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꿈은 이루어진다.'

아마도 많은 청춘들은 여전히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온 국민의 마음에 새겨진 이 말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노오력'을 해서 마침내 꿈을 이뤄내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20대 후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시청하면서 나는 노력하는 청춘들의 성공담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도 야무지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선 송아(박은빈)가 한계를 극복하고 연주자로서 무대에 당당히 서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결말은 예상 밖이었다. 20일 방영된 마지막회에서 송아는 진짜로 바이올린을 떠나 보낸다. 가슴에 바이올린을 꼭 안고 "그동안 고마웠어. 잘가. 잘 지내. 잘 있어.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말이다. 

송아의 '아픈 결심'에 내 마음 또한 무너져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송아는 달랐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떠나 보낸 후 훨씬 더 밝아지고 행복해보였다. 송아는 왜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꿈을 내려놓고 나서야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송아가 행복해진 비결을 되짚어본다.

원하는 것에 도전하는 용기
 
 송아는 바이올린을 너무나 사랑하는 늦깍이 음대생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그녀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너무나 사랑하는 늦깍이 음대생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만 그녀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 SBS

 
"너 바이올린에 재능은 있니?"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좋은 곳에 취직해 안정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송아. 그런 송아가 대학 졸업 후 음대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송아의 가족들은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다. 

아마 송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주자로서의 삶은 '타고난 재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송아는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좋고 할수록 잘하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고, 생각 만하면 가슴이 쿵쾅대는', 바이올린을 향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이를 따른다. 송아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이루는 것,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때문에 송아는 친구들이 하나둘 사회에서 자리잡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변호사인 언니와 은근히 비교하는 가족들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내하며 마침내 송아는 원하던 '서령대 음대'에 합격한다. 그리고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

이 행복감은 "좋아하는 마음 하나 믿고"(14회, 송아 언니) 해냈기에,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해 얻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을 테다.

이상적 자기와 경험하는 자기의 간극 

그렇게 음대에 입학한 송아. 하지만 송아에게 음대에서의 생활은 '좋아하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는 현실을 알려줄 뿐이다.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향한 송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경험하는 자신은 동료들에 비해 늘 초라하기만 하다. 그런 송아 앞에 준영(김민재)이 나타난다. 피아노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지 않는 준영과 송아는 어느덧 서로 다른 모습에 자신을 비춰보며 사랑에 빠져든다. 

하지만 '학교 오케스트라 끝자리'에 앉는 송아는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준영과 사귀면서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더 극렬히 느낀다. 음악 실력과 연애는 별개임에도 세상은 두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쏘아보고, 점차 송아는 준영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깨달아 간다. 

인간중심 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바로 이 '이상적 자기'와 '경험하는 자기'의 간극이 깊어질 때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이상적 자기'는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조건적 가치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이상적 자기'에 조건화된 가치가 주입됐을 때 사람들은 이를 추구하면서도 불편감을 느낀다. 게다가 현실에서 경험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괴리가 생기면 이 갈등은 다양한 심리적 증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평가받고 경쟁해야 하는 음대라는 환경 속에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송아의 이상적 자기는 세상의 평가에 의해 손상받았을 것이다. 때문에 송아는 이제 예전처럼 바이올린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한다. 현실과의 괴리가 커지면서 바이올린은 송아에게 '위로'보다 '상처'로 다가온다. 드라마 중반 이후, 송아가 점점 더 침울해보였던 것은 아마도 이 이상적 자기와 경험하는 자기의 간극에서 오는 갈등 때문이었을 것이다. 괴로워하던 송아는 이렇게 독백하기에 이른다.

"내가 지금까지 용기를 낸 건 단 두 번이었다. 바이올린과 사랑. 너무 사랑하니까,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나의 자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3회)
 
 송아는 준영을 사랑하지만 준영과 연애를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더 극명히 알아가며 갈등한다.

송아는 준영을 사랑하지만 준영과 연애를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더 극명히 알아가며 갈등한다. ⓒ SBS


한계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마침내 송아는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보다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로 결심한다. 준영과의 관계에서 자꾸만 의심하고 비교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 준영씨를 사랑하기가 힘들어요. 행복하지가 않아요"(15회)라고 말한다. 또한, 상처만 주는 바이올린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다. 한때 자신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했던 바이올린이 평가와 인정이라는 잣대 속에서 나를 더 주눅들게 하고 자신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변질됐음을 인정한 단호한 용기였다. 정말로 16회 송아는 대학원에 합격했음에도 자신의 결심대로 등록하지 않는다. 

바이올린과의 이별은 자신의 꿈을 상실한 것에 준하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도의 슬픔을 겪어낸 사람에겐 반드시 성장과 깨달음이 오는 법이다. 한동안 아파하던 송아는 이사장의 장례식에서 준영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다.

"계속 혼자 사랑하고 혼자 상처받다가 결국 이렇게 끝났지만 그래도 그동안에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거면 된 것 같아요."(15회)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면서도 자신이 힘껏 사랑하고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의 의미를 간직하는 뭉클한 대사였다.

이렇게 송아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함으로써 이상적 자기와 경험하는 자기의 간격을 줄였다. 이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보다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는 의미다. 그러자 현실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준영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비로소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 받았던 상처들보다 사랑하며 받은 위로와 행복이 더 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수용할 줄 알았던 송아의 용기는 결국 현실과 조화를 이뤄낸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박준영'과 '기획자 채송아'로서 '자유롭고도 행복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진정으로' 꿈을 이룬다는 것 
 
 송아는 그토록 사랑했던 바이올린을 떠나보낸 뒤에야 진정으로 행복하게 웃는다.

송아는 그토록 사랑했던 바이올린을 떠나보낸 뒤에야 진정으로 행복하게 웃는다. ⓒ SBS

 
우리는 어릴 적부터 '꿈'을 특정 직업이나 사회적 성취와 일치시키며 노력을 통해 이를 이루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이 꿈이 나를 괴롭힐 때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며 한계를 수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꿈이 특정 직업이나 사회적 성취가 될 수 있을까. 칼 로저스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라면 직업이나 사회적인 성공과 같은 꿈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순간 사회적 성취를 위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수단적인 꿈에 매달리곤 한다. 

이런 면에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랜 직업적 꿈과 이별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궁극적 꿈을 선택한 송아의 용기는 울림이 크다. 보다 궁극적인 꿈을 선택했기에 그녀는 오랜 시간 사랑했던 바이올린과 이별을 하고도 더 밝게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 말의 꿈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리고 그 꿈들이 하나하나 존중받을 수 있을 때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 한계를 수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궁극적인 꿈을 추구하는 법을 가르쳐준 송아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은빈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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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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