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영화계 원로들과 얘기 중인데 하나하나 정비하면서 화합해 갈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후배들에게 잘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고, 물러날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 이선필

 
올해로 25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당일은 좀 특별해 보였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과 재확산으로 행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를 겪어서였을까. 방역 지침을 강화한 상태로 행사장 곳곳에서 긴장감이 느껴졌고, 그 뒤에서 이용관 이사장 또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21일 오후 해운대 영화의 전당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1시간 뒤 방역 전문가로 이뤄진 자문단에 보고할 자료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정말 말 그대로 진인사대천명이다,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다소의 피로감이 담겨 있었다. 

팬데믹 상황, 길었던 고민의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 2.5단계 수준에 맞춰 예년에 비해 약 20분의 1규모(2019년 총 관객 수는 약 20만 명)인 1만 관객 수용 정도로 준비하던 영화제는 개막 1주일 전 1단계 조정을 맞으며 다소 숨통이 트였다.

올해 영화제가 상영하는 영화는 총 68개국 192편, 상영횟수 역시 작품 당 단 1회씩뿐이다. 완화된 방역 지침에 따라 상영횟수와 수용 관객을 늘릴 수 있었지만 이용관 이사장은 "그럼에도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하자고 정했다"고 강조했다.

"각 상영관 당 좌석 수의 30%까지 받을 수 있다고 자문단에서 의견을 줬지만 우린 25%를 받기로 했다. 하늘연 대극장의 경우 150석까지 가능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작년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관객을 모실 수 있게 된다. 1단계 상황이라지만 우린 1.5에서 1.9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불안감을 최소화해야지. CCTV 역시 추가로 설치했다. 

무엇보다 영화들 상영횟수가 한 번뿐이라 영사 사고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그 영화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해 제작사와 관련 내용을 논의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하든지 방안을 마련해야지. 이런 상황을 위해서라도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했는데..."


그의 말줄임엔 미처 올해 다 펼치지 못했던 계획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해 여러 인사들과 블록체인 스터디를 하는 등 새로운 플랫폼 마련에 힘을 쏟았다. 올해가 25회인 만큼 방점을 찍을 만한 프로그램 또한 준비 중이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작년에 말했던 여러 계획 중 절반은 이룰 수 있었을 거다. 커뮤니티 비프와 부산영화제의 연계, 야외 상영 대폭 증가, 드라이브 스루, 그리고 해운대 바다에 스크린을 띄우려 했다. 협찬을 다 받아놨는데 물리게 됐지. 내년엔 보다 탄탄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블랙리스트 문제 등 정치적 탄압 직후였던) 20회 때도 변수가 많았지만 올해 만큼은 아니었다." 

이용관 이사장은 스태프들이 적지 않게 지쳤음을 언급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영화제를 여는지 마는지 결정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준비하던 리듬을 잃게 되니까 많이들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는 "그래도 열기로 결정한 이후 다시 활력을 찾아서 다행"이라 말했다.
 
"외형 키우기보단 내실을 다져야 할 때"
 
코로나19 상황 뚫고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준비 중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유행이라는 악재 속에서 올해 영화제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해 각종 야외행사, 해외 게스트 초청 등을 하지 않고 오로지 극장 상영만 진행한다. 스태프들이 영화제 준비에 한창인 모습. 행사는 21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며 총 68개국, 192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 코로나19 상황 뚫고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진행 중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전경. ⓒ 이선필

 
코로나19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었다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랜 시간 품고 있는 고질적 문제가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 초청을 두고 부산시와 당시 정권의 압력을 받으며 불거진 독립성과 자율성의 위기, 그리고 함께 부산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한 김동호 전 이사장과의 관계 문제 등이다. 

2016년 영화제 정관 개정을 통해 민간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며 일정 부분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지만, 블랙리스트 탄압에 대한 관계 당국의 사과를 받아내진 못했다. 그 와중에 내부 스태프 간 소통 문제가 불거졌고, 이사회 권한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기존 사무국의 역할에 제한이 있다는 평가 또한 있었다. 

"(온전한 자율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과도기다"라고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 4년의 민간 이사장 체제를 자평했다. 그는 2021년 2월 열리는 총회에서 이사회 중심에서 집행위원 중심 체제로 정관을 바꾼다는 계획을 전했다. 

"이사회는 뒤에서 지원하는 게 맞다. <다이빙벨> 때는 정치적 문제가 있었고 독립성을 찾기 위해 민간 이사장 체제로 간 거라면 다시 집행위원 체제로 가는 게 좋다. 이미 이사진에겐 허락을 받아놨다. 과거의 정관과 비슷해질 것인데 예산 편성 문제, 그리고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게끔 하는 장치도 물론 필요하지.

부산시와 협업하는 것과 협찬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화될지 모르겠지만 내년에 여러 재미난 걸 준비 중이다. 시 사업을 함께 하면서 재정을 충당할 수도 있고 정부 관광공사와 협업할 수도 있다. 공공사업, 자치사업을 확보하는 채널을 다양화하려 한다." 


비상근 스태프, 자원봉사자 인건비 책정 문제에서도 이용관 이사장은 개선 의지를 보였다. 올해 초 불거진 열정페이 논란을 언급하며 그는 "올해 코로나19로 작품 수를 100여 편 줄인 200편 정도를 하게 됐는데 이게 우리 조직 규모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가 자생력을 갖기 위해선 진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간 너무 외형만 키워왔고 정치적 문제까지 겪으며 흔들렸는데 작품 수보다 복지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분 좋게 물러날 때를 생각한다"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 그리고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과의 갈등은 이용관 이사장이 부산영화제에 몸담아 오며 뼈아프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다. 쇄신을 위해 모셔온 인사들이 내부 및 외부 요인으로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는 25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적 쇄신 문제와도 연결된다. 영화제를 만들고 키워낸 상징적인 인물들이 영화제를 이끌어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인물 발굴이나 후진을 키우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비판 또한 있기 때문이다.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알고 영화제에 복귀했는데 그걸 이루기 위해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아까 말한 집행위원 체제로 돌려준다는 게 1단계다. 후계 구도, 신세대를 찾아야 한다는 건 제도 개선이 잘 맞물리면 가능할 것이다. 김동호 전 이사장님과 솔직히 아직까지 소원한 건 맞다. 올해 부산에 꼭 모시려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 

이건 부산영화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 문제기에 싫든 좋든 해결해야 한다. 저와 김동호 전 이사장님이 소원할 필요가 없는데 참... 걱정은 안 한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영화계 원로들과 얘기 중인데 하나 하나 정비하면서 화합해 갈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후배들에게 잘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고, 물러날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그간 부산영화제가 신구 화합을 위해 꽤 노력하지 않았나. 언제까지 반목할 순 없다. 

제가 지난 8월에 정년퇴임했잖나. 임권택 감독님 등을 찾아가서 말씀드렸다. 전 학교에 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제 하나만 전념하겠다. 제대로 기틀을 잡아놔야 김동호, 강수연,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고 없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잖나. 마음에 확실히 새기고 있다. 제가 해야지. 다만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단 환경적으로 만들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다. 내년에 김지석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열정은 남겼다는 평은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 화해를 해야지. 믿으셔도 된다."

 
이 말을 하는 이용관 이사장의 눈시울이 다소 붉어져 있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휘둘리는 퇴장이 아닌 영화인들에게 박수받는 퇴장을 그 또한 강하게 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가 여러 차례 강조했듯 물러나기 전까지 영화제의 체질과 시스템을 확실히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영화제가 어떤 걸 선도하는 역할도 있겠지만 우린 그것보다 토양을 만들어준다,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걸로 접근하려 한다. 그간 여러 시련을 겪다 보니 제대로 펼치지 못했는데 커뮤니티 비프 등을 하며 우연적이지만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에 희망적이다. 영화란 무엇인지 올해 고민을 유난히 많이 했다. 

(왓챠, 넷플릭스 등) OTT와의 협업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올해는 태국 영화 1편과 베트남 영화 1편을 현지와 동시 상영하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함께 진행한다. 이런 식의 대안이 많이 나올 것이다. 코로나19가 준 역설적인 선물이다. 올해 영화제는 유독 오프라인 상영을 고집했는데 거꾸로 보면 내년에 뭔가 다른 가능성을 선보일 거란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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