이 자신과 아버지가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었는지, 이후에 꼭 그렇게 만들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영화 <허니 보이>가 두 사람의 긍정적인 관계에 하나의 계기가 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보호소에서 심리 치료를 끝낸 성인 오티스가 오래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를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만약, 극과 현실을 이어 붙일 수 있다면, 이 장면은 현실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장면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픽션과 논픽션, 현실과 극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을 샤이아 라보프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까? 극 중 아버지와 현실 속 아들, 두 사람의 경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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