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울어진 승부, 계속해서 난타를 당하고 있는 투수. 하지만 벤치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투수 교체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감독 혹은 코치의 다독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허허벌판의 사막 위에 홀로 선 사람처럼 투수는 외로워보였다. 야구팬들이 이런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두산 베어스은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의 경기에서 5-17로 완패를 당했다. 경기 중반까지 1-3으로 끌려가던 kt는 6회와 8회 각각 8득점을 뽑아내는 두 번의 빅이닝을 연출하며 두산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프로야구 막내구단 kt는 이날 승리로 창단 이후 첫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짓는 기쁨을 누렸다.

5위에 머무른 두산은 이날 졸전끝에 완패한 것도 모자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까지 남겼다. 문제는 8회초에 발생다. 두산이 3-9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다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강률은 kt 선두타자 조용호를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켰지만 침착하게 아웃카운트를 2개까지 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사 1루에서 유한준의 안타를 시작으로 kt의 방망이가 매섭게 터지기 시작했다. 장성우-강민국-배정대-송민섭-심우준이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김강률을 무참하게 흔들어놓았다. 여기에 홍현빈의 볼넷과 황재균-강백호의 연속 안타, 정주후의 볼넷까지 이어지며 김강률은 무려 10연속 출루라는 진기록을 허용했고, 점수는 3-17까지 벌어졌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김강률이 난타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강률은 결국 14번째 타자였던 대타 허도환을 간신히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겨우 악몽의 8회를 끝낼 수 있었다.

불과 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김강률은 8피안타 2볼넷 1탈삼진으로 무려 8실점을 내줬다. 그나마 김강률의 자책점으로 기록된 점수는 없었다는 게 작은 위안이었다. 이날 김강률의 투구수는 무려 51개나 됐고, 8회초 한 이닝을 끝내는 데만 경기시간은 약 20분 넘게 소요됐다. 겨우 이닝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며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김강률의 표정은 안쓰러울만큼 굳어있었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경기 시작 전 두산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경기 시작 전 두산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김태형 감독은 왜 김강률을 그대로 방치했을까. 이미 사실상 승기가 넘어간 경기에서 투수력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날 엔트리에 등록된 두산의 불펜투수 자원 중 이미 김강률에 앞서 등판한 투수들(이승진, 홍건희, 김민규)을 제외하면 박종기, 권휘, 채지선, 배창현, 이현승, 박치국 등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기서 필승조로 분류되는 선수는 이현승과 박치국 정도였다. 박치국이야 불과 이틀 전인 20일 롯데전에 구원등판하여 1이닝을 소화했지만, 5일 전인 17일키움전 0.1이닝이 마지막 등판이었던 이현승은 투구감각 점검 차원에서라도 기용할 수 있었던 카드였다.

권휘, 채지선, 박종기는 어차피 추격조로 자주 활용된 선수들이고 직전 등판 이후 약 일주일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않아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아니면 이날 전까지 1군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던 배창현같은 선수에게 더 빨리 기회를 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김태형 감독은 김강률이 내려간 이후 9회에는 배창현(0.1이닝)과 권휘(0.2이닝)를 내세워 마지막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렇다면 김강률을 방치해서 얻는 이득은 도대체 무엇일까. 부진한 경기력에 대한 문책성? 두산은 이날 김강률만이 아니라 팀 전체적으로 졸전을 펼쳤다. 여기에는 선수들의 집중력만이 아니라 벤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kt에게 6회초 8실점의 빅이닝을 허용했을 때부터 경기는 넘어간 상황이었다.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던 선발 유희관을 내리고 난 후 두산 벤치의 한 박자 어긋난 투수교체와 불펜 운용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패전투수가 된 이승진이 영점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을 때는 코칭스태프가 마운드에 올라가 다독여줬음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4실점(4자책)을 허용한 뒤에야 뒤늦게 홍건희로 교체했으나 이미 흐름은 kt로 넘어간 뒤였다.

김강률이 등판한 8회의 경우 투수도 부진했지만, 그 이전에 야수들이 저지른 2개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무실점으로 끝날수도 있었다. 8실점 중 김강률의 자책점으로 기록된 점수가 없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두산 벤치는 이승진 때와 달리 김강률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대응도 하지 않았다. 

선수에게 자극을 줘서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김강률은 성인 프로 선수이고, 1군 무대에서만 벌써 9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30대의 베테랑이다. 이런 식의 대우는 선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다. 어차피 완패한 경기니까 코칭스태프도 그저 자포자기해서? 아무리 패한 경기라고 해도 투수개인이 소모품이나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불펜투수가 한 이닝에 무려 51구를 던지는 상황에 놓이게 뒀다는 건 명백한 혹사다.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관리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꼭 지켜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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