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 공식 포스터.

영화 <내가 죽던 날> 공식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건이 존재하고 범인을 쫓는 형사가 등장하는 영화가 이토록 서정적일 수 있을까.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한다지만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다시 정의해보면 일종의 치유 성장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한 고교생의 실종사건이 영화의 핵심축이다. 아버지와 친오빠의 범죄 때문에 외딴 섬으로 옮겨져 혼자 지내야 했던 세진(노정의)은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사라진다. 예상치도 못했던 남편의 외도로 이혼 소송을 하게 된 형사 현수(김혜수)는 흐트러졌다 여기는 삶을 다잡고자 이 사건에 의욕을 보인다. 

영화는 이런 현수의 의욕과 의지가 번번이 외부에 의해 빛바래고 좌절되는 과정을 지난하게 제시한다. 임무를 맡긴 상사는 적당히 마무리하라고 압력을 넣고, 섬마을 주민들은 현수를 의뭉스럽게 대하며 속 시원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장르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선택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런 흐름에 순천댁(이정은)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사건에 대한 현수가 원하는 만큼의 정보를 주거나 솔직한 모습을 보이진 않지만 영화에선 이 순천댁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일말의 힌트를 꾸준히 제시하며 관객의 시선을 끈다.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미제 사건, 목격자와 각종 단서들이 서로 충돌하며 사건의 진실을 쫓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일반적인 장르 영화라면 극적 반전을 위해 각 캐릭터가 서로 얽히고설키거나 갈등 요소와 긴박감을 부각시키겠지만 <내가 죽던 날>은 현수의 독백과 주변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인물의 심리 변화와 내면 갈등에 집중한다.

자칫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빠른 호흡과 블록버스터 요소에 익숙해진 최근 관객 성향에서 이 영화는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중후반까지 관객을 붙들어 놓지 못한다면 꽤 묵직하고 건조한 이 영화의 분위기가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오히려 <내가 죽던 날>은 정면 승부를 택한다. 미스터리 요소를 십분 활용하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는 식이다. 그러니까 최근 미스터리 장르에서 흔히 관객을 위한 떡밥을 알아서 회수하는 '과잉 친절'이 이 영화엔 없다. 세진이 대체 왜 떠났는지, 그 원인이 무엇일지 집중하게 해놓고 현수와 세진의 주변 인물을 교차로 제시하며 이 사건의 본질을 추론하도록 한다. 

이 영화의 재밌는 지점은 인물의 대사나 장면의 나열로 본질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여러 감각을 이용해 감정을 건드리는 데에 있다. 종종 현수의 시점과 동일화되는 카메라 워크를 잘 쫓다 보면 세진 실종사건 관련 힌트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특히 어떤 사연으로 말을 못하게 된 순천댁이 등장인물과 소통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종종 필담을 하는 순천댁을 두고 영화는 후반부에 자막으로, 세진의 목소리로 그의 의사를 읊게 하며 모종의 연대감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죽던 날>의 본질은 사건의 진실 파헤치기나 진범 검거가 아닌 세 사람, 나아가 이들을 이해하고 품으려 했던 사람들의 특별한 연대감에 있었음을 분명히 선언하는 셈이다.

감정적 포효, 지치고 또다시 질주하는 모습이 영화에 등장함에도 특유의 건조한 처리 방식으로 일부 관객에겐 이 영화가 심심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본래 빛이란 어둠 속에 있을 때 더욱 밝은 법이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어두운 이 영화의 정서에서 유독 주요 캐릭터의 연대가 밝게 빛난다. 배우들이 입을 모아 '위로의 영화'라며 평한 이유가 있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모두 이 영화 출연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영화를 촬영하며 일종의 치유적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감독과 스태프, 출연 배우의 좋은 에너지가 물씬 담긴 영화임엔 분명하다.

한줄평: 장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진실했다
평점: ★★★★(4/5)

 
영화 <내가 죽던 날> 관련 정보

각본 및 연출: 박지완
출연: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제공: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 오스카10스튜디오, 스토리퐁
크랭크인: 2019년 8월 29일
크랭크업: 2019년 11월 5일
러닝타임: 116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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