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sbs

 
20일 채송아(박은빈 분)와 준영(김민재 분)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는 모습을 끝으로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막을 내렸다. 로맨스 멜로 드라마의 정석에 따른 엔딩이라 할 수 있겠지만 16부를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반가운 엔딩이다.

그리고 그렇게 손을 맞잡고 웃는 그들에게 상이라도 내리고 싶다. 왜냐하면 지난 16부 동안 이 두 젊은이는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자신의 삶에 던져진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 애써왔으니까. 그저 사랑만이 아니다. 스물 아홉, 자신들에게 던져진 삶이 준 화두에 대해 진지하게 천착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사랑 이야기 이상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암송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두 갈래 길'에 대한 진지한 답을 내놓았다. 

마지막 회 마주앉은 두 사람은 자신의 근황을 전한다. 송아는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자신의 말에 준영이 축하한다고 하자 "대학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답한다. 송아는 오래도록 '바이올린'이란 화두를 붙잡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취미로 만난 바이올린이 너무 좋아 4수 끝에 음대에 진학한 송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다. 바이올린은 늘 송아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렇게 4년, 졸업을 앞둔 송아는 전문 연주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브람스> 16부 동안 송아는 음악도로서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해왔던 동기들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에 힘들어 했던 송아는 그동안 좋아하는 것과 자신이 해나가야 할 길에서 답답할 정도로 선택하길 주저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이 송아에게는 계속 다른 기회가 왔다. 연주자의 처지를 헤아려 기꺼이 자신의 구두를 벗어주는 송아의 자세가 기회로 되돌아왔다. 이제 송아는 자신에게 온 다른 기회를 살려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이수경 교수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실무자로 일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고민해 왔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송아의 발걸음은 무겁지만은 않다. 가 보았기에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그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포기'가 아니다. 때로는 가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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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준영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포기하겠다고 전한다. 준영의 삶의 방점은 늘 자신의 바깥에 찍혀 있었다. 친구인 정경(박지현 분)이 부러워하다 못해 시샘할 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그 재능은 사고치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허덕였다. 그리고 허덕이는 자신을 도와주는 경후재단에 대한 부채감에 시달렸다.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달란트'가 아니라 '저주'라고 생각할 만큼.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의 '주체'로서 살아오지 못했던 준영은 송아와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나서 '피아노'를 포기할 마음마저 가진다. 자신의 밖에 찍혔던 '삶의 방점'을 거두어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통과의례'이다. 그렇게 피아노마저 포기하려 했던 준영이 송아의 졸업 연주회 날 반주자를 자처한다. 송아와 눈을 맞추며 연주를 '완성'한 후 준영은 행복하라는 송아의 말에 "사랑해요"라고 고백한다. 늘 송아와의 관계에서도 '미안해요'라는 말만 되풀이 하던 준영이 행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말이다. 

그리고 준영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포기했다. 그에게 콩쿠르는 위기에 선 연주자 박준영이 선택했던 배수진같은 것이었다. 다시 줄을 세운 그 자리에서 우뚝 서서 자신이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명망성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콩쿠르 심사위원을 위한 연주를 해야 하는 건 여태 그가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를 위해 피아노를 쳐왔던 방식의 답습일 뿐이었다.

행복하기 위해서 송아에게 다시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준영은 그렇게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슈만을 치고, 브람스를 치면서 자신만의 결을 살린 '피아노'를 완성해 간다. 자기 삶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다. 

준영과 송아가 선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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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준영을 찾아간 송아는 준영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더는 준영씨를 사랑하는 게 행복하지 않다면서. 

'행복'이라는 이 피상적인 단어는 오늘날 현대인들을 큰 갈등에 빠뜨리는 단어다. 실제 한 사람이 일생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아마 '데이터'로 따지면 '쥐꼬리'만큼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삶에서 '행복'을 지우라고도 말한다. 행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행복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일상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하더라도 그 시간을 의미있도록 만드는 것이 '행복'을 향해 가는 길 아닐까 싶다. 마치 꽃들이 해를 향해 방향을 트는 것처럼 말이다. 

송아의 이별 통보는 16부작 드라마 절정에 등장한 편의적인 갈등만이 아니다. 송아는 준영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음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런 송아에게 준영이 화답한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16부의 엔딩은 그래서 상처받고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도, 사랑으로 인해 받은 행복이 더 크기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드라마는 행복은 상처받지 않음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다. 사랑만이 아니다. 준영과 송아는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각자 포기하는 상처의 시간을 가졌다. 송아는 오랫동안 좋아했던 바이올린을 포기했고, 준영은 피아니스트로서 명예를 조금 더 높여줄 콩쿠르를 포기했다. 행복은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갈래 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말하고 있다.

마치 그건 극중 등장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와도 같다. 브람스 소나타의 부제는 '자유롭고 고독하게'라고 한다. 하지만 송아는 내레이션으로 덧붙인다. 실은 브람스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연주하라고 표기했다고 말이다. 같은 곡인데, 고독하게와 행복하게의 간극, 그 사이엔 '선택'이 있다. 아니면 고독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행복일 수도 있는 삶의 양면성에 대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아 사랑을 포기할 수도, 명망을 위해 콩쿠르를 고집할 수도, 좋아했던 것이니 계속 부등켜안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송아와 준영은 주어진 모든 선택지 중 자신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이 앞으로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라서가 아니라, 상처받아도 기꺼이 그 상처를 감수하는 것이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드라마는 상처라 생각하면 상처지만 행복이라 명명하면 행복이 되는 것들이 있다고 지금도 어디선가 망설이는 청춘들에 한 마디 건넨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는 잔잔하고 느리게 흘러갔지만 그 어떤 청춘 드라마보다 '청춘의 고민'에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천착했다. 젊음의 시간, 아니 젊음의 시간만이 아니라 살아가며 늘 다가오는 '행복'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의 행복을 추구하려 다가갈 때 다가오는 아픔들에 대해 고뇌했다. 그리고 두 주인공만 아니라 극중 모든 인물들이 자신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길에 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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