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종이꽃>의 배우 김혜성 인터뷰 사진

ⓒ (주)로드픽쳐스

 
"처음 <제니, 주노> 촬영장에서 첫 촬영했던 기억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그 당시에 촬영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감독님한테 엄청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러다가 첫 촬영에 카메라 앞에 서는데 떨렸던 마음이 순식간에 진정되고 집중되더라.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때가 계속 생각이 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제일 행복하고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 게 원동력인 것 같다."

2005년 영화 <제니, 주노>로 데뷔한 김혜성은 어느덧 16년 차 배우가 됐다. 10대였던 소년은 이제 30대로 접어 들었다. 그럼에도 15년 전 그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그는 배우라는 직업에 애정이 너무 많은 듯했다. "연기에 대한 애정을 조금은 줄이고 싶다"는 배우 김혜성을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처에서 만났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종이꽃>은 평생 종이꽃을 접으며 죽은 이들의 넋을 기려온 장의사 성길(안성기 분)과 그 아들 지혁(김혜성 분) 부자를 통해 삶과 죽음, 희망과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김혜성은 극 중에서 불의의 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들 지혁 역을 맡았다. 그는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읽었다. 그리고 제가 책(대본)을 받았을 때 이미 안성기 선배님이 출연하시는 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입을 열었다. 

영화에서 의대생이었지만 여행작가를 꿈꿨던 지혁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한다. 그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도 어긋나고 간병인에게도 쌀쌀맞게 대하는 등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인물. 김혜성은 몰입을 위해 카메라 밖에서도 최대한 지혁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다고 털어놨다.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없으니까)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얼굴로 감정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리부터 (감정을) 잡고 갔다. 현장에서도 안성기 선생님이랑 유진 누나에게 인사하고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좋은 배우는 '컷' 하면 원래대로 돌아와야 한다는데, 아마추어같겠지만 저는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 전부터 계속 감정선을 가지고 가려고 했다."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지혁의 일상은 앞집에 은숙(유진 분) 모녀가 이사오면서 서서히 변화를 맞는다. 지혁은 해맑은 '사고뭉치' 간병인 은숙과 티격태격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김혜성은 <종이꽃> 대부분의 장면이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됐다고 귀띔했다. 비용 절감을 고려하는 보통의 영화 현장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혜성은 고훈 감독의 배려 덕분에 감정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었다며 "감독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찍겠다고 하셨다. 너무 고마웠다. 감정 신이 뒤죽박죽 되지 않고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감정 그대로 표현하면 됐다"고 인사를 전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혁이 은숙 몰래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장면은 영화상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촬영했다고. 김혜성은 "살면서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극한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얼추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며 자신도 배우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스스로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많이 주는 스타일이었다. 남들은 잘했다고 하는데 괜히 내가 잘해서 잘했다고 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로해주려고 그렇게 하는 소리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모니터를 했을 때, 연기하는 순간에도 그런 감정이 들고 모든 것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결과물을 봐도 그렇고. 그게 좋지는 않더라.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한다. 저한테 도움보단 '마이너스'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 1년 동안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녔다. 몸이 아팠던 것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아팠던 것 같다.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 멀쩡하다더라. 그런데 몸은 계속 아프고.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 하니까 몸도 아프구나 싶었다. 이제 스스로에겐 당근을 많이 줘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영화 <종이꽃>의 배우 김혜성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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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 주변의 칭찬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그에게선 그만큼 잘해내고 싶다는 강한 연기 욕심이 느껴졌다. 이어 그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건 행운이다. 그런데 좋아만 해서는 안 되지 않나. 사람이 먹고 살려고 하는 직업이니까"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점점 한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연기하기가 더 힘든 것 같다. 어렸을 때보다 더 생각하게 되고 주변 상황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내 평가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만 했다던 그는 이제 조금 놓는 법도 배우게 됐다. 배우로 일하고 있지만 연기에 애정을 줄이고 싶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예전에는 (인생에) 연기에만 100퍼센트 애정을 뒀다면, 지금은 50퍼센트만 되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마음의 짐도 덜고 부담감 없이 연기하고 싶다. 그러면 표현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스스로를 의심하고 가혹하게 굴었는데 그게(바뀌는게) 오히려 연기할 때도 도움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혜성은 요즘 반려견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고 있다. 하루에 산책을 3번이나 나가야 하는 고집 센 반려견 '혜동이' 덕분에 그 역시 부지런한 매일을 보낸다. 

"요즘은 가만히 산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게 제일 좋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이 친구(반려견)와 함께 했다. 자전거 탈 때도 가방을 매서 이 친구를 데려가고, 산에 갈 때도 이 친구를 데려간다. 사람보다 개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내게는 위로가 된다."

아픔을 겪고 난 뒤 세상으로 한발짝 나아가게 된 <종이꽃>의 지혁은 김혜성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작품이다. 김혜성은 자신도 지혁을 만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지혁처럼 한발짝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지혁 캐릭터가 아픔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것처럼,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몸이 좀 아팠고 1년 동안 많은 감정을 느꼈다. 좀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됐고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 작품에 임하면서 지혁처럼 좀 더 밖으로 한발짝 내딛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혁이 느낀 감정 그대로. 김혜성이란 사람도 그래야지."
종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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