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 포스터

<빛나는 순간> 포스터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올 여름 개봉했던 예수정 주연의 <69세>는 젊은 간호조무사에게 성범죄를 당한 69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하지만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벽과 편견을 마주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상황의 개연성을 이유로 평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노년의 여성에게 젊은 남성이 성적인 욕구를 느낀다는 게 쉽게 납득이 안 간다는 게 이유였다.   

<빛나는 순간>도 어쩌면 이런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퀴어영화의 선구자 이송희일 감독의 연출부에서 활동했던 소준문 감독은 꾸준히 소수의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은 무수한 방송출연 제의를 한 번도 허락한 적 없다. 까칠한 진옥을 어떻게든 촬영하기 위해 서울의 방송사에서는 PD 경훈을 제주도로 보낸다.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경훈은 단 번에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 사람, 진옥만 제외하고 말이다. 진옥은 여전히 까칠하고 경훈과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던 중 진옥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빛나는 순간> 스틸컷

<빛나는 순간> 스틸컷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바다에서 문어 잡이를 하던 진옥이 생각보다 늦게 올라오자 수영을 못하는 경훈은 바다로 뛰어든다. 경훈은 자신을 구한 진옥을 껴안으며 걱정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포옹에 진옥의 마음이 흔들린다. 처음에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점점 더 커진다. 까칠하고 거칠게 경훈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때마다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경훈을 밀어낼 수 없다. 결국 진옥은 촬영을 허락한다.  

진옥과 경훈에게는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바다를 통해 맺어진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만 치유가 가능하다. 작품의 배경이 제주인 이유, 진옥의 직업을 해녀로 설정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옥은 바다로부터 슬픔을 얻었지만 계속 바다로 향한다.   

진옥처럼 바다와 관련된 상처가 있는 경훈은 진옥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바다와 가까워진다. 동시에 바다를 통한 치유를 경험한다. 서로를 향한 치유는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로 이어진다.

그래서 감독은 그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장면적으로 아기자기한 매력을 집어넣는다. 경훈에게 반한 진옥의 모습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 같다. 경훈이 나타나자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는가 하면, 경훈의 권유에 무릎베개를 하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대배우 고두심은 노년의 나이에도 처음 사랑을 하는 듯한 설렘을 표현하며 풋풋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빛나는 순간> 스틸컷

<빛나는 순간> 스틸컷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한때 국민 연하남으로 전국 누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현우는 경훈 역을 통해 다시 한 번 연하남의 매력을 선보인다. 여전히 여심을 녹이는 부드러운 미소와 서글서글한 말투는 진옥은 물론 관객들의 마음도 여는 힘이 있다.

<빛나는 순간>은 최근 영화계의 화두인 다양성과 여성서사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감정을 표현하며 예술적인 깊이를 더했다. 이 작품이 보여준 노년 여성의 사랑 역시 이런 가치와 부합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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