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는 일, 그리고 여성들의 엄마 되기를 목도하는 일은 착잡하다. 이렇게 글을 열면 '당신 엄마 맞아?'라는, 서슬 퍼런 댓글의 포화를 예상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독박 육아를 복기하는 일은 싫다. 생애 첫 경험인 임신, 출산, 육아는 그야말로 고군분투의 기록이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성과 육아라는 관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된 날들이었고, 그만큼 불행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환희는커녕, 이 어린 생명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막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출산 후 기간은 한 마디로, 내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각인하는 시간이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출산 후 산모와 아기를 돌봐주는 곳인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한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은 애초에 볼 생각이 없었다. 싫어하는 소재라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인데, 문득 딸애가 '격정 출산 누아르'라며 보자고 했다. '누아르'라..., 잠깐 팔랑귀가 된 나는 모성 찬양 일색이 아닌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첫 회를 보게 되었다.

임신·출산·육아, 엄마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드라마는 주인공 현진(엄지원)이 42세 고령으로 난산을 겪다 잠시 황천길로 떠났다가 구사일생 이승으로 컴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다. 난산을 겪다 사망하는 여성은 생각보다 많으며 저개발국가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출산은 목숨을 걸고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는 극한 행위임에도,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노산이었으나 자연분만을 하려던 내 계획은 태아가 거꾸로 있어 위험하다는 의사의 최종 진단으로 와해되었다. 여러 인턴들이 내진을 수차례 하는데 대체 사전에 양해라도 구했단 말인가? 아파죽겠는데 수치심까지 안겨주다니 돌이켜봐도 분하다. 현진이 병원에서 겪는 엄마 되기 위한 수모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출산 전 막바지는 어떤가. 만삭의 몸으로 일을 하려면 정말 힘들다. 나도 막달까지 일하려니 너무 힘들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다. 이렇게 피곤한 몸을 버티려면 카페인이 절실한데, 이게 보통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현진이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해 카페에서 서성일 때, '어떻게 임산부가 커피를 마시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데, 이는 드라마의 과한 설정이 아니다. 함께 시청하던 딸아이의 "아니 저 사람들 왜 저래? 엄마도 저런 거 당했어?"란 물음에 그저 웃었다.
 
갖은 고난 끝에 드디어 출산. 옛부터 전해오는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진담인지를 알게 된다. 이제부터 '극한 직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통 아름다운 출산으로 상정되곤 하는 아이와의 만남,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낯선 존재와의 동거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나아간다.

출산은 아이와 엄마의 첫 만남이다. 타인과의 첫 만남이 모두 아름다울 수 있나? 아이와도 마찬가지다.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게 당연하지만, 사회는 좋아야만 한다고 압박한다. 엄마는 아이와의 첫 만남에서 혼란스럽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런 감정을 노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도, 그렇게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첫 만남의 소감이 '숭고한 모성'으로 박제되기 때문이다. 출산 후 처음 만나는 아이는 엄마에게 실로 가장 거대한 이방인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는 일은 이 낯선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환대하고 수용하는 엄청난 역사지만, 모두 자연스런 일이라고만 하지 않는가.
 
드라마에서 '저 이방인이 내 자식이라구?'라는 당황스런 첫 만남은 현진이 고령에 난산에 기적적으로 자연 분만을 하며 이루어진다. 출산과 퇴원 후 현진은 육아의 전초전인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조리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 조리원, 20여 년 전 내가 기거했던 그 조리원과는 사뭇 다르다. 출산도 출산 후도 계급의 엄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명백한 계급차를 보여주는 고급 조리원인 세레니티 조리원, 그런데 어째 으스스하다.
 
조리원에 처음 입소했을 때, 나는 그곳의 최고령 산모였다. 어떻게 최고령이란 걸 알겠는가? 묻지도 않았는데 최고령이라 알려주며 바짝 조심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진다고 경고했다. 늙은 산모라서 임신 내내 겪은 한심함과 우려스러움은 출산 후까지 이어졌다. 조리원에서는 밥은 같은 시간에 모여 먹고 이런저런 육아 담소를 나누기는 했지만, 다행히 수유를 드라마처럼 한 곳에 모여 마치 행사처럼 벌이지는 않았다. 이런 설정은 획일적 모성에 대한 은유로써 캐릭터들을 작동시키기 위한 장치일 테지만 기가 막히기도 했다.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한 장면. ⓒ tvN

 
수유는 현진에게 '현타'를 안긴다. 수유는, 보통 수유하면 연상되는 어머니와 아이 상처럼, 그렇게 쉽고 아름다운 일만이 아니다. 수유는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첫 경험이다. 젖이 돌아 유방이 빠지직 해지며 신호를 보내면 젓을 먹이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하겠지만, 처음엔 쉽지 않다. 현진의 아기처럼 젖을 쉬 빨지 않을 수도 있고 그토록 바라는 젖이 안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젖이 적어 고약한 잉어 한약을 먹기도 하고 별 효과도 없는 돼지 뼈 국을 들이켜기도 했다. 참 역해서 괴로웠지만, 젖이 엄마가 아이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협박에 눌려 참아야 했다.
 
첫 수유 순간 나는 현진처럼 당황했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어떻게 젖을 물릴지 난감했다. 어찌어찌 첫 수유를 하던 순간, 생존하겠다고 밭은 호흡을 하며 젖을 빠는 아기가 가여웠고, 수유 자세를 안정되게 잡지 못하고 마치 벌서듯 수유하는 나도 가여워서 울었다. 아기가 내게 왔는데, 나는 이 아이를 맞을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무능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괴로웠다.
 
현진은 낯선 첫 수유에 실패하고 격려나 위로를 받기는커녕, 그것도 못하냐는 눈총을 받는다. 오히려 산후조리원 직원이 아기에게 첫 "좌절을 안겨주었"다고 말하며 야멸차게 아기를 뺏다시피 데려가는 장면에선 허탈하기까지 하다. 사회는 이런 식이다. 엄마가 첫 수유에서 받았을 좌절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엄마는 그저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할 수유기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젖조차도 경쟁의 대상이며 젖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엄마는 낙오자로 낙인찍는다.

제각각의 육아, 제각각의 모성인데...
 
전업맘이며 다둥이 엄마인 은정(박하선)은 육아 SNS 샐럽으로 육아 정보가 전무한 현진의 대척점에 서있다. 그녀는 모르는 게 없는 육아의 신이다. 산전 관리로 수유 양은 넘쳐나고 수유 자세는 완벽하며 출산을 하고도 전과 다름없는 몸매 그리고 넘쳐나는 육아 정보로 그녀는 단박에 '귀한 분'의 자리로 등극한다.
 
이 세레니티 조리원의 계급은 산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으며, 오직 엄마 노릇으로서만 평가된다.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일등칸과 꼬리칸이 존재하는데, 일등칸은 은정처럼 자연출산, 2년 수유, 전업맘, 독박 육아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꼬리칸은 현진처럼 노산, 직장 맘, 길지 않은 수유 기간인 산모들로 채워진다. 조리원 내 계급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형적인 모성 수행을 완벽히 해내는 여자만이 진짜 엄마로 대접받는다는 말이다.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역설적으로 넘버원 육아를 자랑하는 육아맘 샐럽이 막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들이 벌이는 육아 경쟁은 상상보다 치열하다. 모성마저 양극화되는 계급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데, 이는 얼마 전 종용한 tnN 드라마 <청춘 기록>의 두 엄마처럼, '헬리콥터맘' vs. '방목맘'으로 계보를 잇고 있다. 사람인 아이는 사라지고 기능인 기술만 남는 육아는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 사회에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무능한 엄마 현진은 산후조리원에서 모성을 증빙 받고 자격증을 받게 될까? 또한 이 자격증의 승인을 계속 허락해도 되는 것일까?

육아에 무능한 현진과 대비되는 완벽한 엄마 은정은 그저 육아가 천성인 사람인 걸까? 그런 사람이 정말 실재할까? 은정이 "엄마들이 집에서 노는 줄 알지"라며 성을 내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그녀 또한 사회가 혐오하는 '맘충'의 지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내비친다. 맞다. 엄마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노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사회에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은정 역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워내기 위해 갖은 퍼포먼스(숭고한 태교, 뻑적지근한 베이비샤워, 고가의 정교한 육아 등)를 행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SNS에 올린다. 은정의 육아 일기에 감동하는 팔로어들이 좋아요를 누르면, 그제야 그녀는 쓸 만한 엄마로 승인되는 것이다. 무능한 엄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이나 신사임당의 현신이라고 찬양하는 일이나 기실, 모성에 관한 혐오와 숭배는 결국 한 뿌리에 있음을 간과한 채 말이다.
 
마침내 계급이 공고한 세레니티 조리원에 뜻밖의 산모가 등장하고, 이로써 이 지형은 대규모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조리원에 들어서자마자 수유는 아이한테 좋을 뿐 "엄마한테 뭐가 좋은데요?"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젊은 엄마 이루다(최리)는, 계급의 엄중함도 모성의 숭고함도 왕따의 살벌함도 개의치 않을 전망이다.

과연 이루다가 던질 모성에 관한 도전은 어떤 질문을 날릴 것인가. 결국 드라마가 '모성은 헌신이야'로 납작하게 '모성 이상화의 악순환'을 낳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본방을 사수해볼까 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산후조리원 모성 모성신화 모성이데올로기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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