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겨우 스물이었다. 갓 낳은 딸을 두고 남자는 감옥에 갔다. 긴 징역형이었다고 했다.

여자는 난생 처음 만난 의사 앞에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과거를 털어놓는다. 직업이 없었고 곧 겨울이라 아기가 걱정됐다고, 그래서 구걸을 했다고 했다. 자살도 생각해봤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고, 그러다 여자라면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했다. 몸을 팔았다는 것이다.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여자 곁에는 오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남자가 있다. 그녀가 말하는 내내 우두커니 앉아있던 남자는 의사가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빠져 나온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자가 여자를 보고 묻는다. 난 왜 데리고 간 거지. 여자가 답한다. 용기가 필요했어. 남자가 다시 묻는다. 일이 잘 안 풀렸으면 의사를 죽였겠지. 여자는 아니라고 답하지만 남자는 멈출 생각이 없다. 조각상 같은 걸로 내려쳤을 거야, 강도가 그런 것처럼. 여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남자가 말한다. 나야 뭐 괜찮다고, 나 때문에 고생하고 산 것 그렇게라도 갚겠어. 여자는 가만히 남자의 손을 잡는다.

 
글로리아를 위하여 포스터

▲ 글로리아를 위하여 포스터 ⓒ 찬란

 

한 장면을 위해 모든 것을 들였다

한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영화 전체가 오직 한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이런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그 장면이 주는 감동일뿐 다른 무엇이 아니다. 앞의 모든 설명들은 이 장면을 위해 배치된 설정이고, 뒤의 모든 사건들도 이 장면이 주는 감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글로리아를 위하여>가 바로 그런 영화다. 제 사위를 감옥에 보낼지 모르는 의사 앞에서 제 삶의 모든 치부를 까뒤집고 관용을 구하는 장모의 모습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끔 한다. 그녀가 의사를 찾는 자리에 왜 옛 남자를 대동했는지, 그리고 그 남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는지는 영화를 더욱 깊게 만든다.

영화의 다른 장면들은 모두 이 장면 하나를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이야기는 글로리아의 탄생으로부터 출발한다. 마틸다(아나이스 드무스티에 분)가 남편 니콜라스(로벵송 스테브넹 분)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온 집안이 그녀의 탄생을 축하한다.

 
글로리아를 위하여 갓 태어난 글로리아와 문제 많은 가족들.

▲ 글로리아를 위하여 갓 태어난 글로리아와 문제 많은 가족들. ⓒ 찬란

 

문제투성이 가족들, 희망은 어디에

행복은 여기서 그친다. 가족의 현실은 단 몇 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다. 마틸다의 동생 오로라(로라 네이마크 분)와 애인 브루노(그레고이레 레프린스 린구에트 분)가 병원을 찾으면서부터다. 브루노는 니콜라스를 병실에서 불러내 가져온 코카인을 권한다. 니콜라스는 아무렇지 않게 코카인을 흡입한다.

마약뿐 아니다. 마틸다와 오로라는 씨다른 자매로 서로를 몹시도 싫어한다. 아버지 리차드(장 피에르 다루생 분)가 늘 언니만 예뻐했기 때문이라는데, 언니 마틸다는 엄마 실비(아리안 아스카리드 분)가 리차드와 만나기 전에 낳은 딸이다.

마틸다와 오로라의 상황도 가관이다. 마틸다의 남편 니콜라스는 우버기사로 일하는데 넉넉지 않은 형편에 강도까지 당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상황이 나은 건 동생 쪽이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오로라와 브루노의 일이라곤 운영하는 중고매장에서 상황이 급한 이들을 등치는 정도다. 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사연이야 언급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는 가족의 삶을 찬찬히 보여준다. 버스기사 리차드는 봉급이 넉넉잖은 월급쟁이고 실비는 여객선 객실 청소부로 쉴틈 없이 일한다. 종일 바쁘게 일하고도 제 집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이들 주변엔 그나마 할 일조차 없는 이들이 수두룩빽빽이다.

 
글로리아를 위하여 중고매장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들이 가져오는 물건을 값싸게 사들이는 오로라(로라 네이마크 분)와 브루노(그레고이레 레프린스 린구에트 분).

▲ 글로리아를 위하여 중고매장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들이 가져오는 물건을 값싸게 사들이는 오로라(로라 네이마크 분)와 브루노(그레고이레 레프린스 린구에트 분). ⓒ 찬란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기만 하는데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낭만 따윈 단 한 톨도 없다. 카메라가 닿는 곳마다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삭막한 도시 후미진 거리엔 피부색 다른 이민자들로 가득하다. 실비도 폴란드계 이민자처럼 보일뿐더러, 일터엔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한가득이다. 마틸다는 자신이 일하는 옷가게 사장이 자신을 정직원으로 전환해주는 대신 루마니아나 폴란드 사람을 다시 뽑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오로라가 매일 같이 등치는 중고매장 손님들은 서아시아 출신이 태반이다.

출소한 다니엘(제라드 메이란 분)이 묵는 후미진 숙소에선 이민자들이 가득 모여 시간을 죽이고 있다. 다니엘이 주변을 기웃거리니 대뜸 "왜 프랑스 사람이 이런 곳에 오느냐"는 물음부터 돌아온다.

일자리 없는 사람들은 밤마다 강도짓을 일삼는다. 돈을 뺏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팔을 부러뜨려 버린다. 어느 하나 팔 병신이 되면 저들 일자리가 하나 늘기라도 할 것처럼.

세상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살기가 어렵다. 나이든 리차드, 실비, 다니엘보다 젊은 오로라, 브루노, 마틸다가 더 못되게 그려지는 건 이 세계의 희망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출소한 다니엘에게 제가 가게를 하는 거리가 "예전보다 위험하고 안 좋다"고 말하던 부르노의 이야기는 단지 거리에 대한 의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글로리아를 위하여 딸인 마틸다(아나이스 드무스티에 분)가 어린 시절 감옥에 갔다 막 출소한 다니엘(제라드 메이란 분)이 손녀 글로리아를 안고 산책하는 장면.

▲ 글로리아를 위하여 딸인 마틸다(아나이스 드무스티에 분)가 어린 시절 감옥에 갔다 막 출소한 다니엘(제라드 메이란 분)이 손녀 글로리아를 안고 산책하는 장면. ⓒ 찬란

 
당신은 무얼 위해 사는가

사람을 괴롭히는 건 결국 사람이다. 강도는 팔을 부러뜨려서, 의사는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일을 못하게 한다. 팔을 부러뜨리지 말라고, 이대로는 죽는 수밖에 없으니 도장 한 번 찍어달라고 아무리 애원하고 빌어봐야 소용이 없다. 다른 이의 등을 쳐서 제 배를 채우고, 원칙을 지킨다며 절망으로 내모는 게 세상이다. 누구도 누구에게 친절하지 않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 없는 사람은 눈앞의 절망에 피식 웃는 괴물이 된다. 가게를 찾은 서아시아 여인의 니캅(얼굴을 가리는 서아시아 여성 의상)을 벗기던 오로라와 제 아내 몰래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는 브루노가 그렇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목적이었을 한 장면을 통해서 영화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듯도 하다. 제 모든 것을 내보이고 관용을 구하는 실비와 그녀가 자신을 데려온 이유를 알고서 가만히 손을 잡던 다니엘로부터 영화 내내 실종돼 있던 그러나 지켜야만 하는 가치를 확인한다. 이들이 지키고자 했고 마침내 지킨 것은 책임이며 품격이고 존엄이다. 인간이 모든 절망을 가로질러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며 희망이다.

영화의 제목 <글로리아를 위하여>는 곧 영화의 메시지와 맞닿는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사람이지만 사람을 용서하고 응원하며 지탱하는 것도 사람임을 이 영화가 처절하게 웅변한다. 글로리아를 위해 니콜라스가, 니콜라스를 위해 실비가, 실비를 위해 다니엘이 그랬듯 저마다 저를 지탱하는 단 한 명의 인간만 있다면 제법 괜찮게 살아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를 위하여 찬란 로베르 게디기앙 아리안 아스카리드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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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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