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이 헐었다고 엄마한테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밥상에 김치찌개가 올라왔다.
한 숟가락씩 뜰 때마다 자꾸 트위스트를 추게 된다."

 
10여 년 전, 개그맨 박지선이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했던 글이다. 이 글을 읽고 한참을 웃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 상황에 '트위스트'라는 단어를 연결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는 이처럼 보편적인 생활의 이야기 속에서 유머를 끌어내는 데에 능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 이 에피소드를 자주 차용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그를 내심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박지선과 어머니의 부고를 접했을 때,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마음이 아팠다.
 
박지선을 보면서, 그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에 적혀 있던 '멋쟁이 희극인'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 KBS 공채 22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후, 박지선은 그는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웃음을 빚어내곤 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유희열,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즐거이 소통했고, < 하이킥 : 짧은 다리의 역습 > 등 시트콤에서 보여준 연기력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재능있는 희극인이었다.
 
박지선은 여성 연예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개그에 자주 활용되긴 했지만, 자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웃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인상을 남겼다.

근까지도 < 부부의 세계 >, < 이태원 클라쓰 > 등 많은 드라마의 제작발표회, 아이돌 가수의 쇼케이스 등에서 매끄러운 진행 솜씨를 선보였다. 박지선씨가 대중들에게 유쾌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기에, 대중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더욱 크다. 나는 희극인의 웃음 뒤에 어떤 아픔이 있었을까 함부로 말을 얹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언론 뿐 아니라 대중들까지, 모두가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 스스로 보도 윤리를 포기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마포구 자택에서 박지선씨의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경찰과 유족은 유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일부 언론은 그 의사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앞에 '단독'을 붙인 채, 취재 결과 박지선씨 모친의 유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상세한 사인에 대한 내용 역시 적혀 있었다.
 
<파이낸셜 뉴스>는 유서의 내용이 유족들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제목에서는 < OO OOOO(특정 질환)가 앗아간 '웃음 천사'>라는 제목을 썼다. 언론사 측에서 자의적으로 사인을 암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유서와 관련된 세부적 사항을 보도하는 것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식 언론은 아니지만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역시 '화장 못 하는 박지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주목도를 높이고자 했다.
 
박지선씨의 부고를 접한 날, 식사를 하다가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그의 사인을 추측하는 대화를 들었다. 물론 대중이 타인의 죽음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것을 일일이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균형을 올곧게 맞춰 주어야 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일부 기성 언론이 취하고 있는 방식은 균형과도, 예의와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스스로 보도 윤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수많은 스타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단독'과 같은 단어가 난무하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던 '멋쟁이 희극인'을 떠나 보내는 방식이 아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지선 희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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