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가 정상에 올랐다. 다저스는 28일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중립구장)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에 3대1 승리하며 시리즈를 4승 2패로 마무리하고 정상에 올랐다.

구단 역사상 7번째 우승이자 1988년 우승 이후 무려 32년만이다. 같은 연고의 프로농구팀인 NBA LA 레이커스도 올해 정상에 오르며 LA는 동반 우승팀을 배출하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다저스와 레이커스가 같은 해 정상에 오른 것도 역시 88년에 이어 역대 2번째다.

다저스는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여러모로 특별한 인연으로 기억되는 구단이다. 바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박찬호와 류현진, 서재응, 최희섭 등 무려 4명의 한국인 선수가 거쳐 간 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찬호는 다저스를 통해 데뷔하며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동양인 역대 최다승(124승)투수로 성장했고, 류현진은 사이영상 후보(2019년)에 올라 득표까지 받았을 만큼 가장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축구에서 박지성이 뛰던 시절의 맨유, 손흥민의 토트넘처럼 다저스도 박찬호와 류현진이 뛰던 시절에는 한국팬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해외구단으로 꼽혔다.

하지만 한국인 선수들은 정작 다저스에서 우승과는 영 인연이 없었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박찬호와 류현진이 한창 최전성기를 호령하던 시절에도 다저스는 끝내 우승에 이르지는 못했다. 정작 올해는 또다른 한국인 선수 최지만이 소속된 템파베이의 우승꿈을 좌절시키며 정상에 올랐다. 국내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다저스의 우승을 바라보면서 '왜 하필 지금에서야'라는 미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찬호는 1994년 다저스에 첫 입단하여 2001년까지 다저스에서 선수생활 1기를 보냈다. 97년부터 2001년까지는 5년연속 13승 이상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하필 다저스로서는 침체기에 가까웠다. 다저스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7년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이 기간은 하필 박찬호의 최전성기와 그대로 겹친다.

물론 포스트시즌 무대만 밟지 못했을 뿐, 90년대에도 꾸준히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지구우승 경쟁을 펼쳤을 정도로 당시 다저스도 절대 약팀은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팜 시스템을 바탕으로 박찬호를 비롯하여 에릭 캐로스-마이크 피아자-라울 몬데시-라몬 마르티네즈-이스마엘 발데스-데런 드라이포트-에릭 가니에 등 수준급 선수들을 발굴-육성하는데 엄청난 성과를 거둔 시기이기도 했다.

다저스가 1992년부터 5년 연속 내셔널리그 신인왕(캐로스-피아자-몬데시-노모 히데오-토드 홀랜스워스)을 배출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박찬호와 노모 같은 아시아 선수들을 비롯하여 흑인-히스패닉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여 메이저리그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데는 다저스의 역할이 컸다. 이 시기의 다저스는 그야말로 다국적 팀의 대명사로 꼽혔다.

하지만 당시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에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같은 우승전력의 강팀들이 동시대에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는게 불운이었다. 내셔널리그 팀들의 전력이 비교적 평준화된 시절이라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었다. 박찬호가 다저스 시절 포스트시즌 무대를 경험한 것은 루키 시절이었던 1996년 애틀란타와의 디비전 시리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당시 와일드카드로 PS무대에 올랐던 다저스가 완패를 당하며 박찬호는 당시 로스터에 등록된 다저스 투수 중 유일하게 한번도 등판하지 못했다.

박찬호는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샌디에이고에서 2006년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불펜투수로 변신한 이후에는 2008년 다저스로 복귀했고, 2009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각각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라 큰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박찬호는 다저스 시절을 포함하여 커리어 내내 소속팀의 성적운이 유독 없는 편이었다. 텍사스에서는 본인의 부진도 있었지만 팀성적도 포스트시즌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찬호가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던 2006년에는 박찬호의 소속팀인 샌디에이고를 꺾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2008년에는 다저스를 이긴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각각 월드시리즈 정상까지 올랐다. 박찬호는 2009년 전년도 우승팀인 필라델피아에 입단하며 생애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고, 본인도 4경기 3.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정작 팀은 뉴욕 양키스에 패하여 우승이 좌절됐다.

박찬호는 이듬해에는 양키스에 입단하지만 이번엔 본인이 성적부진으로 반년만에 방출됐고, 리그 최하위권팀이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아시아 투수 최다승(124승)을 달성한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무리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를 거쳐 KBO리그 고향팀인 한화 이글스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한·미·일 마지막 소속팀의 성적이 내리 하위권이어서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었다. 결국 박찬호는 프로 경력 내내 국가대표팀에서 거둔 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외에는 우승 경력을 남기지 못했다.

박찬호의 뒤를 이어 '무관의 제왕' 계보를 잇는 선수가 류현진이다. KBO리그 한화 이글스(2006~2012)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LA 다저스(2013-2019), 올해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거치며 데뷔 이후 15시즌째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한화 시절에는 데뷔 2년차 이후로는 소속팀이 늘 최하위권을 전전하는 약팀이었고, 다저스에서는 소속팀이 꾸준히 포스트시즌 무대에 진출했으나 단기전에서 번번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미끄러졌다. 2006년 한화에서 한국시리즈(삼성), 2017년과 2018년에서는 다저스에서 월드시리즈(휴스턴,보스턴)에 진출했으나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류현진은 올시즌을 앞두고 FA자격을 얻어 다저스를 떠나 토론토로 이적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1선발의 중책을 맡게된 류현진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단축시즌과 타자친화적인 아메리칸리그의 부담을 이겨내고 12경기에서 5승 2패로 평균자책점 2.69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제몫을 다했다. 하지만 소속팀은 포스트시즌에서 템파베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1라운드에서 완패했다.

공교롭게도 류현진이 떠나자마자 불과 다음해에 친정팀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템파베이를 꺾고 32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국내 야구팬들로서는 더욱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류현진이 FA때 다저스에 남았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류현진이 다저스에 잔류했다면 우승했을 것이라는 기대도 결과론일 뿐이다. 오히려 다저스는 류현진과 마에다 켄타, 리치 힐 등 베테랑 선수들을 잡지 않은 대신 그 비용으로 특급 야수인 무키 베츠를 영입할 수 있었고, 베츠는 올해 다저스의 우승에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해냈다. 선발진에서는 더스틴 메이와 토니 곤솔린 등 젊은 투수들이 류현진이 빠진 정규시즌 로테이션을 잘 메웠고, 포스트시즌에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오랜 가을 징크스를 극복하고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반면 류현진은 정규시즌에는 잘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토론토에서의 첫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류현진은 국가대표팀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수확했지만, 프로팀에서는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우승 경력이 없다. 최동원-선동열 등 한국야구 역대 간판 에이스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 류현진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까지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은 유일한 인물은 김병현(애리조나, 보스턴)뿐이다. 류현진과 최지만을 비롯한 차세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앞으로 선배들이 못다한 우승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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