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우승을 열망하는 울산 홈팬들이 6973명이나 찾아온 일요일 오후였지만 그들의 탄식은 땅이 꺼질 정도로 깊었다. 비기기만 해도 오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라이벌 팀에게 당하고 말았다. 마침 이 게임이 100번째 현대가(家) 더비 매치였고 이번 시즌 K리그 1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최근에 가장 높은 자리에 여러 차례 올라본 전북이 역시 빅 게임에 강한 저력을 입증한 셈이다.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전북 현대가 25일 오후 4시 30분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1 파이널 라운드 A그룹 울산 현대와의 26라운드 어웨이 게임에서 후반전 교체 선수 바로우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기는 바람에 승점 3점 차이로 선두 자리에 올라서서 11월 1일 벌어지는 마지막 라운드 대구 FC와의 홈 게임에서 비기기만 해도 4년 연속 우승 위업을 이루게 됐다.

조현우의 빛바랜 슈퍼 세이브

홈팀 울산으로서는 지난 18일에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 더비가 자꾸 눈에 밟힐 수밖에 없었다. 핵심 수비수 불투이스와 키다리 골잡이 비욘존슨이 퇴장당하는 바람에 0-4로 진 여파가 바로 이 게임까지 밀려온 것이다. 울산에서 체격 조건이 가장 좋은 두 선수가 없으니 골문 앞 뜬 공 수비의 부담이 고스란히 나머지 선수들에게 차례로 닥쳤다.

32분에 그 상징적인 장면이 울산 현대 골문 앞에서 벌어졌다. 왼쪽 측면에서 전북 풀백 최철순이 감아올린 크로스를 키 큰 골잡이 구스타보가 이마로 떨어뜨리는 순간 바로 앞을 막던 울산 날개공격수 김인성의 오른팔에 걸렸다. 의도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점프 동작 중 자연스러운 팔놀림이 아니라는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의 지적으로 박병진 주심은 온 필드 뷰 이후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전북에게 대역전 우승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울산에게는 조현우라는 '빛'이 골문을 지켰다. 11미터 지점에서 골키퍼를 속이며 슬쩍 가운데 방향으로 찬 구스타보의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향해 조현우가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왼발로 기막히게 쳐낸 것이다. 마치 기술 좋은 골잡이가 중심을 낮추며 멋진 발리슛을 날리듯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 동작이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조현우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린 울산 현대는 전반전 종료 직전에 선취골 기회를 잡았다. 골잡이 주니오의 재치있는 방향 전환 패스를 받은 이청용이 마크맨도 없이 오른발 인사이드 슛을 날렸지만 공은 어이없게도 전북 골문을 외면하고 말았다. 킥 실수를 저지른 이청용은 누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쉬워했다. 

김기희, 4개월만에 또 한 번 악몽을 꾸다

역시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했다. 64분에 믿기 힘든 결승골이 울산 현대 골문 안으로 떼굴떼굴 굴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높게 뜬 공을 여유있게 처리하여 뒤에 있는 조현우에게 백 헤더로 넘겨주려던 울산 현대 센터백 김기희가 주저앉았다. 약 10분 전에 교체 선수로 들어온 전북의 빠른 날개 공격수 바로우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우는 김기희의 백 헤더 패스를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달려가 조현우 앞에서 먼저 공을 살짝 건드려 굴려넣었다. 그 순간 7천 명 가까운 많은 관중들의 숨소리도 멎은 듯 정적이 흘렀다.

울산 홈팬들 입장에서 약 4개월 전인 6월 28일 전북 현대와의 홈 게임에서 김기희가 게임 시작 후 23분만에 퇴장당한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팀의 간판 센터백 불투이스의 빈 자리가 드러난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축구 게임에서 퇴장이 미치는 여파가 크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는 사례로 남았다.

그래도 울산에게 따라잡을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노련한 날개 공격수 이근호(67분), 측면의 멀티 플래이어 김태환(72분), 왼발 재능이 뛰어난 미드필더 이동경(84분)이 교체로 들어가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울산은 전북의 유능한 수비형 미드필더 손준호 벽을 넘지 못했다. 손준호의 놀라운 활동량과 정확한 태클 실력은 울산 입장에서는 다른 세상 수준이었다. 

또한 울산은 골대 불운에 두 번이나 탄식을 내뱉었다. 윤빛가람의 오른발 직접 프리킥이 전북의 수비벽을 넘어 골문으로 날아갔지만 전반전 23분에 이어 후반전 추가 시간에도 크로스바 불운으로 끝났다. 15년만에 우승 트로피가 거의 품안에 들어온 것 같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코로나 시즌 대부분의 기간을 1위로 앞서나가던 울산 현대가 이렇게 2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자력 우승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11월 1일 오후 3시에 동시에 열리는 전주성 매치 결과를 간절하게 기다려야 한다. 울산이 광주 FC와의 홈 게임을 이겨야 하는 것은 물론 대구 FC가 전주성에서 전북을 상대로 이겨주기를 기도해야 하는 상황이다. 15년만에 우승을 노리기 위해 대구 FC에서 데려온 최고의 골키퍼 조현우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대구 FC를 응원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2020 K리그 1 파이널 라운드 A그룹 결과(25일 오후 4시 30분, 울산 문수경기장)

울산 현대 0-1 전북 현대 [득점 : 바로우(64분)]

울산 현대 선수들
FW : 주니오(84분↔이동경)
AMF : 김인성, 신진호(72분↔김태환), 윤빛가람, 이청용(67분↔이근호)
DMF : 원두재
DF : 홍철, 정승현, 김기희, 설영우
GK :  조현우

전북 현대 선수들
FW : 구스타보(90+2분↔신형민)
AMF : 조규성(53분↔바로우), 쿠니모토(75분↔김보경), 이승기, 한교원
DMF : 손준호
DF : 최철순, 김민혁, 홍정호, 이용
GK : 송범근

2020 K리그 1 파이널 라운드 A그룹 현재 순위표
1 전북 현대 57점 18승 3무 5패 44득점 21실점 +23
2 울산 현대 54점 16승 6무 4패 51득점 23실점 +28
3 포항 스틸러스 47점 14승 5무 7패 53득점 34실점 +19
4 상주 상무 44점 13승 5무 8패 33득점 33실점 0
5 대구 FC 38점 10승 8무 8패 43득점 37실점 +6
6 광주 FC 25점 6승 7무 13패 32득점 43실점 -11

파이널 A 마지막 라운드 일정(11월 1일 오후 3시, 왼쪽이 홈 팀)
울산 현대 - 광주 FC [울산 문수경기장]
전북 현대 - 대구 FC [전주성]
포항 스틸러스 - 상주 상무 [포항 스틸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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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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