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9/11 키즈> 영화 포스터

▲ <9/11 키즈> 영화 포스터 ⓒ Saloon Media


누구나 2001년 9월 11일의 기억은 지금까지 생생할 것이다.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인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붕괴하고 미국 국방성 펜타곤이 공격받아 일부가 파괴되어 약 3천 명이 사망하고 최소 6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한 그 날의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그리고 9.11 테러를 기점으로 세계사의 흐름은 바뀌었다.

당시 미국의 지도자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 새로소타에 위치한 엠마 E. 부커 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수업을 참관하던 중에 9.11 테러 공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부시 대통령이 앤드류 키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부터 귓속말로 "대통령 각하, 미국이 공격 받았습니다"란 보고를 받은 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면서 지체한 7분 여 시간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때 보여준 부시 대통령의 표정과 행동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9.11 테러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우리나라에선 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대중과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 < 9/11 키즈 >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 영화는 모두가 관심을 가졌던 부시 대통령이 아닌, 그의 앞에 앉아있었던 16명의 아이를 주목한다. 연출을 맡은 엘리자베스 세인트 필립은 16명의 아이는 9.11 테러의 "잊힌 이야기"라며 "(그들이) 9.11 테러 이후 미국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Saloon Media

 
< 9/11 키즈 >는 16명의 아이가 지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빌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되짚어 본다. 흥미롭게도 16명은 모두 아프리카계 또는 라틴계로 미국에선 유색인종에 속한다. 자연스럽게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벌어진 불평등, 인종차별, 경제적, 교육적 격차 등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젠 2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탈리아 존스-핑크니, 타일러 래스키, 다이내스티 브라운, 라데미언 스미스, 라사로 두브로크, 메건 디긴스, 그리고 이들을 가르친 교사였던 케이 대니얼스는 양복을 입은 남자가 부시 대통령한테 귓속말하는 순간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모두들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화씨 9/11>(2004)에서 부시 대통령이 멀뚱멀뚱 있었다고 비판했지만, 교실에 함께 있었던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부시 대통령이 정신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서 9.11 테러의 소싱을 접했으나 이후 6명의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나탈리아 존스-핑크니는 탁아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타일러 래스키는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를 다녀왔다. 다이내스티 브라운은 성공적인 사업가로 성장했으며 라데미언 스미스는 군인이 되었다. 라사로 두브로크는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고 메건 디긴스는 총기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Saloon Media


이들의 삶은 9.11 테러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고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했다. 일상엔 테러의 위협과 전쟁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웠고 인종차별, 총기 난사, 약물남용 등 미국 사회에 내재한 병은 더욱 깊어졌다.

나탈리아 존스-핑크니의 동생이 백인 경찰들에 의해 범죄자로 몰리고 타일러 래스키가 범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며 라데미언 스미스가 군에 입대한 건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총상을 입은 메건 디긴스도 마찬가지다. 쿠바계 미국인인 라사로 두브로크는 "9.11 테러로 미국은 전보다 피해망상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그 사건이 이민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죠."라고 이야기한다.

9.11 테러가 일어난 후 교사 케이 대니얼스는 아이들에게 '사운드 오브 블랙니스'의 노래 < Hold On (Change Is Comin') >을 계속 들려주었다고 한다. 노래의 가사처럼 아이들이 '견디길' 바랐고 사회의 '변화가 올 것'임을 믿길 원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혐오와 분열상으로 얼룩졌으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9/11 키즈> 영화의 한 장면 ⓒ Saloon Media


희망을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참여한 30~40%가 9.11 키즈를 포함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였기 때문이다. 케이 대니얼스 선생님이 심어준 희망을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6명처럼 말이다. 플로리다 주 새로소타에서 활동하는 WRBA 라디오 뉴타운의 진행자 로니 펠프스는 2001년 9월 11일의 남긴 의미가 '단결'임을 강조한다.

"9월 11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무척 슬픈 날이었지만, 그날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있죠. 그날 우리는 하나가 됐어요. 그날 하루만큼은 인종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였어요. 국가적인 비극이 닥칠 때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남은 우리의 인간성이 살아나죠. 그게 미국의 장점이죠. 그거야말로 모두가 원하는 미국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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