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희극인 박지선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박지선은 생전에 독특한 커리어와 개성으로 주목받았던 대표적인 여성 희극인이었다. 방송에서는 여성 희극인 특유의 망가지는 외모 개그로 웃음을 줬다면, 일상에서는 명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수재이자, 학창시절 손꼽히는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그런 박지선에게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고 희생하는 개그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반전 매력'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박지선은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래 신인 때부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실감나는 아줌마 연기를 펼치며 "참~ 쉽죠잉"이라는 자신의 대표 유행어를 만들어냈고, 첫해부터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여자 신인상을 당당히 수상했다. 2008년에는 여자 우수상, 2010년 여자 최우수상 등을 받으며 불과 몇년만에 <개그콘서트>를 대표하는 여성 희극인으로 자리잡았다.

박지선은 코미디 이외의 분야에서도 다재다능한 면모를 드러냈다. 음악토크쇼 <유희열의 스케치북>,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가족토크예능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 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등 다양한 장르의 방송에게 게스트와 고정 패널 등으로 참여하며 맹활약했다.

2012년에는 동료 희극인 박영진과 함께 진행한 SBS 러브FM<박영진-박지선의 명랑특급>에서 진행능력을 인정받아 라디오 DJ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여러 방송 쇼케이스나 영화 홍보 무대에서 단골 섭외 대상으로 분류되며 MC를 맡기도 했다. 현란한 달변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는 안정된 진행능력, 밝고 명랑하면서도 절대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부드러운 입담이 돋보였다.

 
고 박지선, 하늘에서도 코미디언으로 고 박지선 코미디언의 빈소가 2일 오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됐다.

▲ 고 박지선, 하늘에서도 코미디언으로 고 박지선의 빈소가 2일 오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착한 웃음' 추구했던 희극인

무엇보다 박지선이라는 희극인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역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도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착한 웃음'을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희극인들에게 '독설'과 '외모'라는 무기는 숙명적인 양날의 검과도 같다. 많은 희극인이 직업상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독한 혀로 남의 약점을 들추며 공격하던지, 아니면 자신의 못난 외모를 스스로 비하하며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이로 인하여 대중에게 오히려 비호감이라고 역공당하거나, 두고두고 꼬리표가 따라붙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외모 비하나 거친 어록으로 처음 주목받았던 희극인 본인들도 막상 현실에서는 회의감을 느꼈던 순간을 고백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나미, 박나래, 신봉선 등 수많은 <개콘>출신 여성 스타 희극인들이 그러했듯이, 박지선이 출연했던 개그 코너들도 대부분 그녀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웃음포인트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동료 희극인들조차 공개석상에서 그녀의 외모를 두고 독한 농담을 일삼은 사례는 숱하게 많았다.

희극인이기 이전에 엄연히 한 사람이자 여성으로서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박지선은 항상 의연하게 대처했고 흔들리거나 상처받은 모습을 드러내보인 일이 없었다. 박지선은 선천적으로 피부가 예민해 화장을 잘 하지 못하여 자신을 꾸미는데 제약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다른 여성 연예인들처럼 성형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선은 항상 자신의 직업과 살아온 인생에 언급할 때마다 당당한 '자존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학창 시절부터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다는 이력이 주는 근거있는 자기애였다.

지난 2008년에 한 누리꾼이 유명 포털사이트의 질문 코너에 박지선의 성별을 묻는 모욕적인 질문을 남겨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이에 박지선의 부친이 직접 아이디와 실명을 공개하여 학창시절 박지선이 어떤 인생을 거쳐왔는지 고백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친은 박지선이 학창시절 반장을 도맡던 우등생의 면모,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놀때도 최선을 다하던 모습, 유명 연예인이 된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던 일화 등을 공개하며 "내가 아는 박지선은 속이 깊고 겸손하고 남을 많이 배려할줄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겸손과 예의, 배려를 겸비한 딸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악플러는 조용히 꼬리를 감췄지만 박지선 부친의 고백은 온라인 사이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노골적인 인신공격성 악플을 가장 성숙하게 대처한 사례로도 박수를 받았다.

시청자들에게 박지선 본인의 가치관과 프로의식을 직접 보여준 일화로는 2012년 KBS <해피투게더>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박지선은 동료 희극인들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또다시 그녀의 외모가 토크의 화제로 등장했다. MC가 "자꾸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지선은 "개그우먼이 되기 전에는 솔직히 못생긴지 몰랐다. TV에 나오니까 못생겼다고 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밖에 나가면 실물이 예쁘다는 얘기도 듣는다"며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데뷔 초기에는 선배들의 외모 농담에 상처를 받아 울기도 했다는 일화를 회상하면서도 "그때는 신인 때라서 그랬던 거 같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에피소드도 개그 코너를 짤 때 도움이 된다"며 담담하게 웃음으로 받아들였다. 함께 출연한 희극인 동료들은 "박지선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이 자존감이 높기 때문"이라고 증언하며 "박지선은 정말로 본인이 단 한번도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모를 이용한) 개그 아이디어를 위해서 더 고민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외모 때문에 웃음도 상처도 많았던 박지선이지만, 정작 본인은 방송에서 타인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비하는 식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려고는 하지 않았다. 항상 남보다 더 튀어야만 살 수 있는 무한 경쟁 구도와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방송세계에서, 자신은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자극하지 않고 웃음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박지선이라는 희극인이 오랜 시간 큰 구설수 한번 없이 꾸준히 대중의 호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36세의 젊은 나이에 박지선은 세상을 떠났다. 박지선은 짧았던 인생 내내 희극인이라는 자신의 꿈을 위하여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당당한 삶의 모습을 보여줬다. 많은 동료와 팬들에게 그녀는 언제까지나 누구보다도 멋진 여성, 좋은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